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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경영학부를 이해하고 '공감'하며 함께 나아가겠습니다 2017년도 기업경영학부 학생회 '공감'을 만나보자. 기업경영학부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줄 학생회가 나타났다. 지난해 11월 23일과 24에 걸쳐 있었던 선거에서 총 투표자 101명중 96명의 찬성 표를 얻으며 기업경영학부의 새로운 학생회로 당선된 '공감'. 압도적인 지지율로 당선된 만큼 '공감'에 대한 기대가 크다. BizOn이 '공감'의 학생회장 윤병선 학우를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기업경영학부 학생회 '공감' 입후보 포스터(출처: 학생회 '공감') Q. 학생회 이름인 공감의 뜻과 작명 계기가 무엇인가? 공감 말 그대로 학우들의 의견과 주장을 이해해주자는 의미를 가지고 작명하게 되었다. 기업경영학부 학생들은 주경야독을 실행하는 만큼 학업에 집중하기 힘들뿐더러 몸이 굉장히 지치고 피곤한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다. 그때마다 학우들의 마음에 공감해주어 힘이 되어주는 그런 학생회가 되고자 공감이라는 이름을 작명하게 되었다. Q. 어떤 계기로 학생회장으로 출마하게 되었으며, 출마 당시 어떤 각오와 마음가짐이었는가? 또, 기업경영학부를 어떻게 이끌어 나가고 싶은가? 1학년 때부터 작년까지 학생회 부원으로 활동해왔다. 그만큼 기업경영학부 학우분들을 많이 만날 기회를 가졌고, 학우분들이 기업경영학부 학생회에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 수 있었다. 이에 따라 학생회장으로 출마하라는 학우들의 응원 속에서 회장직에 출마하게 되었다. 학우들의 응원 속에서 출마하여 당선된 회장 자리라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17년도 한 해 동안 학교가 아닌 학생들을 위한 학생회를 만들어가고 싶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Q. 공감을 운영하면서 가장 중요시하게 여기는 포인트가 있다면 어떤 것인가? 기업경영학부의 전 학년 소통을 위한 네트워크 지원을 가장 중요시하게 여기고 있다. 기업경영학부는 특성상 선후배 관계에서 소통이 이루어지기 힘들다. 3년간 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이 부분이 항상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앞으로는 기업경영학부만의 특별한 사제동행세미나, 멘토, 멘티 제도 등을 통해 소통의 창을 활성화 시키고 싶다. 17년 한 해 동안은 최대한 많은 아이디어와 행동을 통해 선배와 후배간의 소통의 창을 만들어 앞으로 기업경영학부에 들어올 후배들을 위해 재밌는 학교생활을 만들어주는 것이 목표이다. Q. 공감 학생회원들에게 한 마디 부탁한다. 혼자만으로는 전 회장님들만큼 학생회를 잘 이끌어갈 자신이 없다. 하지만 학생회원들을 믿고 17년도 한 해 동안 학생들에게 기억에 남는 학생회를 이끌어가고 싶다. 그만큼 우리 부원들을 믿고 신뢰하고 있다. 1년 동안 힘들고 지친 학생회 생활이 아닌, 보람차고 재밌는 학생회 생활을 했으면 좋겠다. 학생회 부원들 모두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학생회라는 집단은 학생들을 위한 집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언제든 학교생활에 힘들거나 불편한 점이 있다면, 학생회에 도움을 청하길 바랍니다. 우리 학생회는 언제나 학생들의 편에 서서 의견을 공감해 줄 것을 약속합니다. 자신의 목표를 포기하지 않고, 주경야독을 하는 기업경영학부 학생들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되어주는 학생회가 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학생 여러분들, 감사합니다. 기업경영학부 윤병선 학생회장이 학부생들에게 일반 학부와는 다른, 그들만이 느낄 수 있는 그런 경험들을 잘 이해하며 함께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포부를 전한 '공감'이였다. 학부와 학생회, 이 둘이 서로 의지하며 힘을 붇돋아주며 앞으로 나아간다면 그 무엇도 두려울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이들이 내디딜 힘찬 발걸음을 기대하며 응원의 말을 건네고 싶다. 기자 김재훈 (15) 디자인 임지현 (16) BizOn Online Newletter Vol.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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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2024-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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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회, 그들의 마지막 이야기 #02 경영정보학부 학생회 'Re:born', 빅데이터 경영통계 학생회 '고백', 기업경영학부 학생회 'New Start' 각 학부안에서, 밖에서도 많은 일들이 일어났던 2016년 한 해 동안 열심히 학생들을 위해 활동해준 Re:born, 고백, New Start의 회장단을 만나 학생회를 마무리하는 소감을 들어보았다. # 경영정보학부 학생회 Re:born ▲ 경영정보학부 'Re:born' 학생회 (출처: 'Re:born' 학생회) Q. 늦었지만 임기를 마무리하는 소감 간단하게 부탁한다. 한정근 학생회장(이하 한정근): 학교를 다니는 4년중에 가장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다. 힘든 일도 많았고 즐거운 일들도 많았던 것 같다. 모든 일들이 뜻 깊은 시간이었고 항상 큰 선물 같은 시간이었다. Q. 임기동안 가장 인상 깊었던 점들은 어떤 것이었나? 한정근: 사실 모든 행사에 애착을 가지면서 진행을 하였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행사는 교내 오티인데, 일단 행사을 진행하는데 있어서 학교 측과의 합의 부분에서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그래도 모든 문제를 잘 해결하고 신입생들과의 첫 만남을 기분 좋게 이루어냈다고 생각이 많이 들었다. Q. 프라임 산업 관련해서 학생 모두가 많이 힘들었던 해였다. 특히, 구조조정의 대상 학부 학생회는 더더욱 힘들었을 것이다. 경영정보학부를 위해 리본은 많은 노력을 했지만 결국 학교의 독단적 조치로 인해 어쩔 수 없는 결과가 나오게 되었다. 이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나? 한정근: 구조조정을 막으려고 많이 애를 썼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막지 못하였고 이 또한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구조조정을 막지 못하였다고 실망하지 않고 다음 대비를 해야 한다고 생각 하였다. 현재 교수님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앞으로의 학부 진행방향에 대해서 많은 대안을 마련하고 있고 이번일을 학부의 위기가 아닌, 또 다시 경영정보학부가 비상할 수 있는 계기로 그리고 내실을 다지고 변화하는 학부가 될 수 있는 시기로 만들 것이다. 앞으로 발전하는 계속해서 학부가 되길 빈다. Q. 2017학년 학생회 선거에서 아쉽게도 당선이 되지 않아 비대위가 운영되고 있다. 짧은 시간이지만 학부를 이끌어갈 비대위와 앞으로 당선 될 학생회에게 한 마디 부탁한다. 한정근: 현재 비대위를 부학생회장을 필두로 진행을 하고 있다. 큰 틀에서는 벗어나지 않지만 그래도 이번 학부 변화에 맞춰 일정을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다음 학생회에 인수인계를 잘 해주고 가는 상황이 되어야 하는데 이번에 비대위에 대한 상황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 그래도 잘 진행되리라고 믿고 있고 계속해서 행사때 참여를 하여 도와줄 생각이다. 이번 년도에 당선될 학생회도 아마 많은 고난이 있겠지만 학생들과 학부 발전에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는 학생회가 되었으면 한다. Q. 마지막으로 학부생들에게 한 마디 부탁한다. 한정근: 계속해서 학생회를 도와주신 선후배, 교수님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다. 생각보다 긴 시간이 흐른 것 같다. 임기 마지막에 약간 논란이 되는 일이 있었는데 학부생들에게 죄송한 마음이 있다. 다른 말보다 이제는 더 좋은 선배로 학부와 후배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고 싶다. 부족한 나를 믿고 따라준 모든 분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 빅데이터 경영통계 학생회 고백 ▲ '고백' 학생회 단체사진 (출처: 빅데이터경영통계 학생회 '고백') Q. 2년 연속으로 빅데이터경영통계 학부 학생회장을 연임했는데 재출마 당시 어떤 각오와 마음가짐이었는가? 임기를 마무리하는 심정이 궁금하다. 김보경 학생회장(이하 김보경): 4학년이 되는 시점이었고 연임을 한다는 것 자체가 부담감이 컸다. 하지만 처음 학생회장을 할 때 놓친 여러 부분들을 직접 보완하여 더 나은 학생회, 전공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될 거라는 생각에 출마를 결정하게 되었다. 연임인 만큼 이전보다 잘해야 한다는 부담도 있었지만 믿고 따라주는 전공 학생들이 있었기에 자신감을 갖고 임기를 시작했다. 아무래도 2년 학생회장을 맡고 임기를 마무리했기 때문에 더욱 허전하고 허탈하지만 우리 부학생회장을 비롯한 ‘고백’ 학생회 학우들과 함께여서 후회없이 마무리 할 수 있었다. 또한 우리 학생회 ‘고백’을 포함해 1년동안 잘 따라와주고 참여해준 우리 전공 학우분들께 너무나도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임기를 마무리한다. Q. 학생회를 이끌어 나가면서 어려웠던 점이 있었나? 김보경: 거짓말처럼 생각될 수 있지만 ‘고백’ 학생회장을 맡아 16년 한 해 ‘고백’과 함께하면서 힘들었던 점은 없었다. 학생회장, 부학생회장 그리고 학생회 개개인들의 조화가 어느 학생회보다도 잘 이루어졌다고 자부하고 있다. Q. 학과생들과 학생회 간의 거리를 좁히는 것을 강조 했었는데, 가장 기억나는 활동이 있다면 무엇이 있나? 김보경: 신입생들이 대부분의 행사의 주축이 된다. 학생회에도 신입생들이 많이 있으면 신입생들의 전공 분위기가 많이 좌우될 것 같아 기존보다 많은 신입생들을 학생회로 뽑았다. 16학번 학생회는 학생회와 신입생들간의 연결고리 역할을 잘 수행해 주었고 지금의 단결력 있는 전공 분위기를 만드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또한 각 학번별로 골고루 학생회를 두어 일반 재학생들도 소외되지 않도록 할 수 있었다. Q. 가장 잘 운영되었다고 생각하는 것과 스스로 1년을 평가해본다면 어떤가? 김보경: 여러 행사나 학생회 어느 것 하나 빠짐 없이 잘 운영되었다고 생각한다. 