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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세계건축도자전 _도자와 건축의 만남展 작가안내 _니노 카루소(이탈리아) _조한기(한국) _윌리엄 데일리(미국) _앙헬 가라자(스페인) _토니 헵번(미국) _사토루 호시노(일본) _준 가네코(미국) _김정범(한국) _올레 리슬레루드(노르웨이) _비외른 뇌르고르(덴마크) _클라우스 오스터발트(독일) _다니엘 퐁토로(프랑스) _안톤 레인더스(네덜란드) _타다야수 사사야마(일본) _신동원(한국) _베티 우드만(미국) 일시2006_0324 ▶ 2006_1003 장소클레이아크 김해 미술관 전관 전시실 경상남도 김해시 진례면 송정리 358번지 Tel. 055_340_7016 http://www.clayarch.org 2006년 3월 24일부터 10월 3일까지 진행되는 ‘세계건축도자전’에는 건축도자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보여온 전세계 10개국 16명의 작가, 작품 47점이 전시될 예정이다. 전시는 ‘건축도자에 대한 기본적인 연구’, ‘건축도자와 공간에 대한 새로운 실험’, ‘건축도자와 도시공간의 만남’ 등 세 파트로 나뉘어 구성되며 건축도자의 재료 기술적인 접근방법 및 공간에 대한 실험 연구, 예술건축의 확장성 등에 대한 다양한 이슈와 예술적 표현들을 직접 확인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함께 클레이아크 김해 미술관의 탄생과 여정을 담은 사진전 - ‘클레이아크 도큐멘터리(Clayarch Documentary)’와 영상전 - ‘메이킹 클레이아크’(MAKING CLAYARCH)’ 등이 함께 전시된다. ●인간이 흙을 사용하여 집을 지은 역사는 동굴 생활 이후 최초로 나타나는 인류의 주거 형태 중 하나였다. 자연의 돌을 이용하던 관습에서 필요에 따른 형태의 제작이 요구되자 인간은 흙을 구어 견고한 벽돌을 만들었고 흙을 굽는 기법은 건축가와 예술가 사이에서 서로 다른 형태로 나뉘어 발전하며 만나기를 거듭 반복하였다. 따라서 구운 흙은 예술가와 건축가 사이에 머무는 영원한 기본 재료로써 자리를 잡고 있다. ● 구운 흙을 이용하여 집을 만드는 문화는 동 서양 모두에서 그 기후와 환경에 맞게 비슷한 경로를 통해 발전했다. 동양에서는 기와와 담장의 벽을 중심으로 아름다운 예술성을 담아 발전하였고, 서양에서는 균일한 벽돌과 지붕의 기와, 건물의 내, 외장을 감는 타일 등의 실용성에 장식성을 담아 발달하였다.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는 유약을 입힌 테라코타 벽돌이 개발되어 궁전, 성전, 요새 등에 사용되었다. 바빌론의 신성한 길을 따라 축성된 성벽과 이스타르의 문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 건축 재료로써 흙만큼 풍부한 재료도 없었으며 일정한 형태를 유지하려는 성질을 갖는다거나 온도, 습도를 유지하려는 성질이 뛰어난 이유로 수 천년 동안 사랑을 받아왔던 흙이지만 산업화와 도시화라는 문명의 흐름에서 신소재로 떠오른 콘크리트와 유리, 스틸 등이 건축 역사의 규모를 넓히면서 도자의 자리는 점점 좁아져 갔고 건축도자의 탐구는 잠시 그 성장을 멈추었다. 그리고 예술성보다는 대규모의 생산성이 요구되면서 현대 사회의 건축 양식의 정체성과 고유성의 유무가 그다지 큰 의미로 작용하지 않게 되었다. 개인성을 생각지 않은 아파트의 네모난 공간과 그를 둘러싼 환경은 수많은 미래 주거 형태의 방향에 대한 의문점과 새집 증후군이라는 한계점을 드러내었다. 다양한 분야에서 친환경적이며 예술적인 재료, ‘지속 가능한 이용’의 재료가 필요하다는 자각이 생겨 나자 흙에 대한 관심이 언제부터인가 곳곳에서 조용히 일기 시작했다. 흙이 가진 본질에 대한 연구는 그 동안 많은 문명과 도예가들에 의해서 꾸준히 이루어져 왔고 세라믹의 범위는 그릇의 형태를 넘어 과거 우리가 생각지 못했던 범위에까지 발전해 왔다. 지금 사람들은 흙이 어떻게 또 다른 놀라운 발전을 통해 우리의 문명을 변화시킬 것인지에 대해 많은 의문점과 더불어 제안을 내 놓고 있는 시점이다. ● 따라서 도자와 건축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건축도자를 탄생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클레이아크 김해 미술관은 현재 시점의 건축과 도자가 어떠한 행보를 하고 있는지를 관철하고 두 분야의 만남을 통해 인간의 주거 환경과 문화, 사회 생활에 우수한 건축도자를 보급하여 예술적 미학을 삶에 적용시킬 수 있는 지에 대한 가능성들을 모색하고자 한다. 이에 클레이아크 김해 미술관의 개관을 기념하는 첫 번째 기획전시로 ‘세계건축도자전’을 개최한다. 