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가 여전히 기승인 8월 말, 찌는 듯한 날씨에도 안전모와 조끼로 중무장한 사람들이 미래관을 오르내리며 캐비닛만한 장치를 조심스럽게 옮기느라 분주하다. 국민대 캠퍼스에 설치될 5G 특화망의 막바지 공사다. 이미 기지국과 안테나를 곳곳에 설치하고 선도 연결한 터다. 서버실에 네트워크 코어만 들여놓으면 특화망 구성을 위한 하드웨어 작업은 얼추 마무리된다.
네트워크 코어는 곳곳의 기지국과 라디오 유닛을 관리하는 장치다. 5G 특화망 네트워크의 두뇌 역할이다. 여기서 신호의 덩어리인 패킷의 이동을 모니터링하고, 신호의 흐름을 조절하며, 적절한 주파수를 각 신호에 실시간으로 분배한다. 비유하자면 네트워크에 연결된 단말이 소비자와 생산자, 단말과 신호를 주고받는 기지국이 지역 시장이라면 네트워크 코어는 모든 데이터가 오가는 중앙 시장이다.
그처럼 중요한 장비 치고는 생각보다 규모가 작다. 네트워크 스위치와 네트워크 컨트롤러가 전부다. 어딘가 허전한 느낌이 들기까지 하는 텅 빈 랙에 의아해할 즈음, NCCOSS의 5G 특화망 설치를 담당한 삼성SDS의 박현호 수석은 기존 통신망과 비교하면 최근의 5G망은 장비가 크게 간소화됐다고 설명한다.
“예전에는 기지국에서 아날로그 신호를 바로 보내주면 그걸 코어 쪽에서 디지털 신호로 변환하고, 변환된 디지털 신호를 제어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아날로그 신호다 보니 이더넷과 같은 간편한 연결방식을 사용하기도 어려웠고, 별도의 장비도 필요했지요. 지금은 그러한 작업을 기지국에서 통합해서 처리하고 있어서 설치와 관리가 쉬워졌습니다.”
궁금증은 미래관 옥상에 설치된 기지국 장비를 보고서야 풀렸다. 금속 기둥에는 저대역 라디오 유닛(RU)과 함께 콤팩트 매크로 유닛이 설치되어 있다. 소규모 기지국 치고는 비대해 보이는 이 장비에는 이름 그대로 5G 기지국을 구성하는 데 필요한 각종 장비가 ‘콤팩트’하게 모여 있다. 전자기파 신호를 주고받는 무선통신부분(RU)과 이를 디지털 신호로 변화하여 네트워크 코어로 전송하는 디지털 통신 부분(DU), 안테나가 하나로 통합된 장치다. 기능에 비해 크기와 무게가 최소화되어 다양한 장소에 간편하게 설치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종전에는 저대역과 고대역 유닛이 분리되어 있고 이들의 신호를 네트워크 코어로 보내고 나서야 통합 운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기지국에서 두 대역이 독립적으로 운용되면서도 이를 필요에 따라 바로바로 이중 연결하여 동시에 지원할 수 있지요. 덕분에 효율성과 지연율이 크게 개선됐습니다.”
박현호 수석에 따르면 8월 말 기준으로 특화망 구성에 필요한 모든 하드웨어는 설치가 끝났다고 한다. 남은 것은 현장에 맞게 신호 제어를 조절하는 최적화다. 연내 최적화가 마무리되면 캠퍼스 내에서 5G 특화망을 자유롭게 운용할 수 있다고 한다.
5G에 실망하셨다고요? 특화망이 있습니다!
6G가 논의중인 마당에 이제야 5G 특화망을 설치하는 것이 웬 말이냐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통신 시장에서는 5G가 요란하기만 하고 실속은 없었다고 평가하는 사람도 있으니 무리는 아니다. 다만 이는 5G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면이 크다. 한국은 현재 5G 서비스에 4.7GHz와 28GHz 두 가지 주파수 대역을 할당한다. 이 중 회절과 확산이 잘 되는 4.7GHz는 커버리지에, 대역폭이 넓은 28GHz는 속도에 강점이 있다. ‘빠르다’는 대중적 인식에 부합하는 5G는 28GHz 대역인 셈이다.
