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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 앞에서 점을 찍어가는 법: 대학생활과 자기 탐색 박소희 재무금융・회계학부 조교수 이번 가을학기에 국민대학교에 입교한 신임교원으로, 1학년 학생들에게 회계학원론을 가르치고 있다. 파릇파릇한 새내기 학생들과 매주 얼굴을 맞대고 강의를 하다보면 벌써 십수년이 지난 내 대학생활이 스치듯 떠오르곤 한다. 알록달록 빛나고 에너지 충만했던, 동시에 한없이 불안하고 흔들렸던 그 시절. 얼마 전 다른 교수님들과 각자의 대학생 때를 이야기하면서, 다시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지를 서로에게 물어봤었다. 인생에 그렇게 찬란할 순간이 또 없을 것이기에 분명 그리운 시절이긴 하지만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는 대답이 많았다. 그렇게 대학 생활은 ‘나의 모양’을 파악하고 ‘세상의 영역들’을 이해하느라 누구나 각자의 방식으로 치열하게 보내는 시기인가 싶다. 고등학교 졸업 전까지 우리는 대부분 세상이 정해준 길을 따라 비슷한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 그러다 대학생이 되는 순간, 눈앞에는 낯선 백지가 펼쳐진다. 누구도 확실한 경로를 제시할 수 없는 그때부터 내 인생의 유일한 가이드는 바로 나 자신이 된다. 그래서 내 모양을 먼저 잘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20년을 함께 한 난데 설마 내가 나를 잘 모르겠냐며 이 미션을 가볍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때의 적극적인 탐색은 아마 이후 수년의 방황과 고뇌를 단축시킬지도 모른다. 나는 다시 2010년대 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일단 엔비디아 주식을 사고!) 일찍부터 나를 이해하는 데 시간을 더 쏟을 것이다. 여기서 어려운 지점은, 내면의 모양을 비추어주는 거울이 따로 없다는 데 있다. 내게 가장 효과적이었던 방법이 있다면 그건 ‘직접 다양한 그릇에 들어가보는 것’이었다. 어떤 부분이 모났고 어떤 부분에 홈이 파여있는지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간접 경험과 상상에만 의존할 수는 없다. 외국 생활을 해보고 싶다는 일념으로 수년간 돈을 모았던 내가 정작 교환학생으로 나가 본 후에야 스스로 한국을 떠나서는 행복하기 어려운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던 것처럼. 대학생 때 가능한 다양한 경험을 해보라는 조언은 너무 뻔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강조되는 이유는 막상 그렇게 행동하는 학생들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대학교 경영대학에도 눈앞에 펼쳐진 백지 앞에서 어떤 점을 찍어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학생들이 있을 것이다. 길을 잃었다고 느낄 때가 온다면, 우리 학교가 여러분이 탐색의 기회로 삼을 수 있는 많은 경험의 장을 제공하고 있음을 기억해주길 바란다. 그리고 인생을 조금 일찍 경험한 선배이자 학교의 교원으로서, 교수들도 학생들에게 언제든 도움의 손을 뻗을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도 꼭 알아주면 좋겠다. 우리 학생들이 국민대학교 경영대학의 자원들을 충분히 활용하면서 대학생활 동안 각자 성공적인 탐색의 시간을 보내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BizOn Online Newsletter Vol.78 (202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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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권민지
- 작성일2024-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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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관심] 기린과 麒麟兒 : 성과사회 속 청년들 대학은 종착역이 아니다. 많은 학생은 학생증을 손에 쥐고나서야 본인들이 통과한 관문이 그저 개찰구에 불과했음을 깨닫는다.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르바이트, 학점, 자격증, 대외 활동… 끝나지 않는 역(驛)이다. 치열한 성과사회 속에서 오늘을 견뎌야 하는 경영대학 학우들에게, 소설 하나를 소개하겠다. 2003년 출판된 박민규(1968) 작가의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이다. 주인공은 상업고등학교를 다니며 학업엔 좀처럼 관심 없는 학생이다. 어느 날 남루하기 짝이 없는 일터에서 버석한 얼굴로 사무를 보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개심해 역사(驛舍)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주인공의 역할은 ‘푸쉬맨’ 이다. 푸쉬(push), 그러니까 열차를 타기 위해 모인 사람들을 만원 전철 속으로 밀어 넣는 일이다. 180명 정원에 400명의 사람이 타야만 하는 지옥 같은 전철에 매일 같이 사람을 욱여넣는다. 400명 분의 피로의 정동을 피부로 접하는 일은 주인공에게 강한 탈력감을 선사한다. 푸쉬맨의 일도 그러했지만, 주인공이 이 사회에 염증을 느낀 결정적 이유는 자신의 삶이 시급 1000원, 1500원을 셀 뿐인 단순 산수로 시작하고 끝나리란 사실을 알아차린 데에 있다.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산수(算數)를 한다. 어떤 산수는 복잡하지만, 또 어떤 산수는 보잘것없다. 어떤 이가 통장에 평생 요만한 숫자를 빼고 더할 때, 어떤 이의 가공할 규모의 자산은 제대로 된 수학(數學)을 필요로 한다. 현대인이라면 너무나 익숙한 사실이다. 가끔은 이 잔인한 명제 탓에 괴리를 느낀다. 2024년 최저시급은 9860원, 나의 산수는 9860원이다. 하지만 자랑스러운 경영대학의 학생으로서 주로 배우는 것은 복잡한 수학식이다. ‘보잘것없는’ 쪽인 나의 것과는 너무 다르고, 나만이 9860원만이 반복되는 연산의 굴레에 매여 있다. 이 고민은 독자적인 것이 아니며, 현 청년층을 통틀어 보편적이다. 대부분의 경영대 재학생들이 출간년도(2003)와 비슷한 해에 태어났을 것이다. 작품 배경인 2000년대의 상황은 지금과 당연하게도 다르다. 수도권 지하철 1호선~8호선은 폐선과 개통을 반복했으며, 9호선과 경의중앙선, 공항철도 등이 신설됐다. 서울 권역의 교통은 편리해졌고, ‘푸쉬맨’이라 이름 붙여진 90년대 계약직 일자리도 없어졌다. 