이 전시는 건축의 컨셉을 담은 도자의 오늘, 도자와 건축의 만남을 도예가들의 시점을 통해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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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LENTE - 한국 작가들의 첫 참여, 그들의 재능을 보이다. talentec-도록표지 ‘TALENTE’는 만 30세 이하의 공예, 디자인, 기술 분야의 젊은 작가와 신인을 소개하는 행사이며, 독일 뮌헨에서 열리는 국제 박람회(The International Trade Fair for Small - and Medium-Sized Enterprises in Munich)의 기획 전시로서 동시에 같은 장소에서 진행되는 현대장신구 전시 ‘Schmuck’과 함께 신진 작가, 기술 분야 인재들을 선발, 소개하고 1979년부터 매년 열리고 있는 매우 지명도 있는 국제적인 전시입니다. 지난 3월 16일부터 일주일 동안 독일 뮌헨에서 열렸던 ‘TALENTE 2006’에는 27개국 약400여명의 지원자 중 선발된 23개국 91명의 젊은 작가들이 참가하였습니다. 그 중 금속공예분야에 김한주, 김동현, 헤더 베일리스 (이상 대학원 금속공예학과 재학 중) 심진아(대학원 금속공예학과 졸업)와 장신구 분야에 이명선(대학원 금속공예학과 졸업) 등 이상 5명이 한국참가자들이었습니다. 특히 김동현의 작품 2점은 바이어른 응용미술박물관에 소장되는 영광을 가지기도 하였고, 심진아의 작품은 도록 표지를 장식하기도 하였습니다. 사진설명_위에서부터 순서대로 이명선,심진아,김한주,헤더 베일리스,김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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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과 김한솔, 양민아, 전지원, 강훈 4명의 학생들이 한팀을 이루어 응모한 '제27회 제일기획 광고대상'에서 TV스토리 부문과 인터넷 배너 부문 금상을 수상했습니다. 옥외광고, 스토리보드, 배너, 지면 등 총 7개의 작품을 응모, 이중 두 작품이나 금상을 받게 된 것인데요, 겨울방학동안 열심히 준비한 노력의 결과라고 합니다. 팀작업하는 기간 내내 즐겁게 작업했기 때문에 더 좋은 작품이 나올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응모한 작품 중 '해찬들'의 고추장 광고를 위해 남산한옥마을에 촬영을 갔다가 실수로 장독대를 깨는 바람에 변상을 해주고 오는 아픈 기억도 있었지만, 수상과 함께 따라온 물질적 영광이 있었으니 이젠 즐거운 추억으로 남게 됐습니다. 네 분 모두 축하드리구요, 앞으로도 공모전 준비하는 모든 시디과 사람들 화이팅입니다! 수상작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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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2006-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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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 영화사 시네라인-투 대표 석명홍(시디 85년졸) 동문 영화가 끝나면 화면 위로 감독과 배우 등 영화제작에 참여한 여러 스탭들의 이름이 적힌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다. 대부분의 관객들은 엔딩 크레딧을 끝까지 지켜보지 않는데, 이제부터 적어도 우리학교 학생들은 그 끝을 붙잡으며 제작자의 이름 석자를 찾지 않을까? 그 이유는 2001년 800만이 넘는 관객동원에 성공한 영화 ‘친구’와 지난해, 가슴 뭉클한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 ‘말아톤’을 제작한 석명홍 동문을 영화관에서 마주하기 위해서이다. 이처럼 흥행대작을 제작하고, 한국영화계에 한 획을 그은 석명홍 동문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영화사 시네라인-투를 찾았다. 놀 땐 놀고, 공부할 땐 공부하고 대학에 갓 입학한 신입생이던 석명홍 동문은 놀기를 그렇게 좋아했다고 한다. 교내 행사와 MT의 사회자를 즐겨 맡았다던 그는 “학교에 다닐 때 김한국(코미디언)과 같이 MC로 활약한 적이 많았다”며 “선천적으로 술은 잘 못하는데 음악 하는 친구가 일하던 나이트클럽에는 춤을 추러 자주 갔다”고 말했다. 군대 가기 전 1,2학년 동안 이렇게 노는 생활을 즐겼다는 그는 “요즘은 잘 노는 사람이 성공도 잘 하는 것 같다”며 자신의 신조를 밝혔다. 