그런데 28GHz 대역은 직진성이 강해서 장애물에 잘 가로막히고, 신호 감쇄가 커서 먼 거리까지 도달하지 못한다. 이 때문에 복잡한 도심에서 상업용으로 사용하기 어렵다. 신호가 닿지 않는 음영지역을 최소화하려면 5G 신호를 송수신하는 기지국을 촘촘하게 설치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역폭이 큰 만큼 4.7GHz와 같은 저대역폭 신호에 비해 기지국의 대당 가격이 높은 것도 문제다. 이 때문에 현실적으로 상업용 5G 서비스는 커버리지가 넓은 저대역 네트워크가 담당한다. 실제 전국망 서비스의 속도가 5G의 기술적 사양에 미치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처럼 기술적 구현이 아직 어럽다면 5G 본연의 잠재력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그 해답 중 하나가 ‘특화망’이다. 특화망이란 특정 지역이나 시스템에 속한 디바이스의 접속만 허용하고 이들에게 제한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설망을 말한다. 전국망과 달리 대상과 목적이 한정된다는 특징이 있다. 대표적으로 스마트 팩토리 구현을 위한 공장 내 네트워크, 스마트 물류 구현을 위한 단말 네트워크, 스마트 의료를 위한 병원 내 기기의 데이터 공유 및 비대면 협진 서비스 등을 들 수 있다. 국내에서는 ‘이음5G’라는 이름으로 관련 사업이 추진중이다.
특화망은 제한된 영역을 대상으로 하기에 커버리지의 한계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고대역 서비스를 제공한다. 전국망과는 분리되기에 보안성이 높다는 것도 장점이다. 이러한 특성을 살려서 고대역 서비스가 필요한 곳곳에 특화망을 설치하고 이를 전국망과 연계하면 5G 개발 당시 목표한 수준의 통신망을 실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정부도 이에 따라 일반 기업이나 기관도 기간통신사업자로 등록하고 주파수 할당을 받아 자체적인 특화망을 구축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이처럼 5G의 영역이 특화망으로 확대되면서 관련 생태계도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특화망은 좁은 영역의 커버리지를 고려하는 만큼 28GHz 대역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일반적인 전국망에서는 어려운 고대역 어플리케이션에 적합한 환경을 제공한다. 따라서 고기능 네트워크 서비스와 앱 시장이 성장하는 한편, 전국망과는 또 다른 네트워크 전문인력의 수요가 커질 전망이다.
특화망에는 특화망에 적합한 전문가가 있어야
특화망은 4.7GHz와 28GHz, 두 개의 대역으로 구성된다. 앞서 살펴봤듯 28GHz 대역은 벽은 물론, 사람의 몸에도 신호가 가려질 수 있으므로 4.7GHz 대역이 기본적인 무선 컵버리지를 보장한다. 적정한 성능으로 4.7GHz로 통신하다 초고대역 통신이 필요할 경우 28GHz 대역을 핫스팟으로 활용하여 운용하는 식이다. 따라서 5G 특화망 기지국(gNB)은 두 가지 대역을 모두 지원하면서 각 대역의 신호가 적절한 상황에서 서로 매끄럽게 연결되도록 구현해야 한다. 한편으로는 제한된 대상에 대해서만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므로 사용자 인증 및 관리에 대한 배려도 필수적이다.
따라서 특화망을 구축하고 관리하려면 특화망에 적용되는 기지국의 특성, 특화망 내부에서 서로 다른 주파수간의 호환, 특화망과 전국망의 연결과 보안, 사용자 권한 관리에 대한 이해가 꼭 필요하다. 일반적인 네트워크와 마찬가지로 운용과 유지보수를 전담할 인력이 필요한 것은 물론, 서비스의 특성에 따라서는 분산형 서버(MEC)를 관리, 운용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요컨대, 이음5G와 같은 특화망 체계를 구축하려면 특화망에 적합한 맞춤형 인력이 충분히 있어야 한다.
네트워크 전문가를 양성하기는 쉽지 않다. 김병훈 교수는 “네트워크에 대한 이론적인 이해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경험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소프트웨어 분야와 마찬가지로 현실의 네트워크를 운용할 때는 네트워크에 대한 공격이나 어플리케이션 오류에 의한 트래픽 오류, 원인을 특정하기 어려운 하드웨어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별별 상황이 다 일어난다. 상황별로 양태나 원인이 제각각이다 보니 아무리 매뉴얼을 촘촘하게 만든다고 하더라도 현실에서 일어나는 문제에 일일이 대처하려면 현장에서의 경험으로 쌓인 지혜가 필요하다.
