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의 기술문해력을 위해

최근 주목받는 신조어 중 ‘디지털 문해력(digital litaracy)’이라는 말이 있다. ‘문해력’이라고 하면 글을 해석하는 능력이라는 뜻이다. 단순히 글자를 읽고 이해하는 수준이 아니라, 맥락이나 상황, 전후관계 등을 고려하여 글자로 쓰인 것 이상의 의미를 유추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 ‘디지털’이라는 수식어가 붙었으니 컴퓨터나 스마트폰과 같은 디지털 기기를 사용할 때 필요한 능력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디지털 문해력이라고 하면 단순히 앱을 사용하거나, 게임을 즐기거나, 영상을 만드는 것과 같은 활동을 중심에 두고 이야기하곤 한다. 그러나 문해력이 단순히 글자를 쓰는 능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듯, 디지털 문해력 역시 의미가 넓다. 신뢰성 높은 정보를 찾고, 찾은 정보를 체계적으로 이해해서 관리하고, 정보를 통합하여 새로운 의미를 도출하고, 다양한 정보와 활동을 비판적으로 평가해서 새로운 정보를 창출해내는 것을 모두 포함한 것이 디지털 문해력이다. 간단히 말하면 오늘날의 디지털 생태계의 일원으로서 갖춰야 할 기본적인 소양이라고 할 수 있겠다.

디지털 문해력이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개인이 감당하기에 너무나 많은 정보(앱을 포함)가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디지털 기기로 정보 접근성이 높아진 만큼, 사람들은 더 자주, 많은 정보에 노출된다. 게다가 상당수의 정보는 출처를 명확하게 알 수 없거나 원본을 변형하고 비튼 것들이다. 따라서 이들 중 어떤 정보가 나에게 유용하고 믿을만한지 선별하려면 ‘안목’이 필요한데, 그 안목이 바로 디지털 문해력이라고 할 수 있다. 너무 막연하다고? 디지털 기기를 유용하게 사용하겠다면 적어도 그 기기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는 알고 쓰는 것이 좋겠다는 이야기다.

기술 역시 마찬가지다. 20세기의 100년 동안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후 수천 년의 기간보다 더 많은 혁신이 일어났다고 한다. 21세기가 이제 막 1/4에 이른 시점이지만 지난 25년 동안 한 세기 동안의 변화에 맞먹는 혁신이 일어나고 있다. 이와 함께 기술이 일상에 적용되는 주기도 빨라졌다. 텔레비전이 개발된 이후, 보편적인 커뮤니케이션 방식으로 자리잡는 데는 50년이 넘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스마트폰이나 AI, 무선통신과 같은 분야에서는 많은 신기술이 10년도 채 지나지 않아서 일상적으로 사용된다.

기술 적용이 빨라진 만큼 우리는 기술을 이해하기 어려워졌다. 물론 기술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일상에 지장이 있는 것은 아니다. 스마트폰의 공학적 구조나 원리를 몰라도 얼마든지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기술을 업무에 활용하거나 사업 아이디어에 적용하려는 입장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기술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하루가 다르게 쏟아지는 기술 중 어느 것이 내게 필요한지, 어떤 것이 현실적으로 유의미한지 가려내기는 어렵다. 재료는 있는데 사용하지 못하는 셈이다. 기술에 대한 이해도, 이른바 ‘기술문해력’이 미래 사회의 경쟁력이라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현대를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기술문해력, 차세대통신 혁신융합대학 사업단(NCCOSS)과 광주광역시가 업그레이드에 나섰다. 지난 10월 12일부터 11월 2일까지 4차례 열린 ‘광주 마니 팝업아카데미(이하 아카데미)’다. 아카데미에는 NCCOSS가 융합과정을 운영하며 축적해 온 고민이 담겼다. NCCOSS를 포함한 혁신융학대학사업단은 대학 교육이 학과의 경계에 제한되어 시시각각 변화하는 기술과 현장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이에 NCCOSS는 특화망, 5G 장비, 양자통신 등 기존 학부과정에 없던 교과를 대거 도입하여 교육과정을 구성했다. 효과는 놀라웠다. 이제 2년차에 접어들었을 뿐인데도 학생들의 ‘경험치’가 몰라보게 달라졌다. 학부생들이 최신기술 정보에 얼마나 목말라 있는지 실감했다. 아카데미는 캠퍼스 안에서의 경험을 밖으로 확장하려는 시도다.