고학년이 되서는 마음을 잡고 공부할 수 있었는데, 과의 분위기와 교수님들의 열정적인 자세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는 “과제를 해가지 않으면 수업에 들어가기 창피할 정도로 학생들이 공부를 열심히 하던 시절이었다”며 “군 제대 후 열정적으로 공부하는 후배들을 보고 자극받아 열심히 공부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디자인을 목표가 아닌 수단으로 학창시절 기억에 남는 교수님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유영우 교수님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말을 이었다. 교수님들과 함께 해금강으로 떠난 수학여행 날, 같은 배에 타대학의 예쁜 여학생들이 타고 있었다고. “갑자기 교수님께서 모자를 눌러 쓰시더니 그 여학생들에게 다가가서는 복학생인 척 흉내를 내며 ‘작업(?)’을 시도했다”며 즐거웠던 과거를 회상했다. 또한, 그는 “윤호섭 교수님이 내준 어마어마한 과제를 제출한 학생은 자기밖에 없었다”며 힘들었지만 보람을 느끼던 학과생활 기억을 더듬기도 했다. 그 과제는 일주일 안에 광고 아이디어 100개를 준비해가야 하는 과제였다고 한다. 한편, 그는 첫 직장으로 단성사에서의 마케팅 일을 했는데 “김인철 교수님의 충고로 찾게 된 직업”이라며 “교수님은 늘 디자인을 목표가 아닌 수단으로 삼고, 실험적인 무대로 진출하라고 말씀하셨다”고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단성사에서 시네라인-투까지 단성사 입사 초 그는 선전부장을 맡아 극장의 모든 마케팅을 담당했다. 그때 당시 받던 월급은 졸업생들이 받는 초봉의 2배정도로 극장에서 대우를 잘 해줬다고. 4학년 재학 중 입사한 그는 “그 시기의 영화들은 신문 등을 통한 광고 의존도가 높았기 때문에 대우가 좋았던 것 같다”며 “그렇기 때문에 학업과 일을 동시에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단성사에 입사하고 나서 두문분출하고 일만 했다. 먹고 사는 데에 어려움을 겪어, 돈을 벌기 위해 일에 몰두했던 그는 “나는 일을 찾아서 하는 스타일”이라며 “너무 일을 열심히 해서 20대 중반에서 30대 초까지는 기억이 거의 없을 정도”라고 한다. 마케팅 작업도 남들과 다르게 하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그는 “기성세대의 것을 바꿔보자는 생각으로 튀는 문구와 기하학적인 글씨체를 많이 사용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정신없이 일을 하던 단성사도 그의 열정을 식히기에는 역부족한 곳이었나 보다. 단성사에 있는 동안 2700편의 영화 광고를 맡았던 그는 “나는 100편의 영화 광고를 제작할 수 있는데, 13편 정도의 일밖에 없어 단성사에서 나오게 됐다”며 일에 대한 열정을 보여줬다. 그렇게 단성사를 나온 그는 다양한 마케팅을 해보고 싶은 생각에 그 당시 자신을 포함해 충무로에서 잘 나가던 신인 세명이 뭉쳐 영화사를 만들 생각을 했다. 그는 “피카디리의 신천과 서울극장의 이준익을 끌어들여 영화사를 만들려고 했다”며 “하지만 신천은 독립해 ‘신씨네’를 설립해 ‘왕의 남자’ 감독 이준익과 손을 잡고 시네시티를 설립했다”고 말했다. 그 후 그는 국내 대기업들과 미국 메이저 회사들과 영상사업을 거래하다, 시네라인-투를 만들면서 영화제작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현재까지 영화 ‘친구’와 ‘말아톤’을 제작했으며, ‘청연’을 제작하던 중 제작비가 예상보다 많이 들어 제작권을 타사에 넘겼다. 거친 도전정신과 끝없는 목표 그는 충무로에서 영화 마케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1세대이다.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었던 그는 “현장에서 닥치는 대로 일을 하다보니 관객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이런 과정에서 그는 “작품 내적으로 허점이 많은 영화를 마케팅으로 살리는 일”을 목표로 삼고 일에 몰두했다. 그는 낯선 장르에 처음 보는 주인공이 나오는 영화를 성공적으로 마케팅했는데, 그 영화가 바로 반전영화의 최고라 불리는 ‘유주얼 서스펙트’이다. 그는 “이렇게 마케팅 탄력성이 강한 영화가 기억에 남는다”고. 도전정신이 강한 그는 앞으로의 목표를 여러개 세웠다. 제작자로서 그는 “앞으로 1년에 약 5편의 영화를 제작할 것”이라며 “영화는 기본적으로 휴머니즘이 느껴지는 소재를 바탕으로 명품영화를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우리작품을 미국에서 직접 만들 수 있도록 미국지사를 설립할 것이며 춘천에는 영화타워를 세울 것”이라고 한다. 현재 도전하고 있는 목표는 뮤지컬 제작이다. 