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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대학 도자공예전공 박경순 교수 (디자인대학원 세라믹디자인전공 주임교수)가 1월 29일(금) 사단법인 한국현대도예가회(1978년 창립)총회에서 임기 2년(2010~2011) 제3대 이사장(제16대 회장)에 선출되었다. 박경순 교수는 현대 도예의 실험적 장을 연 선두의 도예가 이면서도 작업장을 이천에 마련할 만큼 우리 전통적 도예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많다. 서울미대와 동대학원에서 응용미술을 전공한 박경순 교수는 8회의 개인전을 비롯, 한국현대도예 미국 순회전, 유럽 순회전과 중국, 대만, 이탈리아 초대전, 샌디아고 한국도예초대전, 국내의 KCAF 초대전 등 많은 전시를 가졌다. 현재 국민대학교 도자공예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그는 이탈리아 국립도예대학 연구교수를 역임했고 한국화예디자인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한국기초조형학회회장, 청주공예비엔날레 국제공모전 심사위원, 경기도 도자기 기술개발사업 평가위원, 세계도자기엑스포 한국현대도자전 큐레이터, 한국공예대전 심사위원 등을 역임할 만큼 한국 도예계에서 많은 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대표적 도예가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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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2010-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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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종합복지관 (정문 옆 유리건물) 4층(운동장 옆) : 의무실(무료) 3층 : 자유열람실, 동아리방(학부) 2층 : 디자인도서관, 우리은행, 우체국, 베이커리, 자유열람실 1층 : 매점, 학생식당, 서점, ARI (스파게티, 토스트 배달), 교직원식당(12~1시 이외 이용가능) 지하1층 : 헤어샵/네일샵, 꽃집, 문구잡화, 사진관, 안경점, 아름다운가게, 컴퓨터매장, PC/게임방, 구두수선, 탁구장 (화방 : 조형관 1층 오른쪽) * http://www.kookmin.ac.kr - 기획특집 : 홍보팀 웹기자 이나래 - 2010/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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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리로 빛의 세계 만들어내는 ‘유리작가’/김준용(유리조형디자인) 겸임교수, (공예미술 91) 동문 “나에게 유리는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운 재료” 우리 주변에는 알게 모르게 많은 예술품이 있다. 흔히 그림을 생각하지만 이밖에도 조각, 설치, 사진, 영상, 공예 등 수많은 분야가 있다. 그 중 공예품은 많이 쓰이는 컵이나 밥그릇, 화분병, 도자기처럼 실생활에서 쓸 수 있는 것부터 전시를 위한 감상용까지 다양하다. 국민대학교 조형관 작업실에서 만난 김준용 작가는 “공예는 크게 2가지로 나뉘는데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전시용으로만 쓰이는 것, 그리고 우리가 흔히 인사동 등에서 볼 수 있는 실생활에 쓰이는 것들이 있다. 이들 모두를 공예로 볼 수 있다.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미를 갖고 있느냐 없느냐다. 작가가 만드는 수공예와 공장에서 만드는 대량 생산품은 자유도와 완성도에서 차이가 크다”고 설명했다. 도자기를 전공했지만 유리로 예술작품을 만들어내는 김 작가는 현재 국민대학교 디자인대학원 유리조형과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사실 김 작가는 교수 외에 공예가, 가마 제작, 유리 야외 조형물 제작 등 6개의 직업을 갖고 있다. “사실 유리를 하고 싶어 국민대에 입학했는데 당시 유리 전공 관련학과가 없어 도자기를 전공했다. 미국으로 유학을 가면서 로체스터공과대학교에서 유리를 전공했다”고 말했다. 도자기와 유리는 만드는 방법부터 다르다. 손으로 만드는 도자기와 달리 유리는 뜨겁기 때문에 도구를 이용한다. 처음에는 이런 도구가 상당히 어색하고 배우기 쉽지 않았다고 한다. 졸업 후 김 작가는 현지에서 1년여를 스튜디오에서 블로잉(Blowing·입으로 부는 작업) 어시스턴트로 일하며 많은 경험을 했다. 이후 한국에 돌아와 국민대 강의를 하면서 경기도 벽제에 ‘준 글라스 스튜디오’를 열었다. 스튜디오에서는 주로 작품 활동과 생산을 한다. 그릇과 화분 같은 공예품을 만들어 카페나 음식점 등에 납품 했었는데 현재는 작가들이 입주해 작업하는 공간으로,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김 작가가 유리공예를 시작한 계기는 특별하다. “고교 시절 대학 전공을 고민 중에 문득 초등학교 때 TV에서 유리 장인이 나와 유리 공예를 만들던 모습이 떠올랐다. 당시 가마 속 노란빛이 퍼져 나오던 모습, 그리고 유리 장인이 블로잉 작업을 하면서 모양이 만들어지는 장면이 너무 생생하게 기억났다. 나에게 유리는 차갑고 날카로운 느낌보다 뜨겁고 말랑하며 부드러운 이미지였고, 보석처럼 섬세하면서 신비한 세계가 있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외국에서 혼자 공부하려니 모든 게 어렵더라. 