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치열한 머니게임
- 2024-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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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치열한 머니게임
2개월 사이 천장과 바닥을 넘나든 주가… 앞으로의 행보는?
영풍과 고려아연 간 경영권 분쟁이 본격화됐다. 영풍은 1949년 설립된 영풍기업사를 모체로 둔 사업지주회사이다. 영풍기업사를 설립한 고(故) 장병희·최기호 창업주는 1974년, 비철금속 제련 기업 고려아연을 설립한다. 이후 고려아연은 빠르게 성장했으며, 2021년엔 영업이익 1조를 달성한 명실상부 중심 계열사가 됐다. 이후 75년 동안 고려아연은 최씨 일가가, 영풍그룹과 전자 계열사는 장씨 일가가 맡아 경영했다. 하지만 2022년, 영풍과 고려아연 사이 지분 매입 경쟁이 시작되며 갈등에 불이 붙었다. 2년간 충돌을 거듭한 끝에 올해 9월, 분쟁이 본격화됐다. 영풍그룹의 경영권 다툼에 국내 제철, 도서 유통 등 영풍그룹이 발을 걸친 산업계의 분위기도 심상치 않다. 현재 경영경제계의 가장 뜨거운 이슈인 고려아연-영풍 경영권 분쟁, BizOn에서 알아보자.
장씨 일가 vs 최씨 일가, 다툼의 시작
영풍의 장씨 일가와 고려아연의 최씨 일가는 3대에 걸쳐 공동 경영체제를 지속했다. 2대까지는 별문제가 없었지만, 2000년대 들어서 지분 변화가 시작됐다. 영풍은 고려아연의 최대 주주(지분율 27%)가 된 반면, 최씨 일가는 영풍의 개인 지분을 매각했다. 경영인은 최씨 일가지만 실질 소유주는 장씨 일가가 된 것이다. 그러던 2022년, 고려아연의 최윤범 회장이 신사업을 추진하면서 외부자금(현대자동차, 한화, LG화학) 차입했다. ‘무차입 경영’을 원칙으로 둔 영풍 측 장형진 고문은 이를 강하게 반대했으며, 이것이 고려아연과 영풍 간 본격적 다툼의 시작이었다. 서린상사는 장 고문의 아들 장세환 대표가 경영하고, 고려아연이 지분율 66.7%를 보유하되 이사회 비율을 균등하게 맞춘, 영풍그룹 ‘공동 경영’의 상징이었다. 경영권 분쟁 이후, 고려아연은 6월 20일(목) 임시주총을 열어 사내이사를 대대적으로 물갈이했다. 영풍은 연 수백억 이익을 내는 서린상사를 잃었고, 고려아연은 영풍과의 싸움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됐다. 경영권 확보 후 고려아연은 8월 9일(금) 서린상사의 사명을 KZ 트레이딩(KZ Trading)으로 변경했다. KZ는 고려아연의 영문 사명인 'Korea Zinc’의 약자이다.
공개매수 경쟁 붙은 영풍∙MBK파트너스와 고려아연, 결과는?
9월 12일(목) 장형진 영풍그룹 고문은 MBK파트너스와 주주 간 계약을 밝히는 자리에서 “(공동 창업 후) 3세까지 지분이 잘 쪼개지고, 승계된 상태에서 공동 경영을 한다는 건 가능하지도 적절하지도 않다”라며 오랜 공동경영의 마침표를 찍을 것을 밝혔다. 장형진 고문은 또한 이 자리에서 사모펀드인 MBK파트너스와 결탁해 9월 13일(금)부터 10월 4일(금)까지 고려아연에 대한 공개매수를 진행할 것을 공표했다. 공개매수란, 가격과 수량을 공지하고 청약을 받아 장외 불특정 다수에게 주식을 매수해 지분율을 높이는 경영권 확보 방법이다. 업계에 의하면 공개매수 선언 당시 고려아연 최윤범 회장 측이 우호 지분 포함 33.99% 장형진 고문 측이 약 33.13%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다고 한다. 영풍 측이 목표 매수량(14.61%)을 달성할 시 47%를 웃도는 지분율을 확보하는 시나리오였다.
