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Kisang Cho ('00)
조기상 ‘페노메노’ 대표. 24일 오후 서울 원서동 작업실에서 한국 전통 공예 장인들과 협업해 제작한 목기를 들고 있다.
창덕궁 돌담길을 따라 들어선 서울 원서동 골목 2층 사무실 ‘페노메노’. 실내는 크고 작은 ‘아우로이(auroi·아름다운 우리의 것을 아울러 이롭게 한다는 의미)’ 브랜드의 식기들로 가득하다.
연중기획 매력시민 세상을 바꾸는 컬처디자이너
페노메노는 건축·시각디자인·영상 등 분야가 다른 7명의 디자이너가 뭉쳐 만든 회사다. 브랜드 디자인 컨설팅, 공간 설계 등을 한다. 아우로이는 이들이 만든 자체 생활용품 브랜드다. 4년 전부터 전국의 전통 공예 장인들과 협업해 현대 라이프 스타일에 맞게 디자인하고 있다. 조기상(38)씨는 페노메노의 대표이자 아우로이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다.
국민대에서 자동차 등의 운송기기 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2007년 이탈리아 디자인 학교 IED에서 유학하며 요트 디자인을 공부했다. 석사과정을 마치고 이탈리아 내 주문 제작 요트 디자인 회사에 입사했다. 조씨는 세계 요트 디자인대회인 MYDA에서 2008·2009·2010년 연이어 디자인상을 수상했고, 2010년 시상식에선 자신의 우상이자 BMW 전 수석 디자이너였던 크리스 뱅글도 만났다. 그가 조씨에게 물었다. “한국 디자인의 특징은 뭐지?” 조씨는 순간 바로 대답할 수 없었다고 한다. 세계 금융한파로 요트 산업은 타격을 맞았고, 조씨는 뱅글의 질문과 함께 귀국했다. 이후 친구와 함께 디자인 사무실을 내고 시골 농부가 가꾼 사과 브랜딩 작업부터 일을 시작했다.
“한 척에 1000억원짜리 초호화 요트를 디자인하다 한 알의 사과에 목숨 걸게 된 거죠. 하지만 좋았어요. 더 많은 사람이 내 디자인을 즐기게 됐으니까요.” 빙그레 음료 ‘따옴’ 브랜드도 그의 작품이다. 조씨는 뱅글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전국의 전통 공예 장인들을 찾아 나섰다. “미학적·과학적으로 뛰어난 우리 것이 이렇게 많다니, 기뻤지만 또 다른 숙제의 시작이었죠. 그런데 현대인들은 왜 이걸 안 쓸까. 문제를 알아야 해법도 찾을 수 있죠.”
대표적으로 유기그릇은 무겁고, 닦기 힘들고, 크다. 조씨는 이 단점들을 해결한 모던 유기 세트를 만들었다. 겉면에 옻칠가공을 하는 등 새로운 시도도 했다. 전 세계 디자인 전시에서 사랑받는 이 제품은 청와대와 문체부, 여러 기업에서 귀빈 대접할 때 쓴다며 여러 벌씩 사갔다.
“요즘은 저렴한 공산품에 익숙한 소비자와 새로운 기술개발에 관심 없는 장인을 설득해 가격을 낮추는 방법을 찾고 있어요.”
돈은 페노메노 일로 벌고, 아우로이 일은 사명감으로 한다는 조씨는 인터뷰 마지막에서 “공예는 한 번 발들이면 못 빠져 나간다”며 웃었다.
“각기 다른 분야의 장인들을 만나 소재마다 다른 특성과 기술, 역사를 공부하는 재미가 상당한데 아마도 진짜 이유는 사람이겠죠. 공예는 모든 과정을 사람이 주도하기 때문에 소재도 결과물도 아주 따뜻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