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소회 : 엄태봉 (도호쿠 대학)
안녕하세요, 국제지역학부(일본학 전공) 00학번 엄태봉입니다. 제가 일본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 교환학생, 유학 등에 대한 경험을 나누고자 하는 마음에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저의 경험담을 읽으면서 일본학과 학생들이 현재의 학교 생활, 그리고 앞으로의 진로 등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작은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1. 일본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 저는 고등학교 2학년 때 J-pop을 들으면서 일본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당시 일본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제2외국어는 중국어를 선택하고 있었으며, 외국 음악은 미국이나 중국 음악을 듣는 정도였습니다. 겨울 내음이 짙어질 즈음 같은 반 친구가 일본 아이돌인 Speed의 노래를 들려줬는데, 가사의 뜻은 전혀 몰랐지만 익숙하지 않은 멜로디에 ‘새롭다’, ‘신선하다’는 느낌이 들었고 그 친구에게 다른 일본 가수들 것도 들려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 후 E.L.T나 B’z 등의 노래를 들으면서, 그리고 지브리 등 일본 애니메이션, 일본 대중문화 관련 서적을 보면서 일본에 더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독학으로 일본어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일본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잠깐 ○발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함). 대입 때는 일본과 관련한 학과가 있는 대학교에 모두 지원을 했고, 국민대학교 국제지역학부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2. 교환학생과 대학원 입학 국제지역학부에 입학을 하여 일본학, 일본어 관련 수업을 중심으로 수업을 듣고, ‘과돌이’ 생활을 하면서 대학 생활을 했습니다(동아리 활동도 하면 좋았을 것을...). 지금은 없지만, ‘단기억학연수’ 프로그램을 통해서 1학년 겨울 방학 때 일본을 처음으로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함께 간 선배 형·누나, 동기들과 일본어 수업도 듣고, 여기저기 놀러 다니면서 즐겁게 첫 해외 경험을 했습니다. 당시 친한 99학번 형이 도야마 대학으로 교환학생을 간다는 얘기를 들었고, ‘일본에서 더 있어 보고 싶다. 교환학생을 통해서 일본에서 살아보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학년 2학기 때 교환학생 시험을 봤는데, 선발되지 않았습니다. 당시에는 히메지독협대학, 도야마 대학 두 학교만 교환학생제도를 체결하고 있었고, 일본어 논술 시험, 면접을 통해 소수의 인원만이 선발되어 교환학생으로 갈 수 있는 경쟁률이 높은 시기였습니다. 이후 휴학을 하면서 공부를 했고 결국 2003년 10월부터 1년간 도야마 대학으로 교환학생을 가게 되었습니다. 일본인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기도 하고, ‘겨울 연가’를 통한 제1차 한류의 수혜(?)도 받는 등 즐거운 생활을 보냈습니다. 이 기간 동안 일본어 능력 향상은 물론이고, 그냥 ‘일본에서 살아보고 싶다’가 아니라 ‘일본에서 공부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에 돌아온 후 학부 졸업을 하고 대학원(국제지역학과)에 진학을 했습니다. 일본학 관련 수업을 들으면서, 학부 조교, 연구소 조교 등의 생활을 하면서 유학을 준비했습니다. 지도 교수는 이원덕 교수님이셨고, 당시 한일 양국의 큰 외교적 이슈였던 일본의 ‘역사 교과서’ 문제를 테마로 석사 논문을 작성했습니다. 그리고 교수님들의 추천으로 도호쿠 대학 법학연구과로 유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3. 유학 2007년 10월부터 연구생-석사 과정-박사 과정을 거치는 기나긴 유학 생활이 시작됩니다. 전공이 정치학이었기 때문에 대부분 정치학, 국제정치학과 관련된 수업을 들었습니다. 교환학생이 아니라 정식 학생으로서 수업을 듣는 것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고생도 많이 했습니다. 특히 많은 양의 원서를 읽어야 했기 때문에 일본어를 그다지 잘하지 못하던 시기에는 많은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힘들었습니다. 레포트 쓰느라 밤을 지샌 날도 많았습니다. 다행히 일본인 친구들이 레포트 작성하는 것 등에서 도움을 주기도 했고(ありがとう!), 시간이 갈수록 원서 읽기에도 적응이 되어 갔습니다. 유학 초기 글로벌 금융 위기가 터지면서 환율이 크게 높아져 사비 유학생들이 큰 경제적인 부담을 안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일본에는 유학생과 관련한 크고 작은 장학금들이 많이 있어서 이러한 장학금의 수혜를 받으면서 유학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박사 과정 때는 일본 국내에서 선발하는 문부성 장학금을 받게 되어 경제적인 어려움 없이 박사 논문 작성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박사 과정 때 큰 위기가 찾아옵니다. 박사 논문 주제가 바뀌기도 하고 지도 교수님이 바뀌기도 하면서 공부를 때려 칠까 하는 시기가 왔습니다. 그 때 ‘지금 돌아가면 뭐 해서 먹고 살아야 하나’, ‘산속 들어가서 머리 깎고 살까’, ‘힘들었지만 여기까지 왔는데 더 버텨보자’, ‘좀 더 버티면 뭐라고 쓸 수 있지 않을까’ 등 자기 걱정과 연민 속에서 심신이 고통스러웠습니다. 다행히 이러한 시기를 버텨내고 ‘한일 회담의 문화재 반환 문제’를 박사 논문 테마로 결정하여 열심히 논문을 작성했습니다. 논문이 잘 써질 때는 여러 장 쓰기도 했는데, 잘 안될 때는 몇 줄 쓰는 게 고작인 날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존버’한 끝에 박사 논문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박사 논문 심사가 끝나고 눈물 콧물 흘리며 엉엉 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4. 마무리 이렇게 기나긴 일본 유학 생활이 마무리 됩니다. 귀국 후에 이원덕 교수님, 최희식 교수님과 함께 연구 활동도 하면서, 현재 대진대학교 국제지역학부(일본학 전공)에서 강의 교수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일본학과 교수님들과 함께 활동할 수 있는 것도, 지금 이렇게 저의 경험담을 쓸 수 있는 것도 지금까지의 제 인생에서 몇몇 계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일본 음악을 들었다는 계기 이후에 ‘일본에 대한 관심→국민대 국제지역학부 입학→단기어학연수→교환학생→대학원→유학’이라는 현재의 제가 존재할 수 있는 여러 계기들이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러한 계기들이 당시에는 몰랐지만 제 인생의 중요한 장면들을 만들어 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일본학과 학생들도 대학생 시절 등 지금까지 몇몇 계기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작은 계기들 하나하나가 미래의 자신을 만들어 나가는 점과 선이 됩니다. 앞으로 우연히 찾아온 계기, 자신이 만든 계기 등 알게 모르게 자신의 앞에 여러 계기들이 놓여질 것입니다. 이러한 계기들을 통해 열심히 살면서, 자신의 미래를 조금씩, 그리고 하나하나씩 성실하게 만들어 나가시기 바랍니다. 먼 훗날 일본학과 학생 시절을 생각하면서 미소 지을 수 있는 그런 대학 생활을 만들어 나가시기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