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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恨)풀이' 정치라는 표현이 있다. 보수적인 사람들이 노무현 정부를 비판할 때 이런 표현을 자주 썼다. 과거사, 언론개혁 등 '먹고사는 문제'와 동떨어진 의제가 부상하면, 이런 표현은 더 자주 등장했다. "소외 계층 출신인 노무현 대통령이 사회 주류 세력에 대해 분풀이를 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사장 대통령의 한풀이 정치? '먹고사는 문제'에만 전념할 듯 비치는 정권으로 바뀌면서, '한풀이' 정치라는 표현은 잘 들리지 않게 됐다. 이명박 대통령 역시 가난한 젊은 시절을 보냈지만, 현대건설 입사 이후에는 사회 주류에 편입됐다. 정신적으로건, 물질적으로건 그랬다. 30대 이후를 주류와 더불어 보낸 이 대통령이 대단한 '한'을 품고 있을 리는 없다. '한풀이' 정치라는 표현이 쓸모를 잃어버린 것은 그래서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먼지에 덮여있는 듯하던 '한풀이'라는 낱말이 다시 꿈틀거리는 기미가 있다. '관존민비(官尊民卑)' 문화가 남아 있던 시절, 공무원 앞에서 수모를 겪어야 했던 건설업체 사장의 '한(恨)'이 꿈틀댄다는 이야기다. 정권 초기부터 이런 기미가 보였다. 정치인, 고위 공직자 등에게만 개방되던 공항 귀빈실을 기업 경영자에게 개방하라는 주문도 이런 사례다. 경영자가 귀빈실을 이용하면, '경제 살리기'에 도움이 된다는 실증적인 근거는 없다. '묻지마 구조조정', 무엇을 위한 것인가? 공공기관에 대해 무리한 구조조정을 강요하거나, 공무원 문화를 지나치게 폄하하는 발언을 할 때도 '한풀이' 정치라는 표현이 꿈틀댔다. 물론, 공무원들이 타성에 젖어 있다는 지적은 설득력이 있다. 고용이 안정적이라는 특징을, 공무원들이 악용하면서 빚어진 '철밥통' 문화 역시 깨지는 게 옳다. 하지만, '철밥통' 문화를 깨는 목적은 공무원을 기업인으로 바꾸기 위해서가 아니다. 공무원이 공무원 역할을 열정적으로 수행하는데, '철밥통' 문화가 걸림돌이 되기 때문에 이런 문화를 깨야하는 것이다. 요컨대 공무원은 공무원답고, 군인은 군인답고, 교사는 교사다운 게 정상이다. 공무원, 군인, 교사가 모두 기업인을 모범 삼아야한다면 당초 이런 직업이 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 이명박 정부가 밀어붙이는 공공기관 구조조정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가 애매해보일 때면, '한풀이' 정치라는 표현이 고개를 세웠다. 공공기관은 말 그대로 '공공성'을 목적으로 삼는다. 공공기관 종사자의 배타적 이익 때문에 '공공성'이 훼손되는 경우라면, 공공기관 구조조정이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하향평준화' 비판한 MB정부가 '고용의 질'을 하향평준화하는 역설 하지만, 목적이 불분명한 구조조정이라면 불안한 시대를 살아가는 대중이 '철밥통' 고용에 대해 갖는 질시에 편승하는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이 또한 '한풀이' 정치의 한 변형일 뿐이다. 누구나 고용불안을 덜 느끼는 사회를 지향하는 게 바람직하지, 모두가 고용불안을 느껴야하는 사회는 정상이 아니다. '고용의 질'에 관한 '하향평준화'일 따름이다. 물론, '평준화'에 대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이명박 대통령이 '고용의 질'을 '하향평준화'하려 애쓴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리일 게다. 가방끈 긴 사람들에 대한 '한풀이'를 위해 '하향평준화'를 시도한다는 비판은 현 정부에 가담한 이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주로 쏟았던 것이었다. '부실기업 옥석 가리기' 포기한 정부, '시장경제' 원칙은 어디로? 하지만, 먼지를 털고 나온 '한풀이' 정치라는 말을 머리에서 지우기는 어려웠다. 김종창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9일 "기업 구조조정은 기업 살리기에 중점을 두고 채권 금융기관이 자율적으로 추진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발언은 현 정부가 부실기업에 대한 '옥석 가리기'를 통한 기업 구조조정을 사실상 포기했다는 뜻으로 풀이됐다. 공공기관 직원에 대한 구조조정은 구체적인 목표치를 정해놓고 밀어붙인 현 정부가, 부실기업 구조조정에 대해서는 유독 헐거운 태도를 취하고 있다. 하지만, 방만 경영으로 부실해진 기업에 지원을 쏟아 붓는 정책은 시장경제 원칙과 어긋난다. 경제성 없는 운하에 집착하는 MB정부, 방만 경영 기업가 싸고돈다 합리적인 원칙에 따라 사업을 추진하지 않은 경영자가 위기에서 살아남은 경험은 기업가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는 전례가 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경제성이 없는 사업을 밀어붙이는 경영자를 견제할 수 없다. 어쩌면 한반도 대운하 사업에 집착하는 기업가 출신 대통령을 견제하지 못하는 상황과도 닮았다. 한반도 대운하 사업 역시 경제성이 없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기업 경영에서 원칙이 사라지면, 결국 피해를 입는 것은 해당 기업 직원과 투자자들이다. 이런 피해는 소수가 입는 게 아니다. 적금 붓듯 주식형 펀드에 투자하는 시대다. 누구나 투자자인 시대에는 기업가의 '도덕적 해이'가 모든 이의 피해로 돌아온다. 투자 참가자가 광범위해질수록 기업가의 '도덕적 해이'를 막는 일도 중요해진다. "관존민비 시대는 이미 지나갔는데…" 하지만 공무원에게 유독 가혹한 정부가 기업가에게는 한없이 관대하다. 정부의 이런 태도에서, 이미 지나간 '관존민비(官尊民卑)' 시대에 겪었던 전직 건설업체 사장의 한(恨)이 묻어난다고 하면 무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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