착하고 활발하고 참여율도 좋은 16학번 신입생들을 포함한 우리 전공 학생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고 학생회의 구성 또한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4학년인 동시에 학생회장을 맡는 일은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 벅찰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 모자란 부분을 부학생회장과 학생회가 너무나도 잘 채워주었다. 1년을 되돌아봤을 때 우리 전공 학생들을 만난 것이 행운이었고 학생회 '고백' 을 구성하게 된 일 또한 행운이었다. 이 두 가지가 있었기에 행사 진행이나 전공 분위기에 있어 어느 학부에 뒤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Q. 차기 학생회가 어떤 방향으로 학부를 이끌어 나가 주었으면 좋겠는지, 또 당부나 조언의 말을 남긴다면? 김보경: 우리 전공은 어느 학부보다 하나로 뭉칠 수 있는 단결력이 뛰어난 전공이라고 생각한다. 일단은 이를 유지시킬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또한 올해 우리 전공에도 첫 졸업생이 생기게 된다. 전공 재학생들의 내실을 다지는 것뿐만 아니라 졸업생들과 재학생들의 연결도 필요하게 되었다. 학생회의 역할이 늘어나 더 많은 일들을 해야겠지만 앞으로 잘 수행해 나가기를 바란다. 졸업 후에도 멀리서 모두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 기업경영학부 학생회 NEW START ▲ 'NEW START' 학생회 단체사진 (출처: 기업경영학부 학생회 'NEW START') Q. 학생회장으로 출마할 당시 어떤 각오와 마음가짐이었는가? 또, 학과를 어떻게 이끌어 가고 싶었는가? 김영태 학생회장(이하 김영태): 부끄러운 일이지만 학생회장 출마를 비대위 체제에서 급히 결정하다 보니 학생회를 정상적으로 운영하여 무사히 마쳐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신입생 OT 행사를 시작으로 비대위에 도움 아래 실질적인 학생회 일을 시작하면서, 무엇보다 기업경영학부 재학생 모두가 즐겁고 행복하게 학교생활을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졌고, 그 일에 학생회 또한 즐겁게 1년을 보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Q. 1년 동안 학생회를 이끌어 나가면서 어려웠던 점이 있었는가? 김영태: 학생회를 이끌면서 어려웠던 점은 없었다. 이런 말이 물리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사실이다. 오히려 학생회로 봉사하는 모두가 학업과 직장을 병행하면서도 정말 열심히 수고해주고, 서로에게 격려와 위로로 힘이 되어주어서 오히려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Q. 1년 동안 학생회에서 가장 잘 운영되었다고 생각하는 것과 스스로 1년을 평가해본다면? 김영태: 1년간 여러 행사가 있었지만, 뒤돌아보면 부족했다는 생각뿐이어서 잘 운영되었다고 생각되는 것은 사실 없다. 다만 잊을 수 없는 것은 대동제 주점행사이다. 학생회원들 대부분이 월차, 반차 휴가를 내고 참석하여 새벽 늦게까지 행사를 치르면서 더욱 하나로 똘똘 뭉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 1년을 평가하며 아쉬움, 보람, 감사라는 세 단어로 표현하고 싶다. 시간이라는 것이 지나버리면 되돌릴 수 없기에 아쉬움과 미련이 남는 것이 당연한 이치이지만, 지난 1년은 너무 소중한 시간이었기에 좀 더 잘했으면 하는 생각에 더욱 아쉬움이 남는다. 아울러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학생회에서의 소중한 시간은 큰 보람으로 남는다. 개인적으로 학생회장에 출마하기 위해 내가 계획했던 소중한 것을 포기해야 했지만, 결과적으로 학생회장에 출마한 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학생회에서 1년을 지내며 특히 기업경영학부 학생회는 많은 분의 도움이 없이는 운영될 수 없었다는 것을 생각할 때 그분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기업경영학부재학생, 동문, 경영대학 교수님들과 교직원들, 그리고 1년간 학생회로 봉사한 학생회원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한다. 모두들 평생에 다시 누릴 수 없는 대학생활을 맘껏 누리시고, 즐겁고 행복한 추억 남기시길 바란다. Q. 차기 학생회가 어떤 방향으로 기업경영학부를 이끌어나가 주었으면 좋겠는지 당부나 조언의 말을 부탁드린다. 김영태: 지금의 분위기로 볼 때 학생회 공감은 NEW START보다 더욱 안정되게 학생회를 잘 이끌어 나갈 것이라고 믿고, 또한 학생회 운영 방향은 그분들의 몫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당부나 조언의 말은 없다. 그리고 언제 어디서나 뒤에서 응원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주었으며 좋겠다. 논란을 딛고 일어난 경영정보학부 'Re:born'과 3월 투표로 임기를 늦게 시작한 '고백', 'NEW START'. 아마 이들의 1년동안의 이야기를 작은 문단안에 표현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2016년 한 해 누구보다 우리 경영대학의 학우들을 위해 뛰어준 그들에게 마지막 따뜻한 인사를 건네며 박수를 보내고 싶다. 기자 박윤희 (16) 기자 김재훈 (15) 기자 이희주 (13) BizOn Online Newletter Vol.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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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회, 그들의 마지막 이야기 #01 경영대학 학생회 '드림', 파이낸스 회계학부 '포러스', KIBS 학생회 'Bridge' 2016년 각 학부를 위해 정말 발로 뛰며 활동했을 학생회들, 더 열심히 했던 만큼 그 자리를 떠나기 아쉬운 것이 사실일 것이다. 누구보다 아름답게 빛났던 학생회들의 마지막 이야기를 들어보자. # 경영대학 학생회 드림 ▲ '드림' 학생회 단체사진 (출처: 경영대학 학생회 '드림') Q. 2016년도 한 해 동안의 임기를 마무리하는 소감은? 최재혁 학생회장(이하 최재혁): 2016년도 경영대학 학생회로 당선이 되자마자 많은 일들이 있었다. 총장 연임 사태, 학과 통폐합, 구조조정 그리고 최근 시국까지, 굉장히 다사다난했던 한 해였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대표자 자리를 지키며 책임을 가지고 행동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뜻 깊은 일인지 배우게 되었던 한 해였다. Q. 드림으로 활동하면서 힘들었던 점이나 뿌듯했던 점이 있다면? 가장 뿌듯한 행사는 무엇이었는가? 최재혁: 임기가 막 시작하고 나서 주최했던 초반 행사들이 조금 더 힘들었던 것 같다. 아무래도 드림 학생회의 틀이 확고하게 갖춰지지 않아 일어났던 내부적 혼선들로 인해 힘든 점을 느꼈고. 경영대학을 대표하는 학생회로서 많은 학생들의 시선을 받다 보니 책임감을 가지고 행동해야 한다는 점에 신경을 많이 썼던 것 같다. 임기 이후, 여태껏 드림이 주최했던 행사들을 정리하며 우리의 발자취들을 되돌아 보면서 ‘아…우리가 열심히 활동했구나’ 라고 느끼면서 뿌듯했다. 페이스북 게시글, 개개인 학우 분들의 감사 인사에 힘을 얻고 지난 1년동안 내가 한 일들이 정말 보람찼던 일이라고 느꼈다. 개인적으로 가장 뿌듯하고 기억에 남는 5월에 있었던 근로자의 날 행사이다. 학생들이 국민대학교에 주인 의식을 가지고 단순히 자기 자신뿐 아니라 학교의 구성원 모두를 생각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챙기고 신경 쓰는 모습을 보면서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의 기쁨을 알게 된 행사가 아니었나 싶다. Q. 어떤 계기로 학생회를 꾸리게 되었고,그 목표를 이루었는가? 최재혁: 학생회를 꾸리는 데에는, 두 번의 학생회 경험이 많은 영향을 끼쳤다. 기존 회장 분들 이나 학생회 일원들을 보면서 스스로가 아닌 남을 위해 봉사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고, 나도 한번쯤은 그러한 도전을 해보고 싶었다. 또한 학내에 변화를 주고 싶고 경영대학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고 싶었지만, 일반 학생으로 할 수 있는 것은 건의 뿐이었다. 그런 부분을 보고 당선이 되어 내 스스로, 그리고 내 네 발로 뛰어 국민대학교 경영대학을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학우분들에게 날개를 달아 드림이라는 슬로건 아래에서 조금 더 친구 같은 학생회, 친근한 학생회가 되려고 노력하였고, 낮은 자세로 임하며 비판도 달게 받는 학생회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학우 분들에게 학생회실에 들어가기가 조금 불편하다는 의견을 받기도 했고, 신입생 학우들이 학생회실은 마치 교무실에 들어가는 거 같다는 말을 하는 것을 보면서 권위적인 학생회가 되기는 싫었다. 학우들에게 많은 것을 주는 학생회를 만들고 싶었고 봉사하는 학생회, 섬기는 학생회가 되려고 노력했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 한 목표였던 만큼 잘 이루어 졌다고 생각한다! Q. 차기 학생회 Wanna B에게 한마디, 경영대학 학우분들께 한마디, 그리고 같이 해준 dream에게 한마디. 최재혁: Wanna B는 훌륭한 회장님, 부회장님, 그리고 학생회분들이 있기에 당연히 잘 해 주실 것이라고 믿는다. 경영대학은 그 어떤 단과대학보다 큰 이름과 규모를 자랑한다. 그만큼 경영대학에 대한 깊은 사랑과 자부심을 가지고, 학생들을 위해 움직인다면 더더욱 발전하는 학생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1년간 행보를 되돌아 보면, 아침 8시에 텅텅 비어있는 학교를 보며 등교를 하고, 정신 없이 하루 일과를 보내고 마침내 깜깜한 복도를 걸어나오며 하교를 했다. 매일 이러했던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열심히, 바쁘게 학과생활을 하면서 ‘아.. 내가 오늘도 열심히 했구나’ 느꼈다. 쉬지 않고 달릴 수 있었던 것은 모두 경영대학 학우 분들 덕분이고, 앞으로 인생에서 이렇게 열심히 앞만 보고 달릴 수 있는 기회가 또 있을까 싶다. 경영대학 학우님들께 정말 감사하고 하시는 일들마다 잘 되시길 빈다. 경영대학 학생회의 스포트라이트는 저와 최희정 부회장님이 다 받지만, 사실 저희가 한 것보다 학생회 부원들이 일구어 준 것들이 더 많다. 학생회 부장 그리고 부원들이 만든 탑을 학우 분들에게 보이면서 많은 관심을 받았는데, 나보다 더 고생한 친구들이 우리 드림 친구들이다. 지친 순간순간 마다 학우님들 생각도 많이 났지만, 드림 학생회 한명, 한명 보면서 달렸다. 너무 고맙고 항상 하는 말이지만, 결혼식까지 다 챙기고! 끝까지 함께하는 학생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Q. 마지막 한마디 부탁한다. 최재혁: 국민대학교 경영대학은 우리학교 내에 가장 큰 단과대학이다. 정말 많은 학생들이, 단체들이 있고 그 안에서 정말 많은 이해관계들이 존재 하는데, 개개인들과 단체들이 모두 한마음으로 생각하고 바라는 것은 더 나은 경영대학을 만들고 발전시키는 일이다. 