최저시급도 당시엔 2510원이었다. 이마저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해, 주인공 실질적 산수는 고작 1000원에 불과했다. 이 점을 생각해 보면, 9860원에 한탄하는 꼴이 우스워진다. 하지만 숫자의 단위가 슬픔의 크기일까? 그건 아니다. 현재가 반드시 과거의 발전형 모델인 것은 아니다. 사회는 모습을 바꾸는 만큼, 새로운 전장을 만들어 내기 마련이다. 그리고 아마 이 시대의 피로사회를 이끄는 새로운 키워드는 ‘능력주의’ 이다. 흔히들 성공이란 자신의 ‘의지’에 달렸다고 말한다. 하지만 과연 ‘의지’는 자유인가? 무엇을 하더라도 ‘갓생’, ‘망생’을 갈라 자신이 ‘참된 인간’임을 증명해야 하는 현실 속에서,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 규범이다. 성과사회의 보이지 않는 기준이며, 열차에 오를 이와 오르지 못한 이를 가르는 노란 경고선이다. 문제는 경고선의 하한이 물가만큼 가파르게 움직인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넘어서지 못한 개체, 흔히 ‘아싸’, ‘히키코모리’, ‘인셀’, ‘백수’-혹은 인식조차 제대로 되지 못해 이름조차 없는 정상사회의 탈락자들은, 자연히 ‘비인간’으로 변모한다. 인간 중심적 시선에서 모든 동물 계층구조의 꼭대기는 항상 인간이다. 인간만이 동물종(種)으로의 발달을 마치고 사회적 발전을 시작했기에 그 숭고함을 인정받을 수 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인간’의 기준이다. 철저히 성과사회를 위해 쓰인 기준을 소화하지 못한 사람은 그때부터 야만인이자, 동물로 분류된다. 문학계에서 비인간화는, 정상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타자화된 소외자를 표상하는 가장 직관적인 방법이다.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 속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가 그랬고,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속 주인공의 아버지가 그러했다. 소설의 클라이맥스, 주인공은 전철 플랫폼 안에서 기린을 발견한다. 기린의 정체는 얼마 전 실종된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기어코 ‘비인간’으로 전락한 것이다. 전철역 속 기린, 생뚱맞은 모습이지만 바쁜 사회인들은 각기 자신의 신체를 갈무리하기 바빠 좀처럼 관심을 두지 않는다. 주인공은 아버지에게 떨리는 말을 건넨다. 앞으로의 희망찬 미래를 읊고, 자신이 아버지가 맞다고 얘기해줄 것을 읍소한다. 기린은 손을 포개며 답한다.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그렇게 아버지는 피로사회와의 완전한 단절을 선언한다. 흔히 재주가 뛰어난 젊은 사람을 두고 ‘전설의 동물’ 기린을 빗대어 기린아(麒麟兒)라고 한다. 여기서 기린(麒麟)은 성인이 세상에 태어날 징조이자 희망과 성공, 행복을 전해 준다는 중국 고대로부터 전해져 내려온 상서로움의 상징이다. 사슴의 형태를 가지며 피부에 오색 영롱한 비늘이 돋아 있는 모습에 사람들은 숭고함을 느낀다. 기린(Giraffe)은 어떤가, 점이 박힌 노란 피부와 피부로 덮인 뿔, 세상 어느 동물보다 높고 넓은 시야. 어느 쪽이든 기린이 특이한 동물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특이’는 현대 사회에선 통용되지 않는 가치이며, 흠결이다. 그런 모습을 두고 골계를 느끼는 사람은 있더라도 숭고하다고 생각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기린(Giraffe)이 아닌, 기린아(麒麟兒)가 되고 싶은 욕망. 그것이 현대 사회이다. 사람들은 그를 위해 불특정 다수와 경쟁하고, 본인도 모르는 사이 매몰되어 스스로를 소진한다. 하지만 기린(麒麟)은 결국 전설의 동물이다. 각자도생 시대가 만든 환상이다. 현실에 존재할 수 없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은, 모두 존재하지 않는 기린아의 신화 속에서 고통받는 점박이 기린이다. 현대 사회는 그 자신이 기린이거나, 기린을 외면한 인간들로 가득하다.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의 출간 이후 20년이나 지났지만, 복잡한 수학 체계를 인생의 산수로 가진 이들의 세계는 공고하고, 단순 산수의 세계 역시 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몇 차례 경제 위기를 겪으며, 양극단의 첨도가 높아지기만 했다. 만약 우리가 기린으로 전락한 아버지의 모습에 조금이라도 씁쓸함을 곱씹었다면, 그것은 출간 당시부터 지금까지 피로사회가 건재하다는 사실의 방증인 것이다. 기자 김희서(22) BizOn Online Newsletter Vol.78 (202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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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권민지
- 작성일2024-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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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한 ESG 보고서, 기업 가치를 높이는 힘 선우혜정 KIBS 부교수 유례없는 추석 폭염을 경험하며, 기후변화 문제가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음을 체감할 수 있다. 이러한 기후 변화는 단순히 일상 속의 불편을 넘어, 환경 문제를 비롯해 사회적 책임과 기업 지배구조(Environmental, Social, and Governance; ESG)까지 포함하는 지속가능성의 중요성을 기업과 투자자에게 일깨워주고 있다. 이로 인해 ESG 보고서(지속가능경영보고서)의 역할과 그 영향력이 주목받고 있다. ESG 보고서는 기업의 재무제표와는 크게 다른 몇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 ESG 보고에 대한 통일된 기준이 아직 확립되지 않아 기업마다 작성 방식과 내용이 매우 다양하다. 둘째, ESG 보고는 기업의 자발적인 선택에 의해 이루어지며, 모든 기업이 이를 작성하는 것은 아니다. 마지막으로, 보고서의 내용이 잘못되거나 부정확해도 이를 제재하거나 법적으로 문제 삼을 수 있는 수단이 부재하다. 이러한 이유로 ESG 보고서의 신뢰성과 정보 전달 효과에 대한 의문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이러한 배경에서 필자는 ESG 보고서의 지속적인 발간이 기업 가치에 실제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게 되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ESG 보고서를 꾸준히 발간하는 기업들은 시장에서 더 높은 기업 가치로 평가받았다. 