그는 “1년에 2편정도의 창작뮤지컬을 제작할 계획”이라며 “도전거리가 있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라며 끝없는 도전정신을 보여줬다. 대학시절 같은과 친구들과 함께 나만큼 남을 인정해주길 영화 ‘친구’를 제작한 이유를 묻자 그는 “요즘 사람들은 인터넷과 같은 매스미디어를 통해 다른 사람과 생각이나 느낌을 공유한다고 착각한다”며 “그것은 사람이 아닌 기계와 소통하는 것인데 이에 대한 저항심으로 영화를 제작하게 됐다”고 대답했다. 기계에 갇혀 사는 사람들을 안타까워하며 대인관계를 중요성을 말한 그는 더불어 “학생들이 나만큼 남을 인정하고 존중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리고 “영화는 혼자가 아닌 스탭들 모두의 노력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더라”며 “개개인의 능력과 노력이 모여야만 시너지효과가 날 수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학생들에게 “사람이란 때라는 것이 있는데 지금 시기에 좋은 책을 놓치지 말고 영어공부를 등한시 하지 말라”며 “젊음이란 힘을 이용해 자신을 학대하고 편안함을 갖지 말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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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2006-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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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응용미술학과를 졸업하고, 군복무 후 합통통신사 광고기획실(현재 오리콤)에서 아트이렉터, 대우기획조정실 제작부에서 크리에이티브디렉터로 근무하다가 1982년부터 국민대 시각디자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88서울올림픽의 디자인전문위원으로 활동했으며, 제 17회 세계잼버리대회 엠블렘 및 공식포스터, 대전엑스포 입장권 및 픽토그램, 시티은행, 펩시의 한글로고를 디자인하였다. 1995년부터 2년간 조형대학 학장과 환경디자인연구소 소장을 역임하고 한국광고학회 상임이사와 대한민국 광고대상 심사위원으로, 국내외 유명기업의 광고자문을 활동했었다. 1991년 세계잼버리대회 이후 교육및 디자인을 환경과 효과적으로 전개할 수 있는 시각디자인물을 다수 제공하고 있다. _교수님이 하시는 그린디자인과 소위 환경운동이라는 것이 어떤차이가 있는지요? 운동하는 방법이 여러 가지 아닙니까.디자인으로도 할 수 있고 노래로 할 수도 있고 강연을 할 수도 있고...내경우는 그린디자인으로 환경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는 거죠. 무슨 운동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생활인으로서 당연한 일상의 미션이죠. 특정 범주나 장르에 포함되고 싶지는 않아요. 환경문제라는게 어디 속할 문제도 아니고. _교수님이 관심을 갖고 계시는 “환경생태윤리”라는 것에 대해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자연의 구성원 아닙니까. 인간이 구성원으로서의 위치를 인식하고 동등한 위치에서 타구성원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것, 자신이 자연의 구성원이라는 것을 자각하는 것이 바로 윤리죠. 소박하게 자신이 자연의 하나라는 것을 알면 자연스럽게 윤리의 문제는 해결된다고 봐요. 하지만 현재 인류의 문명은 우월감으로 젖어있죠.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면서 파괴하고 남용하고...후손들에게 깨끗한 환경을 물려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환경에 대한 올바른 의식을 물려주는 것도 중요한 일인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환경생태윤리가 중요한 의미를 갖는거죠. _그린디자인을 시작하시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91년에 세계잼버리 대회의 공식 포스터 작업을 하게 됐는데, 그때 만난 일본학생이 계기가 됐어요. 환경문제에 관심이 있던 그 친구 질문에 대답해주고 왕래를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이쪽으로 관심을 갖게 되었죠. _이전에는 학계뿐만 아니라 대기업에서 일을 하시기도 했는데, 그린디자인 시작 후 주변의 반응이 어땠는지요? 에피소드 같은 것이 있으시면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너무 많은데...