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itute for Manchurian Studies
한국연구재단 공동연구과제 수행 중(2022~현재)
복합민족국가 ‘만주국’과 《만선일보》라는 조선인 문화場 (연구책임자 서재길 교수)
본 연구는 ‘만주국’에서 발행된 한글신문 《만선일보》를 식민자와 피식민자가 경합하는 ‘식민지 공론장’으로 규정하고, 실증적 자료 정리와 학제적 공동연구를 통해 《만선일보》라는 문화장(場)과 그 속에서 전개된 조선인의 문화활동에 대해 동아시아적 시각에서 재조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킨 제국 일본은 ‘만주국’을 수립하면서 서양 열강의 식민지와는 구별되는 ‘독립국가’를 표방하며 동양적 ‘왕도정치(王道政治)’와 더불어 ‘오족협화(五族協和)’를 그 통치 이념으로 내세웠다. 중일전쟁 발발 이후 식민지 조선에서 ‘내선일체’라는 슬로건 아래 ‘황민화 정책’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만주국의 ‘오족협화’는 조선 지식인들에 의해 전유됨으로써 이데올로기 그 자체가 지니는 담론적 효과가 헤게모니적인 기능을 수행했다. 즉 조선 지식인들은 극단적인 동화정책인 ‘내선일체’와는 상충되는 ‘오족협화’를 민족 차별에 반대하는 이데올로기로 전유했던 것이다.
이는 문학/문화 영역에서 ‘만주국 선계(鮮系) 문학/문화 건설’을 통해 복합민족국가인 만주국의 국민 문화 형성에 기여해야 한다는 논리로 구체화되었다. 조선의 언어와 로컬리티가 살아 있는 독창적인 문화의 창달을 통해 만주국 건설과 오족협화의 실천에 기여하자는 조선문화 담론이 제기된 것이다. 실제로 1940년 초 만주국의 유일한 한글신문 《만선일보》는 ‘만주 조선문학 건설 신제의’라는 제하에 실린 20여편의 논설을 통해 ‘만주국’이라는 국민국가 형성에 부응하는 조선문학의 방향성을 타진했다. 이를 통해서 만주국 구성원의 일원으로서 조선인의 고유한 정체성을 추구하는 한편으로, 만주라는 지정학적 공간 속에서 생산되는 재만 조선인 고유의 문화적 정체성을 ‘북향(北鄕)’ 담론으로 수렴하면서, 조선 본토의 문화와는 구별되는 문화적 정체성으로 축조해 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만선일보》는 식민자와 피식민자가 ‘오족협화’라는 지배 담론을 나름의 방식으로 전유하는 식민지 공론장의 역할을 수행했다.
《만선일보》에 대한 기존 연구는 ‘재만 조선인 문학 연구’라는 맥락에서 매우 제한적으로 진행되어 왔다. 최근 ‘친일문학’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탈식민주의적 시각이 도입됨으로써, 기존의 연구 틀에서 벗어나 만주국이라는 한 ‘국민국가’의 자장 안에서, 그리고 제국 일본 및 식민지 조선과의 연관 관계 속에서 만주국 조선인 문학의 다양한 논리들을 분석하려는 시도가 나타나고 있다. 이처럼 만주국 조선인 문학에 대한 연구가 다양한 관점에서 시도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유일무이한 한글 미디어였던 《만선일보》를 통해 만주국 조선인들의 다양한 문화 활동을 고찰하는 작업은 극히 초보적인 상황에 놓여 있다.
이상과 같은 문제의식에 기반하여 본 연구과제에서는 《만선일보》를 식민자의 프로파간다와 피식민자의 저항이 절합(節合)하고 있는 공론장으로 설정하고 그 내부에서 벌어진 문화 활동의 실체를 《만선일보》라는 국책 회사의 성격과 미디어적 특성, 문학, 영화, 스포츠, 라디오, 공연예술, 시각예술, 젠더 담론 등 다양한 측면에서 고찰하고자 한다. 《만선일보》에 대한 실증적 자료 정리에서 시작하여 동아시아적 시각에서의 학제적 공동연구를 통해 《만선일보》에 대한 종합적 연구를 지향하는 것이 본 연구의 최종적인 목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