특히 ESG 보고를 지속하다가 중단하는 경우, 시장에서는 해당 기업의 ESG 활동을 기업 가치에 반영하지 않는 경향이 나타났다. 이는 꾸준한 ESG 보고가 기업에 대한 신뢰를 형성하고, 그로 인해 기업 가치 상승에 기여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러한 현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이론적 틀은 바로 신호 이론(signaling theory)이다. 신호 이론에 따르면, 기업이 지속적으로 ESG 보고서를 발간하는 것은 ESG 활동에 대한 진정성과 장기적인 투자를 나타내는 강력한 신호로 작용한다. 이 과정은 상당한 비용과 노력이 수반되기 때문에 단순히 보여주기 식이 아닌 진정한 ESG 활동을 증명하는 수단이 된다. 결과적으로 투자자들은 이러한 꾸준한 보고를 신뢰할 수 있는 정보로 인식하여 기업 가치를 높게 평가하게 된다. 또한, 꾸준한 ESG 보고가 기업 가치를 높이는 현상은 정보의 ‘신뢰성(reliability)’에 기반하고 있다. 신뢰성이 높은 신호는 단순한 약속이 아니라 조작이 어려운 ESG 활동의 성과를 통해 입증된다. 연구 결과, 꾸준히 ESG 보고서를 발간한 기업들은 에너지 절감, 산업재해 감소, 폐기물 배출 저감, 기부 활동 증가 등 실질적인 ESG 활동이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즉, 기업이 단순한 선언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개선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 신뢰성을 강화하며, 이는 투자자들에게 긍정적인 신호로 작용해 기업 가치의 상승을 이끌어낸다. BizOn Online Newsletter Vol.77 (202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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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권민지
- 작성일2024-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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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관심] AI의 윤리적 과제: 공정한 인공지능 AI 편향성이란 무엇인가? 오늘 하루를 되돌아보았을 때, 인공지능(AI)을 사용한 적이 있는가? 아니면 온라인 쇼핑 시 추천 상품을 확인한 적 있는가? 이러한 순간들은 우리 생활에서 AI가 깊숙이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016년, 알파고와 프로바둑 기사 이세돌이 대국을 펼칠 때만 해도 인공지능(AI)과 나는 접점이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일상을 살펴보면 교육, 금융, 건강 등 다양한 방면에서 AI가 자리 잡고 있다. 이제는 "AI 없이 살 수 없다"는 말이 과언이 아닐 정도로 AI는 우리의 일상에서 상용화 되어있다. AI는 단순한 도구를 넘어 우리 삶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변화를 일으키며, 보다 효율적이고 편리한 삶을 누리게 하고 있다. 이에 관해, 우리는 인공지능이 무엇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인공지능(AI)은 인간의 지능을 모방해 인간처럼 생각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설계된 컴퓨터 프로그램이다. AI는 머신러닝, 딥러닝 등의 기술을 활용하여 데이터를 분석 및 학습하며, 알고리즘에 기반해 패턴을 인식하고 예측한다. 넷플릭스 같은 OTT 서비스에서 영화를 추천해 주거나 SNS의 개인 맞춤형 광고가 인공지능(AI) 머신러닝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머신러닝은 빅데이터를 통해 복잡한 패턴을 발견하고 예측을 수행하며, 더 나은 의사결정을 내리고 개인화된 서비스 제공할 수 있게 한다. 또한 기존에 해결하기 어려웠던 문제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하여 비즈니스, 과학, 의료 등 모든 분야에서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의 한계와 문제점도 생각해야 한다. 머신러닝 기술은 학습 데이터의 품질과 양에 크게 의존하기 때문에, 학습 데이터에 편향이 있다면 AI도 편향된 결론을 내릴 수 있다. AI 편향성이란 AI 의사결정이 한쪽으로 치우친 결과를 만들어내는 경향성을 의미한다. 과거의 데이터를 학습하는 AI에게서 이러한 현상이 나타난다. 실제로 이미지 생성 AI인 ‘스테이블 디퓨전’이 생성한 판사 이미지 중 여성은 약 3%에 불과했지만, 실제 미국 판사의 34%가 여성이었다. 이러한 편향성 문제는 점점 AI의 활용 범위가 넓어지는 만큼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이어질 수 있음을 경고한다. 2018년, 이슈가 됐던 [아마존의 채용 AI]를 대표적인 사례로 꼽을 수 있다. AI가 학습한 데이터에 내재된 편견이 알고리즘에 반영되면서 특정 성별이나 인종을 차별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AI는 당시 남성 비율이 높았던 개발 부서의 이력서를 기준으로 학습하여 ‘여성’이라는 단어가 포함된 이력서를 낮게 평가하는 등 성별 고정관념이 알고리즘에 반영되었었다. 결국 아마존은 데이터를 수정하거나 알고리즘을 고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여 해당 AI 채용 프로그램을 폐기하였다. 앞으로 우리의 세대는 끊임없이 발전하는 인공지능(AI)을 경험할 것이다. AI의 급속한 발전은 윤리와 인권, 안보 등의 측면에서 예상치 못한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다. 우리는 인공지능(AI)을 개발하고 활용할 때, 윤리적 문제를 항상 염두에 두고, 공정하고 투명한 AI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 사회의 구조와 문화에 따라 데이터가 편향된다면, 인공지능 역시 편향될 수밖에 없다. 인공지능의 편향성 문제는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이어질 수 있음을 계속 인지하고, 이러한 한계점을 해결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인간이 개입해야 한다. 편향적인 데이터가 아닌 다양한 데이터를 충분히 확보하고, 데이터 전처리 과정에서 편향을 제거해야 한다. 그리고 AI의 의사결정 과정을 명확히 설명할 수 있는 해석 가능한 모델을 개발하여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해야 한다. 인공지능의 발전이 가져올 변화는 우리에게 큰 기회를 제공하지만, 동시에 그로 인한 부작용과 편향 문제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AI가 인간의 가치와 윤리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나가길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 기자 김민서(23) BizOn Online Newsletter Vol.77 (202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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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권민지