사실 그런게 무슨 에피소드거리는 아니고...나는 지극히 정상적인 내 삶을 되찾기 위해 노력하는 중인데, 그런 것이 사람들의 괌심을 RMf고 특이해 보이고 취재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인거죠. 정상적인 것을 보고 특이하게 생각하는 것, 그게 잘못된 겁니다. _"되찾는다"고 하셨는데 우리가 잃어버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요? 본래 디자인이라는 것 자체가 그린디자인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어요.하지만 어느 순간 우리는 그것을 놓쳐 버렸고, 당연히 있어야 할 것이 없고 되어야 할 것이 안되기 때문에 그린디자인이라는 말이 따로 생기게 된거죠. 마찬가지 맥락에서 내가 디자이너이기 이전에 인간이기 때문에 해야 할 것과 지켜야 할 것들이 있다는 것이 키포인트예요. 이전에는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이제 되찾은 중이라는 거죠. _우리나라에서 그린디자인을 하기 힘든 점과 시급히 해결되어야 하는 문제가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환경에 대한 인식의 문제가 가장 시급하죠. 환경문제는 딱히 한국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전 지구적인 문제예요 우리가 자연의 일원으로서 현재 어디에 와있는지 빨리 되돌아 봐야 해요. 세계적인 평균으로 봐서 우리가 얼마나 과용하고 사는지, 얼마나 음식물을 많이 버리고 있는지, 얼마나 파괴하고 사는지 빨리 돌아봐야 하는데 그러기 쉽지 않죠. 우리는 이미 마비되었고 그 범주안에 들어와 있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우리 자신을 바라보기가 어려운거예요. 그렇다고 남의 얘기를 경청하는 것도 아니고...지금 우리가 얼마나 잘 살고 있는지 모르죠? 우린 항상 더 잘사는 것만 바라보니까. 하지만 잘 산다는 기준에 대해서 우리는 정말 곰곰이 생각해봐야 해요. 진정 잘 사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잘 살고 있는 건지. 웰빙(well-being)이라는 말이 회자된다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거죠. 아까 그린디자인과 마찬가지로 웰빙이라는 말은 원래 불필요한 말이예요. 그냥 “빙(being)"인거죠. _자전거 전용도로는 공공디자인이라는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데 공공디자인이라는 것이 여러사람이 공유하는 디자인이기에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린디자인과 관련하여 공공디자인에도 특별히 관심을 갖고 계신가요? 그렇죠. 디자인이라는 것이 당연히 사회적인 차원에서 의미를 가져야 하니까. 우리가 공공디자인이라고 하면 무슨 화장실이나 주차장 표시 잘하는 정도로 기능적인 차원에서 생각하는데, 좀 더 상위 차원으로 올라가서 자연에 거스르지 않고 생태계 전체에 조화될 수 있는 디자인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죠. 그런데 요새 공공디자인이라는 것이 또 인간 위주의 디자인이 되어 버리니 그게 다시 문제가 되는 거고...그래서 나는 그런 용어들에 대해서는 거의 신경을 안써요. _오랫동안 그린디자인을 생활 속에서 실천해 오셨는데, 사람들이 생활 속에서 쉽게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면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아까 말했듯이 스스로가 지금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대한 자각이 있으면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실천이 되는 건데, 그런 자각 없이 지금 당장 몇 분 내에 실천할 수 있는 것을 말해 달라는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거죠. 그런건 일시적일 뿐이에요.사람이 피를 손목에서 뽑던 팔뚝에서 뽑던 O형이면 똑같이 O형이어야 하는데, 누구는 손목에선 O형이고 팔뚝에선 AB형 이라는 거예요. 누구에게나 하루 세 번의 기회가 있고 자기성찰이 있다면 분명히 안 남길수 있는데, 대부분이 그렇지 못하다고요. 특히나 푸짐하게 주는 것을 정이라고 생각하는 우리나라 식문화에서는 더욱 그렇죠. 나는 하루하루 식사 때마다 정말 치열하게 전쟁을 치뤄요. 어제도 식당에서 김치찌개를 시키면서 주인하고 주방장한테 1/3만 달라고 간곡하게 부탁을 했는데, 이분들이 미소를 지으면서 평소보다 오히려 더 많이 주더라고...그분들은 나한테 호감을 갖고 나를 위해서 그렇게 준거지만 결과적으로는 나를 위한 것이 아닌 거죠. 