결국 우리 모두는 상생적인 관계이고 앞으로도 이런 관계 속에서 서로가 더더욱 화합해서 앞으로 쭉 나아갔으면 좋겠다. # 파이낸스·회계학부 학생회 FORUS ▲학생회 'FORUS'의 단체사진 (출처: 파이낸스·회계학부 학생회 'FORUS') Q. 길고 길었던 2016년 한 해였다. 1년의 임기를 마무리하는 심정이 궁금하다. 김민하 부학생회장(이하 김민하): 시원섭섭하다는 말이 가장 내 마음을 잘 나타내는 것 같다. 1년동안 힘들고 바쁘게 지내면서 신체적으로나 심적으로 힘들었던 적도 있었지만, 학생회원들과 너무나도 재미있게 일을 해갔기에 대학생활에서 잊지 못할 소중한 추억을 만들 수 있었다. 요즘은 하루에도 몇 번씩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회장오빠도 나도, 열심히 미래를 위해 준비할 시기가 오기에 비교적으로 차분한 2017년을 보내겠지만 작년 생각하면서 힘을 얻어 더더욱 열심히 공부하면서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Q. 포러스로 활동하면서 가장 뿌듯했거나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었나? 김민하: 마지막 행사였던 창립제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1년동안 축제, 총엠티, 만우절 행사 등 여러가지 큰 행사들이 있었지만 이 중에서 가장 큰 행사였기 때문에 여름방학 때부터 열심히 준비했었다. 시험기간에도 학생회끼리 연습실에서 땀흘리면서 열심히 무대준비도 하고, 리허설한다고 몇 번이나 명동에 찾아가서 회의도 하고, 소품사러 이곳저곳 찾아다니던 기억들이 평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이러한 노력들이 빛을 발하며 매우 성공적으로 행사를 끝낼 수 있었고 이번 창립제가 최고였다며 칭찬해준 친구들의 말을 들을때의 기분과, 회장오빠와 내가 창립제 마지막 소감을 말할 때의 그 기분이 정말 눈물이 고일 만큼 뿌듯하고 포러스가 자랑스럽게 느껴졌던 경험이었다. Q. 한 학부를 대표한다는 큰 책임감도 동시에 맡고 있는 것이 학생회이다. 힘들거나 어려웠던 점은 없었나? 김민하: 파이낸스회계학부를 대표하는 만큼, 우리도 그 책임감을 알고있기에 항상 최선을 다해 행사를 준비했었다. 하지만 그 행사들이 우리의 노력과는 달리, 업체가 갑자기 취소요청을 하는 등의 예상치 못한 일 때문에 그 행사가 학생들의 기대에 못 미쳤을 때 들려오는 소리는 참 안타깝고 마음이 아팠다. 물론 많은 학우들이 학생회에 대해 많은 격려와 칭찬을 해줘서 힘이 났었지만, 몇몇의 학우들이 이를 몰라주고 학생회를 말할 때 참 아쉬운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Q. 차기 학생회에게 바라는 점이 있는가? 당부나 조언의 말을 남긴다면? 김민하: 차기 학생회 ‘With YOU’ 에게 바라는 점은 딱히 없다. 학생회원들 모두 착하고 성실한걸 알기에, 큰탈 없이 잘 해낼꺼라 생각한다. 해주고 싶은말이 있다면, 학생회 활동을 하다가 비록 힘든일이 있더라도 이를 해결하고 극복하는 과정에서 배우는 점이 참 많을것이기에 서로를 믿으며 잘 이끌어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해주고 싶다! Q. 마지막으로 모두에게 한마디 부탁한다. 김민하: 파이낸스회계학부 학우분들이 있었기에 나와 회장오빠를 비롯한 포러스 친구들이 2016년 한 해를 의미있고 소중하게 보낸 것 같다. 모두 정말 감사하고 사랑한다는 말 전하고 싶다♥ # KIBS학부 학생회 브릿지 Bridge ▲ 학생회 'Bridge' 단체사진 (출처: KIBS 학생회 'Bridge') Q. ‘Bridge’라는 이름이 연결해주는 다리 역할이라는 의미인데 다리 역할을 잘 해냈다고 느끼는지, 1년의 임기를 마무리하는 심정이 궁금하다. 이원천 학생회장(이하 이원천):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았던 일년 임기였다. 처음 학생회 회장으로 입후보 하면서, 학교와 교수님들, 그리고 학생들을 연결하고 소통하게 만드는 다리가 되겠다는 의미에서 ‘Bridge’ 라는 이름을 내걸고 시작을 했다. 새로이 학부 페이스북 페이지 신설을 필두로 '글로벌 버디 프로그램', 처음 실시된 총회 형식의 개강총회, ‘제1회 KIBS 홈커밍 행사’ 그리고 학기 설문조사 등 다양한 방법으로 소통하려고 노력한 것 같다. 사실 1년이라는 시간이 짧다고 생각한다. 이제야 조금 능숙해지기 시작한 것 같아 아쉬움 또한 남는다. 1년의 임기를 마무리 하며, 1년을 끝냈다는 성취감 보다는 아쉬움이 더 크게 자리잡았다. Q. 페이스북 공개 페이지를 개설하는 등 학생들과 소통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해왔다. 이 과정에서 잘된 점이나 아쉬웠던 점은 없었는가? 이원천 : 페이스북 공개 페이지를 만들어 내고 관리해 낸것만으로도 우리 ‘Bridge’학생회 친구들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다. 페이지의 역할과 홍보의 목적을 잘 달성해 낸 것 같다. 사실 페이지 외에도, 동문 졸업생들과 재학생들에게 배부될 목적으로 소식지를 준비 했지만, 여러가지 제한사항들이 있어 실시하지 못하게 되어 매우 아쉽다. Q. 가장 잘 운영되었다고 생각하는 것과 스스로 1년을 평가해본다면? 이원천 : 이번 ‘Bridge’ 학생회를 구성하면서 가장 신경 썼던 부분이 행정과 국제기획 부분이었다. 행정의 경우 KIBS학부가 신설된지 6년을 맞이 하는 현재, 많은 학생회 및 학부 관련 자료 부족으로 인해 초기 운영에 있어 많은 시간을 투자하였다. 그리하여 틀을 잡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 하였으며, 외국인학생들과의 소통을 위하여, 외국인 학우 OWEN(KIBS, 13)을 학부에선 처음으로 학생회로 활동하며, 외국인 학생들과 소통함으로써 KIBS학부 학생들과의 시너지를 내기 위해 노력했다. 사실 일년이라는 시간이 너무나도 짧아서 잘했다, 못했다 평가하기 힘든 것 같다. 충분히 구상하던 학생회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움이 많이 남지만, 나를 비롯한 ‘Bridge’ 친구들의 시간과 노력이 절대 KIBS학부의 발전에 있어서 헛되지 않았다고 자신한다. Q. 차기 학생회가 어떤 방향으로 학부를 이끌어 나가 주었으면 좋겠는지? 당부나 조언의 말을 남긴다면? 이원천 : 이번 KIBS학부 학생회는 비상대책위원회로 꾸려졌다. 현재 비대위원장을 맡고 있는 하지원 학우(15) 과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많은 조언을 해주었다. 앞에서 말했듯이 신설된지 얼마 되지 않아, 기본적인 틀을 형성하는 것에 집중해 줄것을 부탁했다. 워낙 경험도 많고, 도전정신이 강한 학우여서 잘 이끌어 나가리라 믿으며, 학부를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 하나만으로도 학부 학생회를 이끌 수 있기에 충분히 차기 학생회가 잘해나가리라 믿는다. 모든 학생회에게 2016년 한 해를 되돌아 본다면 정신없이 바쁘면서 보람찬 평생 잊을 수 없는 그런 한 해였을 것이다. 지나간 1년이 다소 아쉽다고 말하는 그들에게 우리는 활동하는 그 모습은 언제나 눈부시게 빛났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한 해 동안 많은 수고를 한 경영대학 학생회 '드림'과 파이낸스·회계학부 학생회 'FORUS', KIBS 학생회 'Bridge'에게 박수를 보낸다. 기자 박윤희 (16) 기자 이주은 (15) BizOn Online Newletter Vol.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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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한예빈
- 작성일2024-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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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데이터경영통계 학생회, Back to the BASic 가족과도 같은 전공을 위해 누구보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지난해 11월 23일, 24일 양일간 열린 2017 경영대학 학생회 선거에서 가장 높은 투표율(82.7%)을 보여주며 빅데이터경영통계 전공 학생회 BASic이 당선되었다. 입학 정원이 50명이기에 다른 어떤 학부보다도 가족과 같이 단란한 빅데이터경영통계 전공만의 분위기를 잘 보여주는 투표율이었다. 이러한 학우들의 믿음에 보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제5대 빅데이터경영통계 학생회 BASic의 변선영 학생회장(15), 김세홍 부학생회장(16)을 만나 그들의 열정적인 목소리를 담아보았다. ▲회장 변선영 학우(좌)와 부회장 김세홍 학우(우) (사진 제공: BASic) Q. 학생회 출마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변선영 학생회장(이하 변선영): 중고등학교 때 학생회를 해왔기 때문에 대학교에서도 입학할 때부터 학생회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기회가 돼서 2학년 때 경영대학 학생회에서 일했고, 학생회원으로서 일하면서도 정말 즐겁고 보람차다고 느꼈다. 이 생각을 기반으로 빅데이터경영통계 학생회에 나가보면 어떨까 하는 마음을 서서히 갖게 되었다. 그러던 중 빅데이터경영통계 전공이 경영학부로 통합이 된다는 말이 나왔을 때 몇몇 학우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학생들이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을 관심 있게 지켜봤고, 내가 전공에 애착이 강한 만큼 전공을 지켜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리고 복지 물품의 대여, 랩실의 보안상의 문제 등 아직 전공 학생회가 신설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기반이 제대로 잡히지 않은 점들 또한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었다. 사실 출마 전에 ‘전공을 대표하기에 내가 너무 부족하진 않을까’ 하는 고민을 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항상 옆에서 이야기를 들어주며 응원해줬던 많은 사람들 덕분에 출마를 결심하게 되었다. 김세홍 부학생회장(이하 김세홍): 중고등학교 때 전교 학생회장을 역임하기도 했고, ‘고백’ 선거운동본부에 지원하여 1년 동안 학생회에서 활동하면서 전공 행사가 있을 때마다 행사를 주도하고 동기들의 단합을 돕는 일을 진행했었다. 어떻게 보면 내 성격 때문에 리더의 역할을 자처해서 하는 편인데도 처음에 회장의 제안을 들었을 때는 내가 그만큼의 그릇이 되는지 많은 생각을 했었다. 학교생활을 한 지난 1년 중 출마를 준비하는 그 기간이 어쩌면 전공에 대해서, 전공의 미래에 대해서 가장 많이 생각했던 시간이었다. 그 결과 다른 동기들보다 남다른 애착을 느끼고 있다고 생각했고, 지난 학생회 활동을 하며 경영학부와의 통합에 대해서 들어왔기 때문에 전공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무엇보다 커서 출마를 결심하게 되었다. Q. 