- 작성일2024-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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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 백] 무능한 리더의 그림자 속에서 리더의 중요성과 선택 및 학습에 대한 고찰 우리는 학교에서 정치를 배우지 않는다. 물론 정치 교육이라는 것을 초기에 정착시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겠지만, 그 필요성을 절대 무시해서는 안 된다. 정치 교육의 부재는 정책과 공약의 상세한 계획에 따라 사람을 뽑는 법, 건강한 토론을 통해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법에 대한 무지를 가져왔고, 민주적 가치와 법치주의에 대한 이해의 부족을 야기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는, 우리가 올바른 리더를 선택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는 점이다. 모든 조직은 마치 시계와 같다. 시계의 내부 기계 요소가 정확하게 맞물려야 하듯이 조직 내부에 들어있는 기계적 요소가 정확하고 정교하게 작동해야만 현재의 운영을 넘어 건강한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높은 차원에서 그 정교함을 주도하는 ‘리더’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그런 리더가 무능하다면 효과적인 정책을 수립하고 실행하는데 있어 문제가 생길 것일 뿐더러, 올바른 정책이 나올 가능성 자체가 현저히 적어진다. 또 그들은 필연적으로 대중에게 보여질 수 밖에 없는 자리에 있는 만큼 대중에게 그 무능함이 보여질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대중으로부터 신뢰를 잃을 수 밖에 없게 된다. 그렇게 상실된 신뢰는 불안감을 야기하기도 한다. 우리는 무능한 리더를 경계해야 하며, 그들을 올바르게 선택할 수 있는 안목을 길러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현재의 세태를 보면, 우리가 리더를 선택한다기보다는, 정치적 시스템이 제공하는 제한된 선택지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따라가는 경우가 많다. 정치에 대한 무관심과 사회에 대한 무기력증은 우리를 쉽게 흔들리는 존재로 만든다.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끝없는 관심과 다양한 시선에 대한 경청, 귀찮음과 무기력증을 딛는 꾸준한 관심이 필요하다. 우리는 문제의 양면을 살펴보고, 각 시기와 상황에 적합한 리더를 선택해야 한다. 이는 단순히 정당의 색깔이나 사회적 분위기에 휩쓸리는 것이 아닌, 진정으로 가치 있고 적합한 리더를 선출하는 당연한 과정이어야 한다. 물론, 리더를 잘못 선택하는 책임이 개인에게만 있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제도적인 변화 역시 필요하다. 정치 교육뿐만 아니라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 인문학, 철학 같은 분야의 교육이 중요하다. 민주주의 사회의 건강과 지속성을 위해, 이러한 교육은 필수적이다. 비록 이러한 변화를 시작하는 일이 어려워 보일지라도, 장기적으로는 우리의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중요한 첫걸음이 될 것은 분명하다. 무능한 리더에 앞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을 탓하기보다는 스스로를 돌아보고 미래를 위해 학습하려 한다. 점점 더 뒤틀어지고 있는 정국이 마음을 무겁게 하고 앞날이 어두워 보일지라도, 우리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올바른 리더와 실질적인 개선점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배우고 주의를 기울이려 한다. 그렇게 우리는 무능한 리더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편집장 강민군(22) BizOn Online Newsletter Vol.76 (202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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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이주협
- 작성일2024-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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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관심] 파리 올림픽과 정치적 올바름 정치적 올바름이란 무엇인가 2024년, 세계인들의 축제인 올림픽이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되었다. 그러나 개회식 도중 연출된 한 장면인, 필리프 카트린의 디오니소스 분장 장면이 기독교의 상징성을 훼손했다는 비판으로 인해 논란이 촉발되었다. 이 장면은 드랙퀸 차림과 더불어 예수를 연상시키는 연출로 기독교 보수주의자들과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에 대한 피로감을 느낀 이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결국 프랑스 가톨릭 주교회는 "그리스도교를 조롱하는 장면"이라며 비판 성명을 발표했다. 논란이 커지자, 개회식 기획 측은 그리스 신화의 디오니소스를 통해 폭력의 부조리함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해명했으며, 예술감독 토마 졸리도 의도된 연출이 아니었다고 밝혔다. 