착한 분들이시지만 환경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시는 거고, 그런 속에서 또 아이들이 커가는거고... _지금까지 해 오신 작품들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으시는 작품은 무엇인지? 글쎄요. 나는 작품은 특별히 없어요. 그냥 요새 퍼포먼스같은 것들 하면서 사람 만나서 일어난 일들 그런 것들이 좋을 뿐이지...그러고 보면 나는 디자인 잡지의 취재대상은 아니에요. 사실은 이제 그냥 디자인에서는 나는 멀어지고 있어요. 지금 디자인에 대해 생각해 보시가고요. “환경파괴에 디자인이 있다.”라는 말이 있거든요. 지금 디자인 잡지들만 봐도 다들 화려함을 추구하잖아요. 시대정신으로 보면 지금이 그럴 때가 아닌거죠. 디자인이 공해에 앞장서고 있어요. 내 전시 바로 전에 파브리카 전시가 있었는데, 그 친구들도 내 작업이나 생각들을 굉장히 좋아하고 공감했어요. 그런데 그 친구들은 전시 끝난 뒤 자기들 작품 인쇄했던 대형 현수막을 버리고 갔고, 나는 그것으로 가방을 만들었거든요. 그 가방, 그 사람들한테 보내줄 거예요. 가장 흉악한(?)내용으로 말이죠. 그거 받으면 아마도 박장대소를 할겁니다. _정년이 얼마 안남으셨는데 앞으로의 계획은 어떠신지요? 계획없어요.(기자의 의외라는 표정에) 아니, 정말 계획 같은 건 없어요. 이번 전시의 제목이 “Design and Order in everyday life"인데 그렇게 매일매일 해가 뜨고 지듯이 사는거죠.특별한 계획은 없어요. _디자이너는 이래야 한다"라고 후배디자이너들에게 한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자기가 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라는 거죠. 자기가 하는 일이 자연에게 또 후손들에게 그리고 자기 스스로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항상 되돌아보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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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공모전 CRESPI TROPHY 2005 (공식명칭: CHALLENGE OF PLASTIC-CRESPI TROPHY 2005) 에서 우리학교 의상디자인학과 학생들이 입선을 하였습니다. 주최측에서 제공되어지는 다양한 소재로 진행된 이번 공모전에는 의류뿐만 아니라 구두, 가방 심지어 조명까지 다양한 작품들이 선정되었습니다. 제공된 여러가지 소재 샘플 공모전은 2년에 한번씩 열리며, 패션 디자이너, 건축가, 유명잡지의 저널리스트등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인사들의 까다로운 심사과정을 통해서 작품이 선정되었습니다. 수상자들에게는 여러가지 특전 사항도 있습니다. 1위부터 5위까지는 수상한 학생 개인뿐만 아니라 그 학생이 소속되어 있는 단체에게도 상금이 수여 됩니다. 그리고, 1위에서 5위 수상작품들과 입선 작품들은 유럽 및 미국 지역에 순회전시 되며, 수상자들은 패션쇼와 시상식에 초대받고 특히, 1위에서 5위를 차지한 학생들은 졸업후 현지(이태리 및 그외 유럽지역)에서 취업할 수 있는 기회도 주어진다고 합니다. 김세정, 정세영 학생 작품 우리학교는 총 43명의 학생들이 출품을 하였으며, 13명의 학생들이 입선에 선정되었습니다. 입선작에 선정된 학생은 이혜영, 조현숙, 방지은, 이명선, 김민희, 강미현, 유미연, 김나래, 김세정, 정세영, 이신애, 남선현, 장윤실입니다. 이번 공모전 작업을 지도하셨던 의상디자인학과 박선경 교수님께서는 "동양권의 학교에서 이렇게 많은 학생들이 상을 받게 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이번에 5위권내의 수상을 기대했던 작품이 있었는데 아쉽다. 다음기회에는 5위안에 들 수 있는 작품을 기대한다" 며 이번 공모전의 결과에 대한 기쁨과 아쉬움을 말씀해주셨습니다. 유럽에서 영향력있는 이번 공모전에서 우리학교 학생들의 수상소식이 의상디자인학과의 학생들뿐만 아니라 조형인 모두에게 자부심을 심어 줄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조현숙, 이명선 학생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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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2006-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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