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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한강 노벨문학상 수상… 출판계의 빛?

  • 2024-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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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노벨문학상 수상… 출판계의 빛?

호조를 맞이하는 출판업계의 자세


현대 사회에서 책과 인쇄물이 설 자리는 꾸준히 줄어들었다. 종이책은 E-Book(전자책)이 대신했고, 학생들은 두꺼운 전공책 대신 아이패드를 든다. 출판 산업은 사양길에 들어선 지 오래다. 2023년 기준 71개 출판사의 총매출은 4조 9336억 원이었는데, 가장 규모가 큰 출판사인 웅진씽크빅이 全 한국기업 매출 순위 684위에 불과하다. 문제집 주력의 교육 출판 부문을 제외하면 실정은 더 처참하다. 지난해 단행본 시장의 주요 출판사(21개사)의 매출액 합계는 약 4328억 원, 이 마저도 2022년(약 4450억 원)에 비해 2.7%p 감소한 수치다. 하지만 지난 10월 10일(목), 침체에 빠진 출판업계를 구원할 희소식이 전해졌다. 스웨덴 한림원이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한강이 선정되었음을 공포한 것이다. 과연 한강의 노벨상 수상이 메마른 출판 산업계의 마중물이 되어줄 수 있을지, 출판계 전체에 기대가 감돌고 있다.


‘노벨상 효과’로 판매 급증, 관련 산업계 수혜

노벨문학상 수상이 확정되며 관련 산업계(출판·인쇄·도서유통)는 전례 없는 호조를 맞이했다. 반나절 만에 시중 대형 서점의 재고가 소진됐다. 도서유통 3사(교보문고, YES24, 알라딘)는 수상 발표 이후 닷새 만에 판매 부수가 103만 권을 넘어섰다고 밝혔다. 출판유통전산망에 집계된 지난달 소설 분야 종이책 판매 부수는 220만 권이다. 이는 2023년 10월 판매 부수 110만 권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뛴 수치이다. 해당 수치는 전자책 제외 종이책 판매분만 집계되며, 판매 부수는 서점의 참여도에 따라 실제보다 낮게 측정되므로 실 판매 부수는 이보다 훨씬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


▲ 작년 10월과 올해 10월 판매 부수 비교 (출처:한국도서출판정보센터)


종합 출판사 창비는 ‘한강 효과’를 가장 크게 보고 있다. 창비가 판권을 가진 『소년이 온다』, 『채식주의자』는 도서 유통 플랫폼의 판매 부수 순위에서 나란히 1, 2위를 유지 중이다. 그 외 문학동네(『작별하지 않는다』,『흰』,『희랍어시간』외 5권), 문학과지성사(『여수의 사랑』 외 3권) 등의 출판사가 ‘한강 효과’의 주역이 됐다. 출판사 이상의 쾌재를 부르고 있는 것은 도서유통업계이다. 도서유통계는 판매 대금의 40%라는, 출판사 못지않은 몫을 챙겨가기 때문이다. 게다가 유통회사는 한강의 모든 도서를 팔 수 있어, 판권을 가진 소설만 매출로 집계되는 출판사보다 유리한 위치다. 노벨상 수상 소식은 인쇄 업계에도 가뭄 속 단비가 됐다. 넘쳐나는 수요를 맞추기 위해 인쇄업계는 밤낮으로 인쇄기를 돌렸다. 당시 인쇄업계가 하루에 찍어낸 소설의 양은 1만 7000권가량이다. 