학생회 이름이 BASic이다. Business Analytics & Statistics 전공의 IC(교차로) 같은 존재라는 의미라고 알고 있는데 이렇게 짓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변선영: 처음에 선본명을 정할 때 후보가 두 개가 있었는데, 하나가 BASic이었고 다른 하나는 즐겨찾기였다. 회장단의 나이가 어리니까 신입생과 선배들이 우리를 편하게 찾고,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즐겨찾기로 짓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즐겨찾기로 이름을 지을 경우 의미를 담을 수 있는 구호가 잘 떠오르지 않았다. BASic의 경우에는 빅데이터경영통계 전공 학생들의 교차로나 연결 통로가 되자는 이름 자체의 의미와 함께 'Back to the BASic'이라는 구호를 덧붙여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의미 또한 넣을 수 있었다. 그래서 초심을 잃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으로 학생회 이름을 BASic으로 정하게 되었다. Q. 학생회 구성원을 어떻게 조직하고, 부원들을 뽑을 때 중요시한 점은 무엇인가? 변선영: 하나는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나를 믿어줄 사람, 무조건 내 말을 믿어주고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 실력이 뛰어난 친구들보다 나를 믿어줄 수 있는 친구들을 뽑고 싶었다. 또 하나는 신입생과 선배들 사이의 교류가 필요하다고 느꼈고, 가족 같은 학생회를 만들고 싶어서 13학번 선배님들과 같이 학생회를 꾸려서 하나가 되는 분위기를 만들어 보는 것을 중점으로 두었다. 김세홍: 다양한 요소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단합이라고 생각한다. 마음이 맞지 않는다면 일을 진행하는데 분명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전공을 사랑하는 마음과 열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Q. 학생회를 준비하면서 어려웠던 점이 있다면 무엇이었는가? 변선영: 딱히 힘들었던 점은 없었다. 부회장 친구도 1년 동안 친하게 지내던 후배였고, 내가 같이 학생회를 하자고 했을 때도 고맙게도 부학생회장이 흔쾌히 수락을 해주어서 같이 일하게 되었다. 시작이 좋았던 것 같다. 학생회 구성원들을 꾸릴 때도 마찬가지로 마음이 다들 잘 맞았다. 전공 자체가 워낙 가족 같은 분위기라서 준비하면서 힘들지 않았다. Q. BASic의 공약 중에서 BASic만의 특별한 공약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변선영: 우선 랩실 환경 개선은 예전부터 항상 나오던 공약이다. 올해는 전체적으로 랩실을 개선해서 전공 내의 친목의 공간, 학업의 공간 두 가지를 모두 이루는 것이 공약 중 가장 실현되어야 하는 중요한 공약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올해 학술제를 만들겠다고 공약을 내세웠다. 전공에 D&A라는 학회가 있는데 이 학회 자체가 굉장히 의미 있고 학술적인 학회라서 우리 전공에 없어서는 안 될 학회다. 학회의 기반도 잡고 경영학부 내 학회들의 소통이 활발해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현재 경영학 전공과 빅데이터경영통계 전공이 함께하는 학술제 개최를 두고 경영학 전공 비대위원장님과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야기 중에 있다. 마지막으로는 교수님과의 토크 콘서트가 있다. 전공이 현재 다른 전공에 비해 재학생 수가 적어서 가족 같은 분위기임에도 불구하고 학생들과 교수님과의 교류는 거의 없다. 고학번들은 수업을 들으니까 괜찮은데, 1학년 때는 전공 교수님들 수업을 하나도 듣지 않는다. 1학년이 전공에 관해 여쭤보고 싶어도 여쭤볼 수가 없고, 전공 교수님을 만나도 모르니까 인사를 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신입생을 대상으로 교수님과 토크 콘서트를 열어 교수님과 대화하는 자리를 만들기 위해 현재 기획 중이다. Q. BASic에게 빅데이터경영통계 전공이란 어떤 의미인가? 변선영: 가족이라고 생각한다. 항상 공약을 설명하려고 강의실에 들어갈 때도 가족 같은 전공을 만들고 싶다고 이야기를 했었다. 다른 전공은 사람이 많아서 서로 모르는 사람이 있겠지만, 우리 빅데이터경영통계 전공은 사람이 적다 보니 수업도 다 같이 듣고 그러다 보니 창립제나 홈커밍데이를 해도 모르는 동기가 한 명도 없다. BASic에게 빅데이터경영통계는 가족이다. Q. 17학번들을 위한 준비하는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는가? 변선영: 신입생을 위한 소모임이나 스터디를 만들 생각이다. 전공이 어려워서, 2학년 때 전공을 갑자기 접하면 혼란스러워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17학번들이 이러한 것들을 미리 준비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준비할 예정이다. "저는 이 자리를 준비하면서도 그렇고, 항상 모든 일에 있어 모든 순간에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작년에 학생회 일을 할 때도 그렇고 매사에 정말 최선을 다했습니다. 훗날에 오늘을 생각했을 때 부끄럽지 않도록 항상 정직하고 겸손한 자세로 일하려고 노력하겠습니다." 제5대 학생회 BASic 학생회장 변선영 "학우 분들이 저희를 믿고 선출해 주신 만큼 믿음에 보답하기 위해 매사에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또한, 모습뿐만이 아니라 그에 걸맞은 결실도 함께! 제가 그랬던 것처럼 새로 들어올 17학번 후배들에게도 국민대학교 경영학부 빅데이터경영통계 전공의 일원으로서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멋진 선배, 멋진 BASic을 완성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제5대 학생회 BASic 부학생회장 김세홍 질문 하나하나에 심사숙고하며 진지한 태도로 인터뷰에 응해준 학생회장과 부학생회장, 이들 두 사람의 대답 속에서 전공에 대한 커다란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빅데이터경영통계 전공 학우들이 더 나은 학교생활을 할 수 있도록 다양한 공약을 준비하며 그들이 맺게 될 멋진 결실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BASic, 이들의 구호 'Back to the BASic'과 같이 초심으로 돌아가 앞으로 새롭게 쓰여질 빅데이터경영통계 전공만의 역사를 기대해본다. 기자 최소정 (15) 디자인 백종혁 (16) BizOn Online Newletter Vol.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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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한예빈
- 작성일2024-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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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5
- 작성자이주협
- 작성일2024-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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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에서 한국어로 경영을 가르치자! '베한경' 베트남 대학교에서 한국어가 들린다! 경영대학의 대표 국제 교류 프로그램인 '베트남에서 한국어로 경영학을 가르치자'(이하 베한경)! 베한경은 경영대학 학우들이 하노이, 다낭, 호치민의 대학에 파견되어 각 학교의 한국어학과 학생들과 만나 보름 동안 수업 및 문화교류시간을 가지는 프로그램이다. 낯선 타국에서 한국어로, 그것도 경영학을 가르치는 대단한 일을 하고 온 학우들을 BizOn에서 만나보았다. '작은 파리'라고 불리는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로 파견된 경영학부 민범기, 김민아 학우와 [포브스]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6대 해변'중에 하나인 다낭으로 파견된 방한결 학우는 어떤 경험을 하고 왔을까? ▲ 베트남 하노이 대학교에 파견된 김민아 학우와 친구들(출처: 김민아 학우) Q. 경영대학의 많은 국제교류 프로그램이 있는데 ‘베한경’에 지원하게 된 동기가 무엇인가요? 민범기 (이하 민)) 제가 베한경에 끌렸던 이유는 두 가지에요. 먼저 ‘경영학을 가르친다’라는 것이 평소에도 교육에 관심이 많은 제게는 매력적인 문구였습니다. 수학, 영어가 아닌 대학에 와서 배웠던 내용을 누군가에게 가르쳐 줄 기회가 있다는 게 좋았습니다. 다음으로 ‘문화교류’를 할 수 있다는 것에 끌렸어요. 베트남에서 한류열풍이 불고 있는데, 몇 년 전부터 인디뮤지션과 공연을 만들고 있는 저는 그곳에 가서 인디음악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또 역으로 그 나라의 음악에 대해서도 배워보고 싶었고요. 최종적으로는 버스킹도 도전해보고 싶었는데, 조원들과의 단체 생활이다 보니 실현하지는 못했던 것이 조금 아쉬워요. 김민아 (이하 김)) 베한경은 겨울방학을 이용한 국제교류프로그램이라 시간적 부담이 적었습니다. 또한 계절학기 2학점을 수료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 더 좋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외국 현지에서 현지인들에게 내 모국어로 내 전공과목을 가르칠 수 있는 것이 흔하지 않은 기회라는 것이 저에겐 참 매력적이었습니다. 방한결 (이하 방))프로그램마다 특징들이 다 달라서 고민을 많이 했었습니다. 4학년에 올라가는 시기라 부담도 됐었고, 방학 때 정한 목표가 있는데 그것을 병행할 수 있는 프로그램에 지원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베한경은 다른 프로그램과는 달리 체류기간도 짧고 배웠던 ‘경영학’을 가르치는 일이다 보니 부담도 적었기에 지원했었습니다. Q. ‘베한경’ 프로그램이 시작하기 전 한 노력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민) 먼저, 베한경에 지원할 때는 누구보다 열심히 자기소개서를 쓰고 저를 어필하려 노력했습니다. 또한 합격 이후에는 학교에서 마련해준 1달 동안의 베한경 사전교육 프로그램을 들으며 베트남어와 문화에 대해 알고 가려 노력했습니다. 또 무엇보다 학생들을 만나 가르치기 위해 저희가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목들의 핵심들을 정리하고 피피티로 만들고 조원들과 상의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그리고 베트남 친구들을 위한 작은 선물들도 준비해 가져갔습니다. 김) 베한경은 면접 없이 자기소개서로 합격 여부가 판단되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소개서를 열심히 썼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베한경이라는 프로그램은 지원자에게 무엇을 원하는 프로그램인지 생각해보고 그것과 관련된 저의 특기를 어필했습니다. 