서구 미디어에서는 정치적 올바름을 이유로 실존 인물이나 원작이 분명히 존재했던 캐릭터의 성별을 변경하는 사례가 많아졌고, 이에 항의하는 사람들을 ‘정치적 올바름을 수용하지 못하는 몰지각한 사람’으로 매도하는 사태가 최근 들어 발생해왔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서 파리 올림픽 개회식 논란이 그리스도교까지 정치적 올바름의 대상으로 삼으려 한다는 비판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이에 관해, 우리는 정치적 올바름이 무엇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정치적 올바름은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편견이 섞인 표현을 지양하는 신념이며, 그러한 신념을 바탕으로 추진되는 사회적 운동을 일컫는다.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표현은, 20세기 초 러시아 공산당에 의해 처음 사용되었는데, 당시 공산당의 지침에 부합하지 않는 발언을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다’라고 비판하며 반대파를 숙청할 때 사용하였다. 즉 정치적 올바름은 초기에 공산주의와 같은 극단적 사상에 기반한 용어였으나, 1970년대 이후 정치적 올바름은 미국에서 농담 중 하나로 사용되었다. 당시 미국 대학의 학생이 성차별적 또는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하는 동료를 보면, 문화혁명 시기 홍위병을 따라 하며 "그 발언은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소, 동지!’라고 말을 했다고 한다. 이 시기에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말은 페미니즘과 반인종주의자 내에서 퍼지게 되었다. 나아가 1990년 초반부터 정치적 올바름은, 위에 언급한 소수자와 약자에 대한 차별에 저항하는 사회적 운동의 의미로 발전하게 되었으며 이후 오늘날에는 다문화주의, 여성주의 등 여러 이념을 총칭하는 개념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현재 정치적 올바름의 긍정적인 사례의 대표적인 예로는 ‘날고기를 먹는 사람’이라는 뜻의 에스키모라는 단어가, 야만적인 비하 단어로 여겨져 이누이트라고 바꾸어 부르는 것이 있다. 그러나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경우도 있는데, 대표적인 것으로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둘러싼 논쟁이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최근 개봉한 여러 영화에 여성 출연진을 중심으로 여럿 등장시킨 것이 작품의 완성도를 희생하여 정치적 올바름을 강조했다는 것이다. 이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가 남성 중심적인 영화계에 대한 반론을 제시하는 사람들과 부딪혀 갈등을 일으켰다. 문제는 이 논쟁이 ‘너의 생각은 틀렸고, 매우 몰지각하고 비상식적이다’라고 주장하며 서로를 공격하는 양상을 띠며 흘러갔다는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결국 이 갈등의 근본적인 해결에 대한 논의는 되지 않은 채, 양측이 계속 대립하는 상태에 이르렀다. 필자는 최근 국내외 정치적 올바름이 주제가 되는 담론이, 정치적 올바름의 원래 목적인 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함축한 언어사용과 차별을 철폐하는 운동이 아닌, 자신과 대립하는 진영을 공격하고 매도하는 데에만 급급한 하나의 무기로써 사용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옳고, 너는 잘못됐다.’ 식의 태도는, 건설적인 논의는 커녕 사회의 침묵을 야기시켜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게 만든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여 정치적 올바름이 추구하는 소수자 편견 철폐를 달성하려면, 개인의 의견이 상대방에 의해 공격, 매도당할 걱정이 없는 열린 대화의 장 형성 및 사회적인 분위기가 필요하다. 인간에게 가장 도전적인 일 중 하나인,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하는 것’은 정치적 올바름을 다루는 담론에서 가장 필요한 ‘올바른’ 자세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모두 열린 마음으로 논의에 참여하여 최선의 결과를 추구하는 대화의 장이 열리는 날이 오기를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 기자 정이안(24) BizOn Online Newsletter Vol.76 (202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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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 작성자이주협
- 작성일2024-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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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 백] 홀로 밤을 지새우는 우리는 강하다 마음의 병에도 무너지지 않은 그대와 아픈 이에게 손을 내밀어준 그대에게 전하는 이야기 본 필자는 5년 전, 공황장애를 겪은 적이 있었다. 비록 일상 속에서 그전과 같이 생활했으며 그 정도가 심하지 않아 빠르게 증상들을 떨쳐낼 수 있었지만, 그때의 흔적은 여전히 깊게 남아 지금의 필자에게 꾸준히 영향을 미치고 있다. 돌이켜보았을 때 당시에 가장 힘든 것은 사회적 인식이었다. 필자 주변에 있는 이들 중에 그 누구도 좋지 않은 말을 한 적도, 좋지 못한 시선으로 바라본 이 없었지만, 말하고 있는 필자와 그것을 듣는 이 모두 그 상황을 어렵게 느꼈다는 것은 눈을 감고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이렇듯 마음의 병은 우리 인류와 긴 세월 함께해왔지만, 여전히 사회적 인식이 완화되고 있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비록 그들은 잘못한 것이 없고, 우리는 작은 마음 하나만 주면 되는 것인데도 말이다. 현대 사회의 변화 속도는 의심의 여지 없이 매우 빠르다. 본 필자 역시 편집장 연재 칼럼을 써오며 본 사회의 현 시대를 이해하기 위해 꾸준히 강조 및 사용해온 표현 중 하나였다. 