문제는 현장 경험을 쌓을 기회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통신망이 수많은 산업과 서비스의 기간망 역할을 하는 만큼 아주 잠깐만 멈추더라도 큰 피해를 입힐 수 있기 때문이다. 김 교수에 따르면 “이러한 제약으로 인해 실제 현장의 인력도 매뉴얼에 정해진 범위 이상으로 손을 댈 수 없게 되어 있다”며 “통신사업자가 새로운 장비를 도입하기 위해 필드테스트를 할 때도 사람이 적은 큰 공원 같은 곳에서 조심스럽게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학생들이 실제 서비스중인 통신장비를 직접 경험할 기회는 매우 드물다.
캠퍼스에서 기술의 현장을 직접 체험한다
NCCOSS의 특화망은 이러한 문제를 보완하고자 계획됐다. 김 교수는 이번에 설치하는 특화망의 가장 중요한 목적 중 하나가 ‘실제 필드를 경험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에 있다고 강조했다. 캠퍼스에서 어플리케이션이나 서비스를 연구 개발하는 데 필요한 핵심 인프라로서 특화망을 설치하기는 했지만, 특화망 장비와 시스템 자체를 학생들이 직접 관리하고 유지보수하면서 얻는 경험이 무척 중요하다는 것이다.
“어려워 보이지만 사실 특화망을 관리하는 것은 윈도우를 익히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관리 터미널에서 실수한다고 한들 대규모 서비스가 아닌 이상 큰 일이 일어나지는 않거든요. 언제든 롤백과 같은 절차를 통해 복구할 수 있도록 설계됐기도 하고요. 무엇이든 실제로 만져보아야 어떻게 작동하는지, 무엇을 손대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혹시라도 실수하거나 ‘사고’를 치더라도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문제해결능력과 임기응변하는 방법을 터득할 수가 있을 테고요.”
국민대 NCCOSS에 설치된 특화망의 차별점이 바로 이 부분에 있다. 이음 5G 사업이 추진되면서 다른 대학교나 기관도 5G 특화망을 많이 설치하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통신사업자가 설치하고 유지보수하는 방식이었다. 특화망 사용자는 제공되는 통신 서비스를 활용하거나 맞춤형 요구사항을 사업자에게 요청하기만 할 뿐이다. 그러나 이번에 설치한 5G 특화망은 설치와 기본 세팅만 사업자가 지원하고 이후의 유지관리는 학교의 몫, 정확히는 교수와 학생의 몫이다.
우려의 목소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교육 현장에서 익혀야 할 기본기와 현장에서 숙지해야 할 업무 경험은 분명 다른 영역이다. 대학의 역할은 연구나 업무 현장에서 문제를 해결하고 지식을 습득할 기본 소양을 갖추게 하는 것이지, 현장에서 활용한 구체적인 기술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다. 기본 소양이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실제 현장의 기술부터 익히면 기술의 원리를 제대로 이해 못한 채 현장에 익숙해져서 상황에 맞게 응용하는 능력을 제대로 습득하지 못할 수도 있다. 현장에 학생들을 너무 빨리 노출시키면 지나친 선행학습과 비슷한 문제를 겪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 교수는 이미 통신기술이 어떤 활동을 하건 반드시 필요한 요소로 자리잡은 만큼, 이론과 실무를 가리지 않고 배워둘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비유하자면 패스부터 태클까지 각종 기술을 익혀야 실전에서 활약할 수 있는데 기초체력 훈련만 반복할 수는 없다는 논리다.
“어떤 개발을 하건 통신을 고려해야 합니다. 신호를 어떻게 주고받을지, 얼마나 많은 대역을 사용할 수 있는지, 통신 주기는 어떻게 할 지 이해하지 않으면 효율적인 개발이 어렵죠. 따라서 배운 만큼 고차원적인 개발을 진행하려면 통신을 속속들이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한편으로 특화망 설비는 학생들에게 강력한 동기부여가 될 수도 있다. 실제로 작동하고 운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다면 마치 현장 실습하듯 수업에서 배운 내용을 실제로 적용해보면서 고도화된 지식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 시스템을 다뤄보는 과정에서 연관된 다른 교과에 필요성을 느끼고 관심사를 확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마치 운전면허를 배우는 사람 앞에 즉시 운전 가능한 차를 가져다 놓듯, 설비 자체가 학생들에게 학업에 대한 욕구를 자극할지도 모른다.