방) 총 4회차의 베트남 사전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했습니다. 교육이 끝난 뒤에는 조원들끼리 따로 시간을 내어 어떻게 교육할 것인지 서로 공부하기도 했습니다. 또 한 ‘적어도 개론은 명확하게 알고 가르쳐야겠다.’ 라는 생각으로 각 개념에 대한 예시, 개념의 중요도를 살펴보며 공부했습니다. ▲ 베트남 하노이 국립 외국어 대학교에 파견된 민범기 학우와 친구들(출처: 민범기 학우) Q. 베트남에 가서 어떤 식으로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것인가요? 김) 제가 간 하노이 대학교에선 한 명의 한국인 학생에게 베트남학생이 4명씩 배정되었습니다. 배정된 친구들과 팀을 이루어 2주간 팀별로 자유롭게 시간을 맞춰서 미리 준비해 간 경영학원론 교재를 이용해 그룹 과외식으로 수업을 했습니다. 정해진 시험 날짜에 미리 준비해 간 시험지로 학생들이 배운 내용을 시험을 치는 형식으로 프로그램이 진행되었습니다. 방) 팀 배정은 각 팀원의 장점을 살릴 수 있게 자기소개서를 바탕으로 나눕니다. 이번에는 각 팀이 다낭, 호치민, 하노이 세 지역에 랜덤으로 파견되었습니다. 베트남 학생별로 한국어 능력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팀별로 학생들의 비율을 따져, 조를 나누어 소그룹으로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한국어로 경영을 가르치자’라는 큰 틀 안에서 탄력성 있게 프로그램이 운영되어 수업할 때는 조별로 활동하고, 견학수업을 할 때는 몇 팀씩 뭉쳐서 활동하기도 하였습니다. Q. ‘베한경’을 진행하면서 힘들었던 점을 꼽자면 무엇이 있나요? 민) 힘들었던 점은 솔직히 없었습니다. 교수님을 포함한 모두가 가장 걱정하는 것은 팀원과의 불화와 베트남 학생들과의 의사소통 문제인데 친구들이 모두 한국어 자격시험 5~6급 (6급이 끝)을 가지고 있을 만큼 한국어를 잘하는 친구들이라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드라마 도깨비를 베트남어로 번역하는 것이 취미인 학생도 있고 베트남어와 한국어 과외를 하는 학생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희 팀원들은 아주 나이스 했습니다. (웃음) 김) 크게 힘들었던 점은 없었습니다. 2주라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약간은 불편한 시설이나 환경에서 지내면서 지칠 수 있었지만, 한국인 팀원들과 베트남친구들과 함께 많은 것을 경험하고 나누기에는 긴 시간이 아니었고 지치지 않고 2주 내내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방) 딱히 없었습니다. 물론 베트남으로 가기 전 수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조금 힘이 들었지만, 배웠던 과정이라 정말 미비했습니다. 좋았던 기억밖에 없어서 최대한 많이 이 프로그램을 홍보하고 싶습니다. Q. ‘베한경’에서 어떤 것을 배웠나요? 민) 사실 가기 전에 주변에서 ‘하노이는 별로다.'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약간 실망하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장소가 아니라 사람이니까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갔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가서 베트남 친구들이 저에게 봉사한 것 같아서 친구들이 진심으로 대해주는 태도에 처음에 들었던 생각에 대해 미안하고 후회되었고, 팀원들과의 합을 통해서 또 사람의 중요성을 배웠습니다. 중요한 것은 콘텐츠보다 사람인 것 같다는 걸 제일 크게 배운 것 같습니다. 방) 베트남이라는 국가에서 비슷한 또래의 학생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아가는지, 우리 한국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그들의 가치관과 환경을 알 수 있었습니다. 막연하게 느껴졌던 해외가 가깝게 다가올 수 있었고, 지금 공부하는 것을 살려서 이 나라에서의 진로까지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 베트남 하노이 국립 외국어 대학교에서의 활동 사진(출처: 민범기 학우) Q. ‘베한경’에 지원하고자 하는 학우들에게 한마디 하자면? 민) 베한경 가세요, 두 번 가세요! 학교의 지원과 팀원과의 협동, 같은 나이 또래의 베트남 친구들과의 교류, 이 세 가지를 한 번에 누릴 수 있는 건 베한경 밖에 없고 지금 대학생 때가 아니면 절대 하지 못할 경험인 것 같습니다. 김) 베한경은 단순히 경영학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베트남 친구들과 새로운 인연을 맺고 2주간 그들의 대학생활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함께 경험하며 학업적인 것과 그 외의 것을 나눌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베한경이라는 프로그램이 아니었다면 평생 경험하지 못했을 많은 것들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지원하고 싶은 분들께 정말 자신 있게 추천해 드리고 싶습니다! 방) 개인적으로 준비해서 다녀온 해외여행들 보다도 더 좋았습니다. 경영대학에 많은 프로그램이 있지만 ‘시작’하기에 정말 좋은 프로그램 같습니다. 부담도 크지 않으면서 얻는 점도 너무 많고 현지 학생들을 만나면서 배운 점을 토대로 다른 프로그램까지 지원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더 넓게 여러 가지를 얻어갈 수 있는 경험이 될 것임으로 주저하지 말고 지원했으면 좋겠습니다. ▲ 다낭 팀의 단체사진(출처: 허태구 학우)▲ 다낭팀(출처: 허태구 학우) 세 학우 모두 힘들었던 점을 물었을 때, 좋은 기억밖에 없다는 답변을 하였다. 다른 국제교류 프로그램보다 부담도 적고 비슷한 또래의 친구들과 함께 다양한 활동을 해볼 수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교학상장(敎學相長)이라는 말이 있다. 가르침과 배움이 서로 진보한다는 뜻인데, 베한경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학우들은 경영학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고 베트남 학우들은 경영학을 한국어로 배운다는 색다른 경험을 했을 것이다. 거기에 돈독한 우정도 쌓을 수 있으니 다음 방학 때는 베한경을 노려보자! 기자 박교리 (16) 디자인 박유경 (15) BizOn Online Newletter Vol.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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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3
- 작성자한예빈
- 작성일2024-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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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교위가 사필귀정, 2016 경영대학 임시정부 루트 탐방 임시정부의 숭고한 발자취를 따라 걷는 임시정부 루트 탐방. 그 이야기를 들어보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신을 계승하여, 독립 국가건설에 필요한 인재를 육성한다는 건학이념으로 국민대학교를 세웠다." 해공 신익희 선생이 1946년 9월1일 창학연설을 통해 밝힌 국민대학교의 건학이념이다. 이에 국민대학교 경영대학에서는 학교의 설립자인 해공 신익희 선생이 참여했던 임시정부가 이동한 루트를 방문하고 중국에 남아있는 임시정부의 독립운동 유적지와 관련 역사 및 현지 문화, 중국으로 진출한 국내 기업을 보고 체험하는 프로그램인 '임시정부 루트 탐방'프로그램을 2013년부터 시행하고 있다. 올해는 그 네 번째 시간으로 1월 8일부터 14일까지 총 6박 7일 동안 진행되었다. 4개의 조로 나뉜 탐방단은 본격적인 탐방에 앞서 두차례의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하였고, 각 조별로 소통하고 친해질 시간뿐만 아니라 맡은 탐방지를 조사해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 탐방단의 모습 1월 8일 이른 아침, 임시정부 루트 탐방 프로그램에 선발된 24명의 탐방단이 인천공항에 모였다. 사전에 진행된 오리엔테이션 덕분에 각 조별로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탐방단은 첫 발을 내디뎠다. 나라 잃은 설움 속에서 희망을 보다, 임시정부 루트 탐방 ▲ 상해 임시정부 청사 1919년 4월13일에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임시 의정원과 임시정부로 이루어진 의원내각제를 채택해 대한민국의 해방을 위해 앞장섰던, 말 그대로 한 나라의 정부였다. 나라를 빼앗겨 비록 한국 땅에서는 활동하지 못했지만 프랑스 조계지 근방에서 시작해 항주, 충칭 등 일본의 감시를 피해 중국 각지에서 활동했다. 임시정부 루트 탐방 프로그램은 이름에 걸맞게 탐방의 주목적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발자취를 따라걷는 것이다. 이에 탐방단은 중국 상해에 도착해 상해 임시정부 청사를 살펴보았다. 상해 임시정부 청사는 임시정부의 힘들고 열악했던 상황을 대변하고 있는 듯 보여 탐방단에게 진한 여운을 남겼다. 더군다나 중국 정부의 개발로 한 차례 없어질 위기에 처했었기 때문에 우리 정부와 국민들이 역사적 의의가 있는 장소를 위한 지원과 관심을 좀 더 늘렸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을 남겼다. 또한 1932년 당시 25살의 젊은 청년이었던 윤봉길 의사의 의거가 있던 루쉰공원(구 홍구공원)과 대한민국의 첫 헌법이자 후에 헌법의 기초가 된 대한민국 임시헌장 제작을 주도했던 신규식 선생을 비롯한 일부 독립투사들의 초석이 있는 만국공묘를 방문했다. 두 곳 모두에서 조국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독립운동가들의 숭고한 뜻과 애국심을 느낄 수 있었다. ▲ 만국공묘에서 묵념을 하는 탐방단 윤봉길 의사의 의거가 있은 후 백범 김구 선생은 일제의 심한 감시를 받게 되었고, 그는 감시를 피해 가흥으로 떠났다. 이때 도움을 준 사람이 중국 국민당 간부인 저보성이었다. 김구 선생과 국민당은 윤봉길 의사의 의거로 연을 맺게 되었고 저보성은 가흥과 해염 두 곳에서 김구 선생의 피난처를 마련해 살벌한 일제의 감시 속에서 김구 선생을 보호해주었다. 가흥에 위치한 김구 피난처는 저보성의 저택으로 뒤편에 남호가 위치해 언제든지 대피할 수 있었다. 또한 걸어서 5분도 채 되지 않은 곳에 임시정부 요인들의 거주지가 있었음에도 김구와 임시정부 요인들은 서로가 어디에 사는지 모를 정도로 극비로 활동을 했다. 상해에 이어 항주로 위치를 옮긴 임시정부를 따라 탐방단은 항주로 이동했다. 항주 임시정부 청사는 열악했던 상해 임시정부 청사에 비해 깔끔했고 정돈되어 있었다. 