빠른 변화의 흐름과 그에 대한 적응, 그속에서 더욱 강해지는 경쟁은 혹자로 하여금 정신적 압박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하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는 마음의 병을 앓는 사람도 많아지고 있는 것 역시 사실인데, 그와 반대로 우리 사회의 인식은 여전히 차갑다. 실제로 통계에 의하면 성인 10명 중 1명은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데, 그중 절반이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출처: 한국병원협회). 그러나 이것이 사회적 인식과 상관 관계가 있을 수 있다고 추론 역시 가능한데,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이들 4분의 1이 사회적인 편견과 차별 때문에 정신건강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을 꺼려 한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세상은 차갑고 냉정한데, 주변에 있는 환경마저도 사실 그들을 응원해주고 있지 못한 것이다. 이렇듯 사회적 인식의 힘은 생각보다 세다. 학창시절 배웠던 낙인 이론만 생각해보더라도, 사회적 인식이 얼마만큼 한 사람에게 큰 파장이 되어 심리적 영향을 미치는지 우리는 아주 잘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힘은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이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정신건강증진협회에 따르면 한국의 정신질환 환자 중 30%가 사회적인 태도나 편견으로 힘들어하고 있다고 한다. 이 수치를 앞서 언급한 것과 함께 보았을 때, 우리나라에서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사회적인 인식으로 인해 더 큰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부분이 개선되지 못하면 현재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이들의 수가 증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끝없이 이런 현상들이 반복될 것 역시 분명하다. 감기는 보편적이고 누구나 한번씩은 앓는 병이다. 불현듯 어느날 찾아와 잠시 우리의 일상을 멈춰 세우기도 하지만, 우리는 감기를 두려워하지도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따듯한 차 한 잔, 평온하고 깊은 잠 한 숨, 회복을 돕는 약 조금이면 된다. 마음의 병도 감기와 다를 바 없다. 슬그머니 우리의 일상에 찾아와 일상을 잠시 바꿔놓는다. 그러나 따듯한 차와 같은 위로와 이해를, 회복을 돕는 약과 같은 전문인의 도움이 있다면 그리웠던 일상은 다시 품안으로 돌아오곤 한다. 마음의 병을 앓고 있다면 두려워하지 않고,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모두가 이제 그만 감기처럼 마음의 병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 좋겠다. 마음의 병에 대한 열린 마음과 따듯한 시선으로 한 발자국 나아가고, 부끄러움과 두려움이 아닌 용기와 기운 찬 좋겠다. 모든 것은 변화에서 시작하는 법. 우리 사회가 진정 함께 만들어가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며, 이제는 마음의 병에 대한 인식 개선 역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기를 작게나마 바란다. ※ 도움이 필요하시거나 상담이 필요하신 분은 자살 예방 상담 전화 ☎1393, 정신건강 위기 상담 전화 ☎1577-0199, 또는 청소년 전화 ☎1388로 연락해주시기 바랍니다. 24시간 언제든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편집장 강민군(22) BizOn Online Newsletter Vol.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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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한예빈
- 작성일2024-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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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관심] 알고리즘이 나눈 세상: 초개인화 시대의 다양성과 분열 추천 알고리즘이 만들어낸 편향 속 사회의 분열 유튜브로 영상을 본 적이 있는가? 아니면 넷플릭스로 영화를 본 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당신의 삶엔 추천 알고리즘이 알게 모르게 침투해 있다고 볼 수 있다. 현대 사회는 추천 알고리즘이 일상을 지배하는 초개인화 시대이다. 추천 알고리즘이란 사용자 정보나 콘텐츠 정보를 기반으로 사용자에게 콘텐츠를 추천하는 기술로, 삶의 곳곳에서 개개인의 취향과 관심사에 따라 맞춤 정장처럼 꼭 맞게 추천해 준다. 온라인 쇼핑몰에선 내 평소 스타일에 맞는 옷을 추천해 주고, 음악이나 영화 스트리밍 사이트에서는 내가 좋아할 만한 음악과 영화를 찰떡같이 골라주며, 심지어 뉴스까지도 내 관심사에 맞춰 제공되고 있다. 이러한 알고리즘 덕분에 우리는 획일화된 취향의 시대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개성과 다양성이 반영된 세상을 경험할 수 있지만, 과연 이것이 긍정적인 효과만 있을까? 초개인화의 부작용에 대해서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정보의 벽: 필터링된 세상 추천 알고리즘은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더 많이 제공함으로써 개인의 취향을 탐색하고 강화하는 데 도움을 준다. 유튜브 담당 임원인 닐 모한은 2019년 3월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추천 알고리즘 도입 덕분에 유튜브 사용자들의 총시청 시간이 20배 이상 증가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동시에 기존 관심사 밖의 새로운 정보나 다른 관점에 대한 노출 기회를 줄이게 된다. 추천 알고리즘이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들과 소통을 어렵게 하는 정보의 벽을 만들어 낸 것이다. 과거 매스 미디어의 시대에는 누구나 같은 정보를 접했기에 세상의 다양한 의견을 쉽게 접할 수 있었다. 내 입맛에 맞게 필터링된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는 새로운 시각과 다양한 정보에 노출될 경험이 줄어들어 시야는 좁아지고 편향은 더욱 강화되고 있다. 