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기자의 관심] 파리 올림픽과 정치적 올바름
- 2024-08-26
[기자의 관심] 파리 올림픽과 정치적 올바름
정치적 올바름이란 무엇인가
2024년, 세계인들의 축제인 올림픽이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되었다. 그러나 개회식 도중 연출된 한 장면인, 필리프 카트린의 디오니소스 분장 장면이 기독교의 상징성을 훼손했다는 비판으로 인해 논란이 촉발되었다. 이 장면은 드랙퀸 차림과 더불어 예수를 연상시키는 연출로 기독교 보수주의자들과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에 대한 피로감을 느낀 이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결국 프랑스 가톨릭 주교회는 "그리스도교를 조롱하는 장면"이라며 비판 성명을 발표했다. 논란이 커지자, 개회식 기획 측은 그리스 신화의 디오니소스를 통해 폭력의 부조리함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해명했으며, 예술감독 토마 졸리도 의도된 연출이 아니었다고 밝혔다. 서구 미디어에서는 정치적 올바름을 이유로 실존 인물이나 원작이 분명히 존재했던 캐릭터의 성별을 변경하는 사례가 많아졌고, 이에 항의하는 사람들을 ‘정치적 올바름을 수용하지 못하는 몰지각한 사람’으로 매도하는 사태가 최근 들어 발생해왔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서 파리 올림픽 개회식 논란이 그리스도교까지 정치적 올바름의 대상으로 삼으려 한다는 비판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이에 관해, 우리는 정치적 올바름이 무엇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정치적 올바름은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편견이 섞인 표현을 지양하는 신념이며, 그러한 신념을 바탕으로 추진되는 사회적 운동을 일컫는다.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표현은, 20세기 초 러시아 공산당에 의해 처음 사용되었는데, 당시 공산당의 지침에 부합하지 않는 발언을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다’라고 비판하며 반대파를 숙청할 때 사용하였다. 즉 정치적 올바름은 초기에 공산주의와 같은 극단적 사상에 기반한 용어였으나, 1970년대 이후 정치적 올바름은 미국에서 농담 중 하나로 사용되었다. 당시 미국 대학의 학생이 성차별적 또는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하는 동료를 보면, 문화혁명 시기 홍위병을 따라 하며 "그 발언은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소, 동지!’라고 말을 했다고 한다. 이 시기에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말은 페미니즘과 반인종주의자 내에서 퍼지게 되었다. 나아가 1990년 초반부터 정치적 올바름은, 위에 언급한 소수자와 약자에 대한 차별에 저항하는 사회적 운동의 의미로 발전하게 되었으며 이후 오늘날에는 다문화주의, 여성주의 등 여러 이념을 총칭하는 개념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현재 정치적 올바름의 긍정적인 사례의 대표적인 예로는 ‘날고기를 먹는 사람’이라는 뜻의 에스키모라는 단어가, 야만적인 비하 단어로 여겨져 이누이트라고 바꾸어 부르는 것이 있다. 그러나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경우도 있는데, 대표적인 것으로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둘러싼 논쟁이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최근 개봉한 여러 영화에 여성 출연진을 중심으로 여럿 등장시킨 것이 작품의 완성도를 희생하여 정치적 올바름을 강조했다는 것이다. 이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가 남성 중심적인 영화계에 대한 반론을 제시하는 사람들과 부딪혀 갈등을 일으켰다. 문제는 이 논쟁이 ‘너의 생각은 틀렸고, 매우 몰지각하고 비상식적이다’라고 주장하며 서로를 공격하는 양상을 띠며 흘러갔다는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결국 이 갈등의 근본적인 해결에 대한 논의는 되지 않은 채, 양측이 계속 대립하는 상태에 이르렀다.
필자는 최근 국내외 정치적 올바름이 주제가 되는 담론이, 정치적 올바름의 원래 목적인 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함축한 언어사용과 차별을 철폐하는 운동이 아닌, 자신과 대립하는 진영을 공격하고 매도하는 데에만 급급한 하나의 무기로써 사용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옳고, 너는 잘못됐다.’ 식의 태도는, 건설적인 논의는 커녕 사회의 침묵을 야기시켜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게 만든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여 정치적 올바름이 추구하는 소수자 편견 철폐를 달성하려면, 개인의 의견이 상대방에 의해 공격, 매도당할 걱정이 없는 열린 대화의 장 형성 및 사회적인 분위기가 필요하다. 인간에게 가장 도전적인 일 중 하나인,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하는 것’은 정치적 올바름을 다루는 담론에서 가장 필요한 ‘올바른’ 자세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모두 열린 마음으로 논의에 참여하여 최선의 결과를 추구하는 대화의 장이 열리는 날이 오기를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
기자 정이안(24)
BizOn Online Newsletter Vol.76 (202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