청사 안은 전시관으로 임시정부 요인들의 사진과 업적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국민대학교 초대 학장인 신익희 선생의 사진 역시 전시되어 있었다. 해방이후 대한민국 최초 민족 사학인 국민대학교 학생임이 뿌듯해지는 순간이었다. 35년 동안 억겁의 시간을 보낸 후 1945년 대한민국은 광복을 맞이하게 된다. 남경에서 광복 후의 임시정부의 흔적을 만날 수 있었는데, 바로 중국에 남아 임시정부의 잔무 처리와 외교, 영사 등의 역할을 수행한 주화대표단의 사무처였다. 주화대표단은 1946년 6월부터 활발히 활동을 했는데 엄연히 말하면 이때는 나라가 없을 때였지만 박찬익, 민필호 등이 남아 정부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하지만 직접 가서 본 결과 주화대표단 사무처는 '남경 김구 피난처'라고 잘못 적혀있을 뿐만 아니라 현재 주민이 살고 있어 들어가지도 못하는 곳이 되어, 우리의 무관심 속에 그 모습을 잃어가고 있었다. ▲ 주화대표단 사무처의 모습 한국 기업의 저력을 중국에도, 산업시찰 작년과는 다르게 경영대학우들로만 구성된 탐방단인 만큼 세계시장의 축소판이라는 중국에서 한국 기업의 위용을 떨치고 있는 세 기업을 찾아가 산업시찰을 진행했다. 먼저 찾아간 곳은 상해 금산공업지구에 위치한 '농심'으로, 2017년의 첫 손님이었던 탐방단을 상해 지사 공장장과 직원들이 반갑게 맞이했다. 공장을 둘러보기 전, 농심이라는 기업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듣는 시간을 가졌다. 농심은 100여 개의 국가에 수출하는 세계 유일의 기업으로 세계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로 한국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특수화, 차별화된 사업을 꼽았다. 실제로 농심은 한국 전통의 맛을 지키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었으며 이론적으로 배웠던 현지화는 제품이 아닌 노동력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또한 다른 라면보다 비싸게 팔아 고급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컵라면 문화였던 중국에 끓여먹는 라면 문화를 전파한 것도 농심이라고 소개하며 농심이 한국기업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가져도 충분하다는 말을 남겼다. 이어 공장을 둘러보는 시간을 가졌다. 위생복을 착용한 학우들은 자신들이 먹는 라면이 어떻게 생산되고 있는지 살펴보며 놀라움의 탄성을 자아냈다. ▲ 상해 농심 공장에 방문단 탐방단 농심에 이어 가흥에 위치한 한국타이어와 무석에 위치한 SK하이닉스에서도 현지 산업시찰 기회를 가졌다. 각기 다른 산업인 만큼 각 산업별 특징을 눈으로 보고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대륙의 문화를 느끼다, 문화탐방 황포강을 따라 이어진 상해의 야경을 볼 수 있는 외탄야경, 나룻배로 이동했던 서당, 전통음식이나 다양한 소품이 많아 한국의 인사동 같았던 청화방 옛거리 등 탐방단은 중국에서 한국의 역사, 기업만을 보고 온 것이 아닌 중국의 문화를 체험하는 시간 또한 가졌다. 또한 고속철을 타고 도착한 이우 지역에서는 이우시장에 들러 조별 미션도 수행했다. 조별로 기념이 될 만한 물건을 하나 정해서 구매해 오는 것이었는데, 이우 시장이 도매로만 물건을 판매했기 때문에 거의 대부분의 조가 미션을 실패했다. 볼거리, 먹을거리, 놀거리에 비해 자유시간이 적었던 청화방 옛거리나, 가흥 지역을 방문했을 때 들렸던 서당 등에서 이와 같은 미션을 진행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한국과 중국의 역사적 접점은 비단 임시정부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일본이 한국에서 자행했던 제암리 학살 사건과 같이 중국에서는 남경 대학살이 있다. 3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죽임을 당한 남경 대학살을 기념하기 위해 중국 정부에서는 웅장한 규모로 기념관을 조성해 유네스코 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 많은 학우들이 '12초'관을 가장 인상 깊었던 장소로 꼽았는데, 이는 6주간 지속되었던 난징대학살이 12초에 한 번씩 사망자가 발생한 것을 빗대 12초에 한 번씩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나도록 전시해 놓은 곳이었다. 또한 남경에는 이제항위안소구지진열관이 위치해 있어 역시 중국과의 접점을 살펴볼 수 있었다. 이 곳에는 한국의 위안부 할머니들의 사연뿐만 아니라 위안부 사건의 대상이 되었던 다양한 국적의 피해자들의 인터뷰, 당시 참혹했던 상황 등을 재현해 놓았다. 특히 19번 방의 크기가 제일 컸는데 이는 입구의 동상으로도 볼 수 있는 박영심 할머니의 방을 재현해 놓은 곳으로 그만큼 우리나라가 많은 피해를 입고 많은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 이제항위안소구지진열관의 모습 또한 탐방 3일차에는 '절강 월수 외국어 대학'에서 국민대학교 회계학과를 졸업한 동문이자 절강 월수 외국어 대학의 한국학과 남상호 교수의 임시정부 루트에 대한 강의를 듣는 시간을 가졌다. 더불어 절강 월수 외국어 대학과 저장성의 이야기 등 중국의 이야기에 대한 강의도 진행되었으며, 절강 월수 외국어 대학의 한국학과에 재학중인 중국인 학우의 멋진 한국노래 선물을 들을 수 있었다. 학식을 먹고 학교 탐방을 하는 시간을 가지는 등 중국 대학의 문화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 절강 월수 외국어 대학에서의 강의 이번 탐방은 조별로 직접 탐방지를 조사하고, 출국 전 백범일기 서적과 황선익 교수의 강의 자료를 읽어봄으로써 임시정부 루트탐방단은 배움에 대한 '준비'를 할 수 있었기에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낄 수 있었다. 기존 루트 탐방의 미흡한 부분 중 하나였던 사전 지식 부족의 문제가 일부 개선된 모습이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6박 7일이란 시간동안 탐방단은 학교의 뿌리를, 그리고 조국의 뿌리를 몸소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동안 책으로만 배워왔던 우리의 가슴 아프지만 훌륭한 역사를 보고 느끼며 독립운동가들의 애환과 의지를 직접 느껴볼 수 있던 시간이었다. 비록 빡빡했던 일정 탓에 여행의 피로가 쌓이긴 했지만 그들의 발자취 속에서 느낀 의지와 애국심 덕에 고됨보다는 자랑스럽고 감사한 마음이 훨씬 크게 남았다. 중국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루트를 개인적으로 탐방하기에는 긴 이동거리 등 어려운 부분이 많기 때문에 이와 같은 경영대학 국제교류 프로그램을 통해 소중한 기회를 얻게 되었음에 탐방단은 감사했고 마음 한 켠에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았다.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노력으로 지켜진 대한민국의 국민이자, 해방이후 대한민국 최초 민족 사학인 국민대학교 학생이라는 자긍심이 보다 많은 학우들에게 널리 퍼지기를 기대해본다. 우리는 임시정부의 존재가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단순히 일제의 탄압에서 벗어나기 위해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존재했다는 사실 뿐만 아니라, 이것이 현재 우리에게 전달해주는 가치나 의의는 무엇인지, 독립운동가들의 희생이 헛되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 지금 우리는 어떤 노력을 해야하는지, 깊게 고민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황선익 국사학과 교수 기자 박윤희 (16) 촬영/편집 이지민 (15) BizOn Online Newletter Vol.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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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1
- 작성자한예빈
- 작성일2024-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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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국민대 핀테크 Startup 산학 포럼 예비 핀테크 창업자를 위한 사전 금융교육 지난 11월 24일, 국민대학교 경영관 501호에서 KB-국민대 핀테크 Startup 산학 포럼이 열렸다. 이번 행사는 예비 핀테크 창업자에 대한 사전 금융교육을 통해 창업단계의 시행착오 감축을 도모하고, KB와 협력을 맺은 핀테크 관련 분야의 다양한 사업가들의 생생한 경험담을 통해 핀테크 분야와 더 가까워지기 위한 목적으로 진행되었다. ▲KB-국민대학교 핀테크 StartUp 산학 포럼 행사는 핀테크 주임교수인 이동엽 교수의 사회로 시작되었다. 이태희 학장은 이 행사를 통해 국민대학교 학생들이 핀테크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참여해 더욱 건설적인 미래를 만들어 나가길 바란다며 축사를 마무리했다. 이어서 축사를 맡은 KB금융그룹 미래금융을 담당하고 있는 강대명 상무는 오늘 연합 포럼 자체가 상당히 의미 있다고 밝히며 핀테크 분야에 관한 전문적인 학업을 개설한 최초의 학교인 국민대학교와 더욱 협력해 핀테크에 대해 더 많이 알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계획을 언급했다. ▲강연 중인 최현중 대표 첫 번째 순서로는 최현중 대표가 P2P Biz 모델과 현황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시작했다. 사용자의 시간 절약, 비용절감, 보안강화 측면에서 실효성을 보여야 진정한 핀테크임을 강조했는데, 우리나라의 다양한 핀테크 종류 중 크라우드 펀딩에 관한 내용을 중심으로 강연했다. 현재 자신이 대표로 있는 ‘펀디드’라는 P2P대출 플랫폼이 투자자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그 안정성을 인정받아 KB와 함께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최현중 대표는 자신이 단순히 흥미가 가는 분야보다는 내가 잘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찾아 사업을 진행하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다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두 번째 순서로는 최명규 대표가 보안 솔루션의 진화를 주제로 강연을 이어 나갔다. 현재 모바일 보안 전문 기업 락인컴퍼니의 대표직을 맡고 있으며, ‘보안’의 정의 같은 간단한 개념부터 시작해서 전 세계 다양한 사례를 보여주며 보안의 변화 양상에 대해 체계적인 설명을 덧붙였다. 그뿐만 아니라 초기 보안을 하지 않은 게임이 시장에 출시되었을 때 출시 직후 온갖 복제품이 만들어진 것을 예시로 들며 보안의 중요성을 효과적으로 강조한 강연이었다. 