이는 극단적인 개인 의견이나 증오심 표현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다양성의 시대 속 공감 부족 초개인화 시대의 도래로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한 개성을 가진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지만, 추천 알고리즘이 만들어 낸 정보의 벽으로 인해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은 저하되었다. 원인은 확증 편향 때문이다. 확증 편향은 기존에도 존재했지만, 추천 알고리즘의 등장으로 더욱 심화하였다. 확증 편향이란 자신의 견해와 일치하는 증거는 적극적으로 찾으려 하지만, 자신의 견해를 반박하는 증거는 찾으려 하지 않거나 무시하는 경향성을 말한다. 한국 사회 및 성격 심리학회에서 ‘2024년 한국 사회가 주목해야 할 사회심리 현상’으로 확증 편향을 선정할 만큼 현재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키워드이다. 확증 편향으로 정보의 편식이 심해지며 사회 양극화와 분열이 심화하고 있다. 인터넷상에서 정치, 종교, 성별, 나이 등 수많은 다양성이 서로 충돌하며 벌어지는 갈등과 혐오 표현에서 드러난다. 인터넷상 갈등의 범람이 현실 사회로 넘칠까 걱정되는 시대이다. 수용성 인간이 되기 위해선 초개인화 시대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는 스스로 추천 알고리즘이 만든 정보의 벽을 벗어나고자 노력해야만 한다. 타인의 의견과 가치관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경청하며 공감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필요하다. 추천 알고리즘 의존에서 벗어나 다양한 정보를 찾아보며 여러 관점에 노출되는 것이 편향을 막을 방법이다. 내 의견과 충돌하더라도 상대의 입장에서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내 의견과 일치하는 정보이더라도 그 진위와 정보의 출처를 확인하고 다양한 관점을 고려하여 생각해 보는 비판적 사고력을 키워 사회 구성원으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행동해야 한다. 알고리즘은 우리의 삶을 그 어느 때보다 편리하게 해 주는 도구이지만 그것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게 해서는 안 된다. 알고리즘을 도구로써 현명하게 활용하되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초개인화 시대 속에서 나타난 수많은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 우리는 함께 노력해야 한다. 기자 박민혜(23) BizOn Online Newsletter Vol.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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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한예빈
- 작성일2024-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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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한예빈
- 작성일2024-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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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관심] 대학으로의 문, 꿈과 현실 사이에서 '의미 있는' 대학 생활의 '의미'를 찾아서 '나'라는 인간을 '체험'하는 것, 그것이 '삶'이다 3월의 캠퍼스는 신입생들의 들뜬 마음과 함께 활기찬 분위기로 가득 차 있다. 대학으로의 문을 열고 새로운 여정이 시작되는 순간이며, 이는 꿈과 현실이 만나는 곳이다. 신입생들은 기대와 설렘 속에서 새로운 환경과 사람들을 만나며 대학 생활에 대한 다짐과 계획을 세우고 있을 것이다. 프리드리히 니체의 말처럼, 우리는 '나'라는 인간을 '체험'해 삶을 이해하고 의미를 부여한다. 대학 생활은 이러한 '나'의 다채로운 경험을 통해 삶의 의미를 탐색하고 발견할 수 있는 공간이다. 대학은 단순히 지식을 습득하는 장소뿐만 아니라, 자기 발견과 성장의 과정을 거치는 곳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대학 생활을 통해 왜 대학에 다녀야 하는지, 의미 있는 대학 생활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넘어서 삶의 깊은 의미에 대해 고찰할 수 있다. 학기 초에는 새로운 시작의 기운이 가득하여 누구나 자기 삶에 대한 의미와 목표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될 것이다. 이 글에서는 대학 생활의 시작에 앞서 누구나 가지고 있는 꿈과 현실 사이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과 고민, 그리고 '의미 있는' 대학 생활에 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나' 중심으로 대학을 바라보다 대학은 오랜 역사를 가진 사회 제도 중 하나로, 현재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고등 교육을 제공하는 주요한 기관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과거에는 서양에서조차 소수의 엘리트만을 위한 특권적인 곳으로 여겨졌다. 한국 역시 대학 진학률이 상대적으로 낮았으며, 수능이 실시되기 시작한 1996년 이후로 대학 진학률이 상승하여 현재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대학 진학을 희망하는 추세이다. 이러한 대학 진학의 중심에는 주로 '취업'이라는 목표가 있다. 한국 대학신문에 따르면 초·중·고 학생 10명 중 9명은 대학에 가기를 희망했고, 이들 가운데 절반 이상은 ‘좋은 직업’을 갖기 위해 대학에 가고 싶다고 답변했을 정도이다. 그러나 비교 대상이 필요한 '유리하다'라는 피상적인 생각으로 대학에 진학하게 된다면, 대학 생활에서 니체가 말한 '나'라는 인간을 체험하지 못할 것이다. 타인의 삶과 비교하기보다 '나 중심'으로 대학을 바라보고 대학의 필요성과 가치를 판단하는 것이 대학을 수단으로만 바라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그 자체가 순수한 목적이 될 수 있게 하는 방법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한 철학 교수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삶의 의미라는 개념은 '깊이와 관련되어 있어 삶의 의미를 향한 갈망은 자기 삶이 피상적, 즉 '깊이가 얕다'는 인식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의미 있는'이라는 형용사는 어떤 삶을 평가할 때 우리가 떠올리는 '가치'를 가리키지만, 그 가치가 정확히 무엇을 뜻하지는 분명치 않다는 것이다. 