▲ ‘광주 마니 팝업 아카데미’가 시작하기에 앞서 박준석 단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아카데미의 취지는 간단하다. 학부생에게 호응이 좋았던 융합과정 교육을 일반인에게 무료 특강으로 제공한다는 개념이다. 이에 광주 시내에서도 접근성이 좋은 인공지능사관학교에서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이 참석할 수 있는 토요일에 10월 14일부터 매주 진행됐다. 현재 NCCOSS에 적을 두고 있지 않은 모든 이의 ‘기술 문해력’을 높이고자 기획한 행사다 보니 복잡한 요건도 없애고 누구나 무료로 참석할 수 있게 했다.

주제 선정에도 고민을 거듭했다. 일반인이 보기에 썩 재미있어보이지 않는 ‘차세대통신’이라는 주제에서 어떤 관심사를 끄집어낼 수 있을까. 우선 행사 장소인 광주의 특성을 고려했다. 광주는 호남 지역의 교육 중심지로서 레이저과학과 인공지능 등 첨단기술을 육성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이에 일반인도 쉽게 체감할 수 있는 미래자동차,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분야를 중심으로 강의를 기획했다. 컨소시엄에 참여한 국민대, 서울시립대, 울산과학대, 전남대, 한국항공대 교수진이 나서서 각자 전공분야의 강연을 진행했다.

‘차세대통신의 미래’부터 ‘양자 암호와 보안의 이해’까지

▲ ‘사물인터넷의 이해’란 제목으로 강의하는 서울시립대 김영길 교수.

1주 차인 10월 12일에는 사업단의 단장인 박준석 국민대 교수가 강의에 앞서 인사말을 전했다. 그는 “인공지능과 미래모빌리티의 특화 도시인 광주에서, 사업단이 이런 팝업 캠퍼스를 처음 시작할 수 있어 굉장히 설레고 기대가 크다”면서 “차세대통신, 미래모빌리티, 인공지능, IoT라는 4가지 주제에 대해 전공자뿐만 아니라 일반인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강의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엔 서울시립대 김영길 교수(전기전자컴퓨터공학부)가 ‘사물인터넷의 이해’라는 제목의 강좌를, 서울시립대 김영민 교수가 ‘차세대통신 시스템의 이해와 SDR(Software-Defined Radio)’이란 제목의 강좌를 각각 진행했다. 오후엔 국민대 장병준 교수(전자공학부)가 ‘소리로 배우는 전파기술(무선통신과 레이다)’이란 제목의 강좌를, 전남대 박태준 교수(인공지능학부)가 ‘원리부터 이해하는 OSI 7 Layer(컴퓨터 네트워크 통신을 이해하기 위한 모델)’라는 제목의 강좌를 각각 진행했다. 이날 수강자 중에서 한 중고생은 “관련 지식이 없는 경우 강의 도중 나오는 전문용어나 개념을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좋은 비유로 잘 이해되지 않았던 개념을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밝혔다.

2주 차인 10월 19일에는 국민대 주민철 교수(전자공학부)가 ‘차세대통신의 미래’라는 제목의 강좌를, 서울시립대 김영길 교수가 ‘사물인터넷의 이해’란 제목의 강좌를, 한국항공대 정재훈 교수(소프트웨어학과)가 ‘양자 중첩과 얽힘에 대한 이해’란 제목의 강좌를 각각 진행했다. 이날 수강자 중에서 한 대학생은 “차세대통신에 대한 궁금증이 많았다”면서 “특히 기본적인 통신 원리나 내용, 사용하고 있는 기술적 방식에 대해 알 수 있어 좋았다”고 의견을 전했다.

3주 차인 10월 26일에는 울산과학대 한형섭 겸임교수(㈜HHS 대표)가 ‘산업 안전 분야에서의 AIoT 응용 및 통신방법’이란 제목의 강좌를, 한국항공대 김필은 교수가 ‘자율주행과 인공지능’이란 제목의 강좌를 각각 진행했다. 이날 국민대 이옥연 교수(정보보안암호수학과)는 오전에 ‘미래통신환경과 양자보안의 이해’이란 제목으로, 오후에 ‘양자 암호와 보안의 이해’란 제목으로 각각 강의했다. 이날 수강자 중에서 한 중고생은 “최근 기술 동향과 산업에 대한 지식을 얻고 진로 선택에 있어서 매우 유익한 시간이었다”고 밝혔고, 한 대학생은 “최근 빠르게 변화하는 트렌드를 놓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4주 차인 11월 2일엔 국민대 조주연 연구교수가 ‘차세대통신의 미래와 우주 개척’이란 제목의 강의를, 국민대 김형중 특임교수가 ‘비트코인이라는 디지털 화폐가 던진 충격’이란 제목의 강의를 각각 진행했다. 이날 오후엔 전남대 박호성 교수(전자컴퓨터공학부)가 ‘차세대통신과 인공지능(feat. 6G)’이란 제목으로, 국민대 김태형 교수(전자공학부)가 ‘차세대 이동통신 표준 동향’이란 제목으로 각각 강의했다. 이날 수강자 중 일부는 “흥미로운 주제를 접할 수 있던 좋은 기회였다”거나 “관심 있어서 듣고 싶었는데 정말 좋았다”는 소감을 남겼다.