강연의 마지막 부분에 락인컴퍼니에서 개발한 앱을 직접 제작한 동영상으로 소개한 부분 역시 청중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고용기 대표의 강연을 경청하는 청중들 세 번째 순서로는 크라우드 펀딩에 관한 오픈트레이드 고용기 대표의 강연이었다. 금융적 크라우드펀딩과 비금융적 크라우드 펀딩을 비교하며 실제 크라우드펀딩에 성공한 사례와 실패했던 사례를 들며 흥미를 유발했다. 뿐만 아니라 투자가 되지 않는 10가지 이유 등을 인용해 강연을 마무리했다. 잠깐의 쉬는 시간 이후 시작된 마지막 강연은 메시징 솔루션의 활용가치에 대한 이상희 이사의 강연이었다. 모바일 메시징이란 카톡처럼 따로 애플리케이션을 만드는 것이 아닌 기존의 앱의 메세징을 도와주는 서비스이다. 구글 앱스토어에서 이용자 수가 가장 많은 TOP6가 모두 메시징 프로그램이었다는 점에서 앞으로 모바일 메시징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고 밝혔다. 음성통화를 주로 하지 않는 현재 트렌드를 언급하며 고객이 어떤 행동양식을 가지고 콘텐츠를 소비하는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강연 중인 이상희 이사의 모습 모든 강연이 끝난 후, 포럼에 참여한 국민대학교 학생들의 Q&A 시간이 이어졌다. 강연자들이 소개한 기업에 대한 추가적인 질문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창업에 관한 질문이었다. 자신의 경험담을 강조하며 조언을 아끼지 않았는데, 공통적인 의견은 한 번쯤은 용기를 가지고 부딪혀보는 열정, 그리고 주변에 도움을 구할 수 있는 선배나, 성공한 사람이 있다면 망설이지 말고 조언을 구해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적극적인 태도로 임해야 기회가 있을 때 그 기회를 놓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생생한 강연을 들으며, 강연 내용이 학생들에게 피와 살이 되는 이야기라고 느꼈다. 이동엽 교수의 말을 인용해보면, 이것이 피와 살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노력이 뒷받침 돼야 할 것이다. 더 많은 의문점을 가지고, 더 많이 질문하는 태도가 경험하며 성장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무언가를 이룰 때까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국민 인들이 이처럼 앞으로도 진행될 많은 행사에 참여해 자신의 미래를 꿈꾸고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국민*인이 되기를 바란다. 기자 박윤희 (16) 디자인 박유경 (15) BizOn Online Newsletter Vol. 28 (20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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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9
- 작성자이주협
- 작성일2024-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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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대학교의 살아있는 역사, 김은홍 교수를 만나다 국민대학교 70주년 기념 인터뷰, 30년 근속의 김은홍 교수 70주년을 맞이한 국민대학교. 70년 동안의 비약적 발전 속에 국민대학교의 많은 구성원의 노력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경영대학에 현재의 국민대가 있기까지 30여 년이라는 오랜 세월을 두 팔 걷고 노력한 김은홍 교수. 70주년 기념으로 30년 근속이라는 영광을 안은 그를 만나 국민대학교의 미래를 생생하게 전해 들을 수 있었다. ▲김은홍 교수 카이스트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던 김은홍 교수는 친구가 국민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던 인연으로 1982년 1학기부터 경영대학의 식구가 될 수 있었다. 당시 국민대는 1981년도 종합대학 승격 이후 교수가 많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김은홍 교수는 경영학과에서 시간강사 신분으로 강의를 시작하였고, 1986년 3월 박사학위 취득과 함께 전임교수로 부임하였다. 시간강사로 강의 하던 시절까지 포함하면 34년이라는 긴 시간을 국민대학교와 함께한 살아있는 역사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MIS의 산증인, 김은홍 교수 김은홍 교수는 34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수많은 일을 경험하였다고 한다. 그 중 그의 뚜렷한 족적은 경영정보학부를 만드는 데에 기여한 것에 있다. 1980년대 초반은 한창 해외에서 MIS 붐이 일어나고 이에 우리나라 또한 MIS 분야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던 시기였다. 그 당시 카이스트 박사과정에서 MIS를 전공하던 김은홍 교수에게 국민대 경영학과 교수들이 전공 설립을 제안하게 되었다고 한다. 국내에 MIS 전문가도 별로 없던 시절이었지만 김은홍 교수는 MIS 전공을 만드는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이에 도움이 되기 위해 미국, 일본, 영국 등 다양한 나라의 자료를 수집해 경영정보학과의 커리큘럼과 운영방안을 제안하게 되었다. 이렇게 많은 노력을 통해 경영정보학부는 1984년도에 1기 신입생을 맞이하게 되었다고 한다. 1기가 들어올 당시 김은홍 교수는 박사과정을 이수하고 있었고 여러 사정이 생겨 많은 노력을 들인 경영정보전공의 교수로 재직할 수는 없었다고 한다. 나중에 시간이 흘러 경영정보학부의 교수로 재직하게 되었고 이 이야기를 꺼내며 회계학과, 정보관리학과, E-business 학부, 전자상거래전공, 빅데이터경영통계전공, 기업경영학부 등 학교 내에서 가장 많이 소속이 바뀐 교수일 것이라는 말을 통해 오랜 시간 국민대학교 경영대학의 일원이었음을 다시금 깨닫게 해주었다. 국민대뿐만 아니라 외대, 동국대, 동아대 등 여러 대학에서 MIS 학과를 설립하는 데 도움을 준 그는 가히 MIS의 산증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MIS의 탄생과 함께한 그. 내년부터 인원이 감축되면서 학부가 축소되는 경영정보학부에 대한 그의 의견이 궁금했다. 경영대학의 교수뿐 아니라 부총장으로 국민대학교의 발전에 기여한 그이기에 이 일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모든 일에 장단점이 있다며 정보기술이 보편화한 현대 사회에 경영정보학부만의 장점이었던 경영과 정보기술의 결합이 더는 장점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을 언급했다. 경영정보학 전문학부(과)가 폐지되는 다른 여러 대학교의 추세에 비해 우리 학교의 경영정보학부는 아직은 경영대학의 학부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특히 정보시스템전공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경영대학 경영정보학부보다는 컴퓨터 전문화가 확실하게 시행되는 소프트웨어 융합대학으로 이전하는 것이 더욱 경쟁력 있을 것이라고 하며 MIS를 처음 설립했을 당시의 취업 상황에 대해 말해주었다. MIS학과가 처음 개설되고 기업들도 MIS에 대해 잘 모르던 시절, 1기 졸업생들이 MIS라는 전공을 살려 취업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 당시 MIS학과는 기업이 입사지원서류에서 학생들에게 요구하는 학과 코드 조차 없는 학과였기 때문이다. 88학번 정도 되어서야 사회에서 경영정보학의 필요성을 알게 되었고, 그에 따라 졸업생들은 취업의 황금기를 누렸다고 한다. 사회의 변화에 발맞추어 학생들이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정보시스템전공이 소프트웨어 융합대학으로 이전하는 것은 긍정적이라는 김은홍 교수의 생각을 들을 수 있었다. 34년, 가장 기억에 남는 변화는 무엇일까? 34년 동안 국민대학교의 경영대학을 보면서 그가 마주한 가장 기억에 남는 변화가 궁금해졌다. 그가 처음 재직을 시작할 때에는 경영대에 재직한 것이 아니다. 경상대 내에 경영, 경제, 무역, 정보관리학과가 있었고 그 안의 교수가 본인을 포함해 14명 정도 있었다. 14명이라는 적은 교수의 부족한 자리를 시간 강사를 사용해 충족해 나갔다. 현재는 경영대학 내 교수만 60명이 넘는다. 이에 김은홍 교수는 정말 크나큰 발전이라며 감탄했다. 이러한 발전의 원인 중 하나를 그는 경영대로서의 독립이라고 꼽는다. 외국 대학이나 다른 대학을 보아도 경영대학이 가장 큰 규모를 유지하고 있다. 국민대학교의 경영대학은 독립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후배 교수들의 부단한 노력으로 경영대학의 독립을 이뤄내었다. 또한, 규모는 크지 않지만, 건물로서의 경영대학이 독립했으며 시설 또한 많이 개선되어 감회가 새롭다고 한다. 그가 처음 부임했을 때 지어진 3호관인 과학관에 이어 성곡도서관 등 여러 건물이 지어진 모든 과정을 본 그에게 경영관으로의 자리를 잡은 경영대학은 격세지감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김은홍 교수, 국민대학교를 변화시키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김은홍 교수는 교수직뿐만 아니라 야간강좌교학처장, 재무조정처장, 기획처장, 대학원장, 부총장 등 교내에서 여러 보직을 맡았다. 특히 그가 2000년부터 4년부터 기획처장을 맡았을 때 우리대학은 많은 변화를 겪었다고 한다. 특히 현재의 종합복지관과 지하주차장을 건설하는 데 김은홍 교수의 손길이 많이 닿았다. 특히 복지관은 그의 생각이 많이 반영된 건물이었다. 예술대학이 생기고 계속해서 늘어나는 학생 수에 비해 캠퍼스가 상당히 부족함을 느낀 그는 공간확충을 위한 방안으로써 평소 외관상 좋지 않다고 느꼈던 기존의 축대와 스탠드를 없애고 그 자리에 복지관을 만드는 것을 제안했다. 복지관을 설립하면서 좁아지게 된 운동장에 체육대학에서 반발하는 등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런 문제들을 해결해 지금의 복지관이 생겼다. 또한 '차없는 캠퍼스'를 꿈꾼 그의 영향으로 아침마다 차로 붐비던 문제를 해결해 준 현재의 지하주차장도 생기게 되었다. 여러 보직을 거치며 대학 운영 전반에 많은 경험을 한 그는 우수한 학생을 받아 더 우수한 학생을 사회에 배출해야 하는 대학의 기본적 사명을 언급하며 우리 학교가 더 많이 알려지고 대학의 기본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지금과 같은 구심점으로 몇 년만 더 노력한다면 경영대만의 색깔을 갖추고 좀 더 발전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누군가 기획을 하는 사람들과 이를 추진하는 사람들, 그에 적극적으로 따라주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아울러 이러한 일을 하기 위해 필요한 재정적 뒷받침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최근 경영대학은 이러한 환경이 어느 정도 갖춰져서 많은 발전을 이룩했지만, 앞으로도 우리가 지속적으로 사람과 돈이라는 발전동력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이 문제는 경영대학뿐만 아니라 대학본부나 정부도 모두 힘을 모으지 않으면 안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도전의 경영대: 그에게 도전이란? 