또 다른 장점은 학습하고 연구할 주제에 맞게 다양한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최근 통신 분야의 주요 화두 중 하나는 다양한 기기의 상호운용성을 전제로 한 ‘오픈 RAN(Rdio Access Network)’다. 아직 상용 서비스에 본격적으로 도입되지 않은 요소들이 많은데, 캠퍼스 내 네트워크를 직접 관리하면 학생이 개발한 소프트웨어를 탑재하거나 신규 장비와의 연결성을 고려한 모듈을 추가하는 식으로 네트워크의 기능을 확장할 수 있다.
5G 이후를 내다본 캠퍼스 특화망
문제가 있다면 수명이다. 6G가 논의중인 마당에 5G 설비를 지금 설치한다는 것은 너무 늦지는 않았을까? 김 교수에 따르면 결코 그렇지 않다고 한다. 진정한 의미의 5G는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5G와 6G의 기술적 유사성을 고려하면 현재 구축중인 5G 특화망을 확장성도 충분하다고 볼 수 있다.
“통신기술의 주기가 대략 10년 정도입니다. 2019년쯤 5G망이 본격적으로 설치되기 시작했으니, 아직 신기술이 도입되기까지 5년이라는 시간이 있는 것이지요. 게다가 28GHz에 해당하는 고대역 통신망은 시장에서 제대로 활용된 적이 없습니다. 사실상 향후 7~10년 정도는 5G 전문인력이 수요가 늘어날 것입니다. 게다가 3G에서 4G넘어갈 때와 달리, 5G와 6G는 기술적 기반이 비슷합니다. 지금 설치한 5G 특화망으로 쌓은 지식은 6G가 도입되더라도 충분히 유효하죠. 그래서 NCCOSS에서 배출될 5G에 숙련된 인력은 6G가 도입되더라도 굉장히 쉽게 적응할 수 있습니다. 5G 설비가 확장 가능한 만큼 신기술이 도입되더라도 새로운 장비 모듈을 붙여서 6G 시대에도 지속적으로 대응할 수 있지요.”
물론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아직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이기 때문이다. NCCOSS를 포함한 융합형 캠퍼스가 기존의 대학 교육에 제약받지 않는 새로운 커리큘럼을 만드는 것인 만큼, 5G 특화망을 이용한 교육은 새로운 도전이다.
“망 관리라는 것이 그저 터미널로 오류를 잡고 소프트웨어만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서 조금 걱정스러운 면은 있습니다. 대학교에서 이 정도 규모로 5G 특화망을 설치한 것은 처음이거든요. 그래서 물리적인 설비 관리도 신경써야 하고 컨소시엄에 참여한 5개 학교 학생들이 참여하는 과정에서 보안과 관련된 이슈도 신경쓸 것이 많아요. 서버실 출입과 같은 절차들도 정리해야 하고요. 그 외에도 예상하지 못한 문제들이 많겠죠. 이런 난관을 하나하나 극복하면서 학생들과 함께 매뉴얼도 만들고 프로세스도 정리하다 보면 새로운 혁신의 방향이 보이겠죠. 일단 학교 단위로 사고를 치고 본 건데, 컴퓨터의 역사가 그런 사고뭉치들이 물꼬를 터 온 역사잖아요. 뭐든 시도해야 새로운 것이 나오니까요.”
이번에 운영하는 5G 특화망 교육이 성공적인 모델로 정착되면 다른 학교에서도 관심을 가질 것으로 기대된다. 이음 5G가 확대되고 광대역 통신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수록 5G 전문인력의 수요도 당분간 증가할 터이기 때문이다. 향후 여러 학교가 특화망을 캠퍼스에 설치하는 데 참여하면 경쟁을 통해 자극을 주고받으며 함께 성장하는 토대가 만들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현장 중심의 커리큘럼인 만큼 기업들도 교육 과정에 참여하면서 커리어의 연계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도 기대할 수 있다. 마치 초창기 아르파넷이 그랬던 것처럼, NCCOSS의 5G 특화망이 공학 교육과 연구에 새로운 흐름을 만들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