고교생부터 대학생, 재직자 등 일반인까지 수강

▲ 서울시립대 김영민 교수가 ‘차세대통신 시스템의 이해와 SDR(Software-Defined Radio)’이란 제목으로 강의하고 있다. 

총 4차례에 걸쳐 진행된 ‘광주 마니 팝업 아카데미’에는 회차마다 50~60명이 참여해 총 236명이 강의를 들었다. 광주광역시에서 첨단 분야에 관심 있는 고교생부터 대학생, 재직자 등 일반인까지 다양한 인원이 수강했다. 매 회차 강의를 마치고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 응답자들은 60%가 대학생이었고, 차세대통신 분야의 관심(45%), 차세대통신 분야 최신 동향 파악(28%) 등으로 신청하게 됐으며, 60% 이상이 역량 강화에 도움이 될 것이고 타인에게 추천할 뿐만 아니라 계속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사업단은 이번 아카데미를 통해 본 사업의 성과를 지자체와 공유하고 확산할 프로그램을 발굴하는 계기가 됐으며, 아울러 첨단분야 혁신융합대학사업(COSS)과 차세대통신 컨소시엄을 알리는 기회도 마련됐다고 밝혔다. 사업단은 또 광주광역시에서 시작한 이 행사의 저변을 확대하기 위해 다른 지자체와 다른 분야 컨소시엄의 참여를 활성화할 계획도 갖고 있다.

2025년에 진행할 2기 아카데미에서는 참여한 시민들의 피드백을 반영해 사전 홍보, 강연자 및 주제 확대, 강연 수준의 다양화(초·중·고급 수준으로 확대), 첨단강의실 확보 등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또 2025년도에는 광주광역시 교육청과 협력해 ‘고교학점제(15주 차 운영)’도 계획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차세대통신 분야의 융합 전공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고 관련 분야의 인재가 배출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우수 수강생에 대한 미니 인터뷰

제1기 광주 마니 팝업 아카데미의 1회차부터 4회차까지 모두 참여한 우수 수강생 안영수 씨와 박진일 씨를 전화로 인터뷰했다. 2명의 인터뷰 내용을 간략히 소개한다.

Q. 현재 어떤 일을 하고 있나요?

안영수: IT 분야 기업에 1년 정도 다니다가 지금은 스마트팜 분야 기업에 취업하려고 준비 중입니다. 나중에 스마트팜도 운영해보려고 합니다.

박진일: 광주 인공지능사관학교에서 강의를 들으며 취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 개발자로 취업하고 싶습니다.

Q. 어떤 강의가 좋았고 어떤 도움을 받았나요?

안영수: 스마트팜에는 IoT 통신이 필요한데, 통신에 대한 관심 때문에 참여했습니다. 2주 차에 진행된 차세대통신 관련 강의가 좋았습니다. 통신 분야는 전혀 몰랐는데, 기초에서부터 심화까지 큰 틀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습니다.

박진일: 블록체인, 양자 암호, 양자통신 표준에 대한 강의가 재밌었고 신기했습니다. 이런 강의를 통해 시야를 넓힐 수 있는 계기가 됐습니다. 인공지능 에이전트 시대에 초개인화된 에이전트는 보안이 중요한데, 이에 필요한 암호와 관련해 블록체인이나 양자 암호를 접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Q. 1기 아카데미에서 좋았던 점은 무엇인가요?

안영수: 전체적으로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통신 분야는 처음이라 잘 몰랐는데, 한 번 훑고 수준에 따라 강의했던 부분이 마음에 듭니다.

박진일: 다과 준비, 친절한 안내 등 여러 가지가 너무 좋았습니다. 특히 강의를 마치고 질문에 대한 답변을 적극적으로 해주신 것이 좋았습니다.

Q. 2기 아카데미에도 참여하실 의향이 있나요?

안영수: 서울로 올라갈 예정인데, 2기 아카데미가 서울에서도 열리면 찾아가 볼 의향이 있습니다.

박진일: 2기 아카데미는 서울, 광주 등에서 열린다고 알고 있는데, 참여할 마음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