경영대학의 슬로건은 도전인데 이러한 도전과 관련하여 경영대학의 역사 김은홍 교수는 경영대 구성원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은지 들어보았다. 그는 우리대학의 중장기발전계획인 '도전 1010'을 수립하는 데 본인이 많은 이바지를 했다고 언급했다. 그가 도전이라는 것을 강조한 이유는 외부에서 국민대학교 학생들의 도전 정신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꽤 들었기 때문이다. 도전이라는 단어가 언급만 되는 것이 아니라 학교에서도 많은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학생들은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많은 도전이 이루어져야 함을 강조하였다. 그는 실리콘밸리 내에서 구글이라는 회사에 많은 외국인이 지원하지만 유독 한국인 학생이 없음을 언급하며 국민대 학생들은 벽을 느끼지 않고 적극적으로 도전하기 바란다는 말을 전했다. 도전이라는 말을 정말 좋아하는 그는 도전은 준비된 사람들이 하는 것이 도전이며 준비되지 않은 도전은 무모한 것일 뿐이라고 말하면서 국민대학교 학생들의 준비된 도전을 다시 한 번 강조하였다. 대학생, 세가지는 꼭 해야한다 이어서 그는 그가 항상 국민대학교 신입생에게 OT 때마다 해주었던 이야기를 꺼냈다. 대학에서 학생들이 꼭 해야 할 3가지에 대한 것이었다. 첫째로 내가 누군지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다. 내가 누군지에 대해 알고 왜 사는지 한번쯤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두 번째는 내가 죽을 때 어떤 모습으로 죽고 싶은지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다. 마지막 세 번째는 내가 그러한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를 생각하는 것이다. 김은홍 교수는 이 이야기가 많은 학생에게 잘 전달이 되어 답을 찾기는 어려워도 사람답게 사는 삶을 영위하길 바라는 마음을 표했다. 김은홍 교수가 바라는 경영대학은… 오랜 시간 경영대학과 함께한 김은홍 교수 그가 바라는 경영대학의 모습은 다음과 같다. 대부분의 대학의 경영대학이라고 하면 그 대학의 간판처럼 느껴진다. 예산 자체는 공대나 다른 단과대가 더 클 수도 있지만 경영대학의 상징성은 아주 크다. 우리 학교의 경영대학은 다른 학교에 비해 작은 편인데 이에 대한 해결책이 필요하다. 경영관으로서 위상을 가질 수 있는 건물과 시설의 개선과 확충이 필요하고 더 많은 좋은 인재들이 경영대학의 구성원이 되어 큰 발전을 이룩해 학교의 간판 대학으로서의 성장을 바란다. 그는 현재 국민대의 발전에 기여하는 많은 사람들이 경영대 출신임을 강조하며 이러한 인재들이 충원이 계속되고 사회에 나가서도 학교를 위해 힘써주는 선순환이 이루어지는 그의 바람 또한 알 수 있었다. 경영대학을 넘어 국민대학교의 발전으로 김은홍 교수와의 만남을 마무리하며 그의 개인적인 꿈에 관해서 물었다. 정년이 4년 반 정도 남은 그는 경영대학을 넘어 국민대학교의 발전을 보고 싶다는 말을 했다. 30년 이상 국민대에 몸을 담고 발전을 위해 노력한 그는 '도전 1010', 10년 안에 국내 10위권 대학으로 발전하자는 그 목표의 실현을 꿈꾼다고 말했다. 매년 앞으로 10년이라고 말하지만, 말뿐이 아니라 계속해 더 노력하여 지금의 국민대가 현재보다 더 높은 위치에 서 있을 수 있길 바란다고 전했다. 더불어 앞서 말한 죽을 때 어떤 모습으로 죽고 싶으냐는 물음에 누군가가 한 답변이 상당히 공감된 것이 있다고 한다. 태어날 때는 그 혼자 울고 주변의 다른 사람들은 모두 즐거워했지만, 죽을 때는 그 반대로 주변 사람들은 모두 슬퍼하는 가운데 혼자 미소를 지을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고 하였다. 사회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좋은 추억으로 남는 사람이 되어 삶의 마지막에서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사람. 김은홍 교수의 뜻 깊은 꿈이었다. ▲"사회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좋은 추억으로 남는 사람이 되어 삶의 마지막에서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죠." 김은홍 교수와의 만남은 이렇게 끝이 났다. 국민대학교의 역사. 연혁으로 보았을 때에는 피부에 와 닿지 않던 그 변화들이 김은홍 교수의 이야기를 통해 눈앞에 그려지는 시간이었다. 발전에는 수많은 변화가 있다. 그 변화는 긍정적일 수도 부정적일 수도 있지만 수많은 사건을 함께한 김은홍 교수의 국민대학교에 대한 애정은 변화를 겪어감에 따라 더욱더 깊어졌을 것이다. 그와 이야기를 나눈 시간은 국민대의 발전을 누구보다 바라고 누구보다 힘써준 사람임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국민대학교 학우들이 그의 이야기를 통해 현재 내가 서 있는 이 국민대학교가 쉽게 또한 혼자서 이뤄진 것이 아님을 알고 현재의 국민대를 위해 노력한 이들의 발자취를 좇아 사회로 진출해 더욱더 큰 국민대학교로의 발전에 기여하는 자랑스러운 동문이 된다면 김은홍 교수가 바라는 도전 1010의 꿈이 실현되기까지 더 많은 시간을 단축할 수 있을 것이다. 기자 민지현 (15) 촬영 이나윤 (14) 디자인 주예나 (15) BizOn Online Newsletter Vol. 28 (20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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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FA + CPA = SOPA, 회계사가 되고 싶어요! 파이낸스·회계학부 학회 'SOFA'를 위한 이준성 공인회계사의 특별 강의 16학년도에 새로 신설된 파이낸스·회계학부 대부분의 학생들은 회계사를 목표로 하는 학과이다. 그렇기에 학생들은 회계사, 회계업무 등에 대한 관심이 많다. 하지만 재학한지 1년 채 되지 않은 학생들에게는 회계에 대한 궁금증이 풀리는 않는 점이 분명히 존재했다. 그래서 바로 파이낸스회계학부의 학회인 SOFA가 16학번 회계 꿈나무들의 길을 밝혀주기 위해 회계사분을 초청해 강의를 개최했다. 이름하야 SOFA(학회) + CPA(공인회계사) = ‘SOPA’이다! 파이낸스·회계학 강의할 회계사는 SOFA의 지도교수인 홍지윤 교수와 함께 자리를 방문했다. 베일에 싸였던 회계사는 바로 이재경 교수의 제자이자 홍지윤 교수의 제자였던 이준성 동문으로 밝혀졌다. 그는 "국민대학교의 회계사를 꿈꾸는 후배들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왔다."며 자원봉사 차원으로 자리에 참석했다고 밝혔다. ▲이준성 동문이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이준성 동문은 ‘회계란 무엇이냐?’라는 질문을 시작으로 강의를 시작했다. 이어 자신이 회계사가 되었던 과정들을 말하는 것으로 전반적인 강의가 이루어졌다. 그 과정들은 굉장히 다사다난했지만, 유머러스하게 풀어나갔다. 이준성 동문은 "자신이 이 자리에 서서 강의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학생들이 나를 대단한 사람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자신은 대학생 때 공부를 거의 안 했던 평범한 학생에 불과했다."고 말하며 본격적인 스토리를 풀어나갔다. 그는 신입생 당시 2.5 정도의, 상대적으로 낮은 학점을 보유한 학생에 불과했다며 스스로를 설명했다. 그는 군대 제대 후, 진로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거듭하던 중에 홍지윤 교수의 '재무회계'를 수강하게 됐고, 'A+'라는 높은 성적을 받으며 회계가 본인의 진로임을 확신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이준성 동문이 본격적인 회계 공부를 시작한 것은 25살 때였다. 학교에 다니며 1년 동안 회계 강의를 섭렵했고, 26살이 되던 이듬해, 공부를 위한 1년간의 휴학을 결정했다. 성공이 바로 이어진 것은 아니었다. 자만감, 족발 등의 유혹에 빠져 2차 시험 탈락을 거듭한 그는 결국 '회계사가 내 길이 맞는 걸까'하는 질문까지 스스로 던지는 상태에 이르렀다. 그때 홍지윤 교수를 비롯한 여러 사람의 조언을 통해 제대로 공부를 시작하게 됐고, 29살이 되던 해 1차 시험과 2차 시험 모두 동차 합격하며 공인 회계사 자격을 취득했다. 다사다난했던 본인의 스토리 텔링을 끝낸 이준성 동문은 "이런 나도 회계사가 됐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겁먹지 않고 도전한다면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며 학생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강의를 듣고 있는 학생들 본 강의의 종료 후, 학생들은 평소 마음 속에 쌓아두었던 질문들을 마음껏 쏟아내기 시작했다. 다음은 특강 당시 나왔던 SOFA 학회원들의 질문이다. Q:회계사 업무는 어떤 것이 있나요? A:주된 업무는 회사의 매출금액이 100이라면 회계사가 매출금액이 100이 정확한 정보인지 확인하는 회계 감사의 일을 한다. 또한, 컨설팅, 법인세 관련된 일도 한다. Q:좋은 기업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CPA가 아닌 전산회계 같은 자격증도 따야 나요? A:경험한 바로는 자격증을 딸 필요성은 없다고 본다. Q:BIG4의 회계법인 회사를 가려면 어떤 점이 유리한 요소인가요? A:나이가 가장 중요한 것 같다. 대게 여자는 25~26살, 남자는 27~29살에 많이 뽑힌다. 남자들은 빨리 군대를 다녀온 뒤, 준비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Q:공부는 하루에 몇 시간 하셨나요? A:오전 9시부터 자정까지 했다. 하지만 공부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므로 자신이 맞는 방식으로 하는 것이 가장 좋다. 이준성 동문은 이에 덧붙여 "회계사는 웬만하면 최소 2년 정도 공부를 해야 하므로 처음부터 스퍼트를 올리고 난 뒤 시험에 떨어진다면, 굉장히 지칠 것이다. 자신처럼 1년 정도 학교에 다니면서 회계에 대한 지식에 얕게 공부를 하고 난 뒤, 회계에 대해 깊이 배우면 좋을 것이다."라는 조언을 남겼다. ▲파이낸스·회계학부 SOFA와 이준성 동문 국민대학교 경영대학의 선배가 강의해준 만큼 학생들은 회계에 대한 열정이 돋보였고 굉장히 좋은 분위기로 강의를 끝마쳤다. 작년에 국민대학교에서 회계사에 합격한 인원은 4명밖에 없다고 한다. 다른 대학교보다 합격 숫자가 낮은 것은 사실이나, 앞으로는 회계 꿈나무들이 꿈을 포기하지 않고 달성하여 국민대학교의 경영대학의 이름을 널리 알려주길 바란다. 기자 김재훈 (15) 촬영 최소정 (15) BizOn Online Newsletter Vol. 28 (20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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