▲영풍과 고려아연 공개매수 타임라인
발표 이튿날, 공개매수가 시작됐다. 초기 영풍·MBK파트너스의 공개매수 가격은 주당 66만 원이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하게 주가가 공개매수 가격을 웃돌았다. 최 회장의 대항공개매수에 대한 주식시장의 기대감 때문이었다. 높은 주가 탓에 매수 성공률이 불투명해지자, 영풍은 주당 75만 원으로 매수가를 한차례 상향 조정했다. 고려아연 역시 대항공개매수에 나섰다. 최 회장은 베인캐피털과 10월 4일(금)부터 23일(수)까지 18.0%의 주식을 매수할 것을 밝혔다. 최초 공개매수 가격은 83만 원이었으나, 영풍·MBK파트너스가 매수가 인상과 기한 연장으로 응수하자 89만 원으로 매수가를 상향 조정했다. 치열한 경쟁 끝에 영풍은 38.47%, 고려아연은 35.4%의 지분율을 확보했다. 양측이 모두 과반의 지분을 차지하지 못했기에, 끝나지 않는 지분 경쟁을 예고했다. 한편, 공개매수 종료 이튿날 주가는 폭등하며 고려아연 주식은 1주 100만 원 이상의 ‘황제주’에 등극했다.
천장 뚫은 주가, 갑작스런 유상증자 발표…부정거래 의혹
이러한 상황 속 지난 10월 30일(수) 고려아연은 약 2조 5000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기습 발표했다. 당시 신주 예상 발행가는 89만 원이던 공개매수가보다 20만 원 이상 낮은 67만 원 수준으로 측정됐다. 그전까지 치솟은 고려아연의 주가는 유상증자 공시 이후 하한가로 직행하여 기존 주주들의 반발이 거세졌다. 또한 유상증자로 마련될 자금 중 90% 이상은 차입금 상환 목적이라고 밝혀, ‘주주 돈으로 경영진이 진 빚을 갚는다’라는 비판을 받게 됐다. 금융당국은 고려아연이 공개 매수 직후 유상증자를 발표한 것에 대해 ‘부정거래의 소지가 있다’라며 적극 개입했다. 고려아연은 전에 실시했던 공개 매수 당시 회사의 재무구조에 변경이 일어나는 구체적 장내 계획을 수립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그러나 해당 공시와 달리 고려아연이 전부터 유상증자를 준비해 왔다면 공개매수 신고서를 허위로 작성하게 된 것이다. 즉, 유상증자 계획을 미리 알고 유상증자를 진행했다면 고려아연은 부정거래의 대상이 된다. 금융감독원의 유상증자 계획 제동과 주주들의 반발로 인해 11월 13일(수)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은 유상증자 계획 철회를 밝혔다. 결국 최 회장은 주주의 우려와 혼란을 헤아리지 못했다며, 고려아연이 불러온 시장 혼란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한 것이다.
고려아연의 유상증자 계획이 성공했다면 의결권 지분 판세가 변화해 우호 지분 3~4%가량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시장 안팎에선 반발이 거셌다. 기존 주주에게 손해를 입힌 채 새로운 주주에게 조달한 자금으로 경영권을 방어하는 듯한 운영 방식은 그 어떤 주주라도 환영할 수 없을 것이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고려아연이 유상증자 계획을 철회했다고 하더라도 기업의 불공정거래와 유상증자 은폐 의혹에 대한 조사와 검사를 중단하진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사회는 전체 주주의 이익을 위해 경영진을 감독하고, 주요 의사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러나 고려아연은 경영권 분쟁에서 지분율 우위를 점하기 위해 주주의 이익에 반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번 사건은 시장의 공정한 경쟁을 통한 성장의 중요성과 기업 내 이사회의 독립성 강화 및 지배구조 개선의 필요성을 다시금 깨닫게 해줬다. 과도한 경영권 분쟁이 소액 주주의 피해로 이어지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지금과 같은 사건이 반복되는 일을 방지해야 한다. 금융감독원 또한 정확한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부정거래에 엄정하게 대응하여 시장의 혼란을 해결해야 할 것이다.
기자 김희서(22), 수습기자 박하은(23)
BizOn Online Newsletter Vol.78 (202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