도서유통업계, 마케팅에 총력… 출판사들은 중쇄에 집중

도서유통계는 활발한 판촉 활동을 전개했다. 오프라인 서점(교보문고, 영풍문고 등)은 수상 소식 이후 신속히 매대를 설치했다. 이후 한강 도서가 절판되자, 한강의 아버지인 한승원 작가의 책을 전시하는 기발한 큐레이팅을 선보이기도 했다. 온라인 서점(교보문고, 영풍문고, 알라딘, YES24 등) 또한 발 빠르게 마케팅 활동에 나섰다. 그 중 영풍문고는 ‘한강의 책장’을 컨셉으로 △한강 작가의 인생 책 △아버지 한승원 작가의 책 △최근 작가가 읽은 책 중 하나를 골라 읽고 싶은 이유를 적어 이벤트에 응모하면 추첨을 통해 포인트와 사은품을 증정하는 행사를 지난 17일(일)까지 진행했다. 교보문고 또한 한강 독서 용품 굿즈를 제작해 증정 행사를 진행 중이다.


▲교보문고의 독서사은품, 영풍문고의 인생책 이벤트 (출처: 교보문고, 영풍문고)


온오프라인 서점이 활발한 마케팅을 펼치고 있지만, 주요 출판사들(창비, 문학동네, 문학과지성사)은 중쇄에 전념하는 모습이다. 넘쳐나는 수요에 여력이 없는 탓이다. 현재까지 주요 출판사들은 마케팅, 북 리뉴얼 등을 계획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교보문고와 지역서점, 호조 속 갈등

사상 처음이라고 할 수 있는 호황에 크고 작은 갈등들이 발생하기도 했다. 교보문고는 오프라인 서점임과 동시에 전국 서점에 도서를 공급하는 유통업체기도 하다. 전국구 도서 전문 유통업체는 한 손에 꼽을 정도로 적고, 교보문고는 현시점 최대 유통 업체이다. 하지만, 한국서점조합연합회(이하 ‘한국서련’)는 지난 10월 17일(목) 교보문고에 문제를 제기했다. 지역 서점에 한강 소설을 제대로 공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국서련은 노벨상 발표 직후 발주를 막고 이후 주문량을 10부로 제한한 것과, 교보문고와 공급계약을 맺은 지역 서점들이 노벨상 수상 후 일주일이 지나도록 한강의 도서를 공급받지 못한 점을 꼬집었다. 이에 교보문고는 10월 22일(화)부터 31일(목)까지 광화문 본점 등 소수 지점을 제외한 오프라인 매장에서 한강 도서 판매를 중단했다. 해당 기간엔 출판사로부터 공급받은 판본의 대부분을 지역서점에 먼저 공급하겠다는 계획이었다. 교보문고 측은 “공급자로서 책임을 다하고자 내린 결정이다”라고 설명했다. 이달 말일, 한국서련과 교보문고는 오해와 갈등을 마무리하고 상생을 협의하며 갈등은 일단락 됐다.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약 한 달이 지났다. 하지만, 출판업계가 단기적 상승곡선을 장기적 추세로 만들어 낼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른다. 문학 단행본 시장엔 사회맥락적 리스크가 따르기 때문이다. 일례로 ‘텍스트힙’ 논란을 들 수 있다. ‘텍스트힙’은 텍스트(Text)와 멋지다는 뜻의 (Hip)을 결합한 신조어로, 독서를 멋진 것으로 본다는 긍정적인 뜻을 담고 있었으나 최근엔 20~30대 젊은 독서인들의 과시욕을 비꼬는 단어로 쓰이기도 했다. 가부장의 폭력을 파헤친 『채식주의자』, 5・18항쟁 당시 광주의 상황과 남겨진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소년이 온다』 등 한강의 대표작에 담긴 사회적 함의에 반발하는 집단 또한 걸림돌이다. 노벨문학상은 비탄의 출판산업, 그중에서도 단행본 출판산업에 희망의 신호탄이 됐다. 하지만 출판산업의 앞에 있는 것은 긴 레인, 성공적으로 완주할 수 있을지, 아닐지는 아직 미지수다. 과연 출판산업은 노벨 문학상 특수를 이어 나갈 수 있을까. 출판업계를 이루는 유통업계와 출판사들의 앞으로의 행보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기자 김희서(22)

BizOn Online Newsletter Vol.78 (202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