이렇듯 개인마다 해석하는 삶의 의미가 다르듯이 학년마다 부여하는 대학 생활의 의미도 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1학년 때의 의미 있는 대학 생활과 4학년 때의 의미 있는 대학 생활에서의 '의미 있는'이 갖는 의미는 명백히 다르다. 그래서 학년별로 내포한 의미 있는 대학 생활을 제품 수명 주기에 대입하여 간단하게 생각해 보자. 학년별로 정의한 '의미 있는' 대학생활의 '의미' '도입기'에는 제품이 처음으로 시장에 등장하는 시기이다. 즉,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제 막 대학교에 입학한 새내기인 1학년들의 시기와 같다. 이 단계에서는 제품의 인지도 낮기 때문에 이익이 많이 창출되지 않아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마케팅, 프로모션 등의 많은 투자가 필요한 시기이다. 이 시기에는 대량 생산보다는 다품종소량생산에 더 집중하여 상품의 다양성 전략을 이어나가는 것이 일반적인데, 1학년도 똑같다. 하나의 길을 깊게 파는 것보다는 다양한 것을 경험하며 진짜 '나'에 대해서 탐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이 핵심이다. 만남과 경험 속에는 실패가 있을 수 있지만, 이 실패들도 결국 본인의 거름이 될 것이다. 동아리, 스터디, 학회, 여행, 아르바이트, 축제 등등 고등학교 때는 자율적으로 해보지 못한 더 넓은 세상을 맛보는 것이 1학년 때의 의미 있는 대학 생활이라 생각한다. '성장기'에는 제품이 어느 정도 인지도를 갖게 되어 판매 속도가 증가하는 시기이다. 이때는 경쟁업체가 등장하게 되어 기업은 자사 제품의 장점을 강조하는 마케팅을 펼치는 등 새로운 시장과 유통경로 개척, 품질개선에 큰 비용을 투자하게 된다. 2학년 때 의미 있는 대학 생활을 보내기 위해서는, 이처럼 본인의 장점을 강조하고 이 장점에 몰입하는 것이 필요하다. 1학년 때 경험했던 다양한 활동 중에서 본인에게 정말 필요한 것들을 추리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시기이다. 다방면으로 일을 벌이는 것보다는 본인의 장점과 흥미의 교집합을 찾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성숙기'에는 판매 증가율이 조금씩 감소하면서 판매량이 일정 수준에서 유지되는 시기이다. 이때는 기업은 제품의 경쟁 우위를 선점하고 고정 고객을 관리하는 데 집중하게 되는데, 3학년에게 대입해 보자면 '안전성'을 확보하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4학년이 되기 직전의 학년이기 때문에, 4학년을 준비하면서 안전성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이때의 안전성은 본인의 능력을 확충하는 것이라 할 수 있는데, 결국 사회에서 안정감은 본인의 확실한 능력이라 생각한다. 본인이 나아갈 길을 구체화하고, 이 길을 뚫고 나갈 힘을 실제로 만들어 내야 할 시기이다. 냉혹한 현실을 마주했을 때, 타격감이 없도록 에어백을 만들거나 차량 자체를 튼튼하게 제작하는 시기가 이때라 생각한다. 제품은 경쟁 과열이나 트렌드의 변화 등의 다양한 원인으로 인해 '쇠퇴기'에 접어들게 된다. 그러나 기업은 제품이 쇠퇴기에 들었다고 해서 무조건 폐기하는 것이 아니다. 제품이 쇠퇴기에 접어들게 되는 상황에서 기업이 선택할 수 있는 전략 중 하나는 고객 맞춤 차별화이다. 이는 4학년의 대학생활에서도 중요한 원칙이 될 수 있다. 고객 맞춤 차별화는 자신을 독특하게 만들고 경쟁 우위를 확보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대학생으로서 자신의 경험과 노력을 통해 자신만의 독특한 가치를 창출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4학년의 대학 생활은 미래에 대한 결정을 내리고 진로를 선택하는 중요한 시기이다. 이때는 자신의 경험과 준비를 바탕으로 더 나 자신을 발전시키고 독특하게 만드는 것이 필요하기에 자신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 미래에 대한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을 의미한다. 끊임없는 질문 사람을 뜻하는 산스크리트어인 manu(마누)가 생각한다는 뜻의 man(만)에서 파생되었다고 한다. 이것은 우리가 사고하는 능력을 강조하며 인간의 창조적인 존재임을 시사한다. 17세기 프랑스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유명한 명제를 제시하여, 인간의 의식과 존재의 관계에 대한 심오한 고찰을 이끌어 냈다. 그의 철학은 의심과 확신의 과정을 거치며, 우리에게 인간이 자신의 존재와 이해를 어떻게 파악할 수 있는지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졌다. 우리가 데카르트처럼 모든 것에 대해 의심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학문적인 탐구와 철학적인 사유를 통해 우리의 이해를 깊이 있게 발전시키는 것은 중요하다. 특히 대학 생활은 지식을 넓히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따라서 우리는 대학에서 배우는 지식에 대해 단순히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의문을 제기하고 탐구함으로써 심층적인 이해를 얻어야 한다. 대학 생활은 그 자체로 우리의 '나'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얻게 해주는 여정이다. 질문을 통해 우리는 자아를 발견하고, 자아를 이해함으로써 우리의 삶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따라서 대학에서는 단순히 지식을 축적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야 우리는 가치 있는 졸업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기자 오서영 (23) 디자인 곽나원 (21) BizOn Online Newletter Vol.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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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한예빈
- 작성일2024-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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