나는 벽을 만들지 않았는데 주변에 벽이 있더라. 누구에게나 벽이 있지만 벽두께는 다르다.” 김 작가는 유리의 블로잉 기법을 통해 작품을 만든다. 주된 주제는 ‘고립’이다. 이 주제는 유학생활에서 느낀 외로움과 경험이 토대가 됐다. 그는 “타지에서 혼자 작업하려니 재료를 구하는 것부터 어려움을 겪었다. 이 과정에서 ‘나는 벽을 만들지 않았지만 내 주위에 벽이 있다’고 느꼈다”며 “다시 설명하자면 나도 그 사람을 모르는데 그 사람이 나를 알겠는가. 누구나 벽을 갖고 있으며 다만 그 벽의 두께가 다를 뿐”이라고 말했다. 도자기를 전공한 탓인지 김 작가는 유리 같지 않은 유리 제품을 많이 만들었다. 도자기나 금속 같이 보이는 작품들이다. 잠시 ‘외도(外道)’를 한 적도 있다. 김 작가는 보통 유리 같은 유리, 즉 투명한 작품을 만드는데 한때는 꽃을 페인팅한 작품으로 전통적인 유리 기법은 따랐지만 색을 칠한 게 아니라 홈을 파놓고 에폭시(epoxy=열경화성 플라스틱의 하나로 빨리 굳으며 접착력이 강하다)를 부어 질감을 두께로 나타낸 작업이었다. 이는 꽃잎을 유리 안에 가둬놓고 싶다는 그의 독특한 발상에서 시작됐다. 이렇게 하면 조명을 비췄을 때 빛이 투과되면서 뒤에 또 다른 형상이 나타나 그림을 만들어낸다. “조명이 유리에 큰 영향을 미치는데 유리는 빛과 함께 또 다른 모습을 보인다. 유리는 맑고 투명하지만 또 다른 면은 어둡게 보이기 때문”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요즘은 예전과 달리 유리공예 작품의 국내 판매도 많이 이뤄진다고 말하는 김 작가는 “미술이 조금씩 대중화가 되면서 공예도 따라가고 있다. 하지만 유리공예는 녹이는 비용 등 제반비용이 만만치 않아 가격이 비싸다”고 설명했다. 일반적인 공예품과 달리 유리 제품은 고가라서 대중화되기 쉽지 않다는 얘기였다. 작품 자체도 쉽게 나오지 않아 소량 위주의 작업을 하기에 공급이 수요를 따르지 못해 희소성 또한 크다. 유리는 깨지기 쉽다고 생각하지만 도자기보다 강도는 더 세다고 그는 설명했다. 다만 유리는 깨지면 파편이 작고 넓게 퍼져 다칠 위험성이 더 크다. 김 작가는 2001년 처음으로 개인전을 가졌으며 2004년 이후 2년마다 전시를 연다. 올해가 2년이 되는 해로, 11월쯤 개인전을 가질 예정이다. “2009년은 2010년을 위한 준비 기간이었다. 이제 준비했던 일을 실행에 옮기는 시간으로 개인전 및 작품 준비를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김 작가는 현재 유리 작업을 하는 작가들의 작업 공간이 턱없이 부족함을 아쉬워했다. “국내에 유리 관련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없다. 때문에 포기하는 작가들이 많은데 이런 공간이 많아지면 더욱 활성화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아직은 작은 공간이지만 작가들이 자기 것을 찾아갈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말하는 김 작가에게서 유리공예의 희망을 볼 수 있었다. 원문보기 : http://weekly2.cnbnews.com/category/read.html?bcode=4130 출처 : CNB저널 기사입력:2010-02-08 11:2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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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업디자이너 400명을 대상으로한 국내 취업 포털기관 커리어닷컴의 2009년 상반기 자료조사에 따르면, 60.7%가 대학원 진학을 희망한다고 밝혔으며 그 수는 점점 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처럼 대학원 진학에 대한 디자이너들의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국민대학교 디자인대학원의 특별한 교육이 주목을 받고 있다. 이미 사회적으로 입지를 굳히고 자신의 역량을 한껏 발휘하고 있는 디자이너들이 이곳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실무 중심으로만 치우친 한계를 극복하고, 최신 트렌드를 적용한 이론과 실무 양쪽을 병행하여 새로운 활력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준수 국민대학교 디자인대학원 영상디자인학과 교수는 “국민대학교 디자인 대학원은 실무 경험이 풍부한 학생들을 위해 높은 수준의 맞춤형 커리큘럼을 제공한다” 며, “세분화된 맞춤형 전공을 제안하여 과목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학생들이 원하는 분야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다양한 교육 여건을 마련하고 있다” 고 했다. 이미 현업 디자이너들 사이에서 우수한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국민대학교 디자인 대학원의 교육과정은 실무에서 축적한 다양한 경험을 이용하여 더욱 적극적이고 체계적인 이론을 정립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국민대 디자인 대학원은 단순한 특수대학원이 아니라 독창적인 창작과 현장 중심의 감각을 갖춘 전문가들이 움직이는 맞춤형 엘리트 교육기관이라고 할 수 있다. 국민대학교 디자인 대학원만의 차별화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첫째, 각 분야별 전문성을 갖춘 전공 과목과 교수진을 통해 실험적이며 혁신적인 디자인을 접할 수 있다는 점이다. 새롭게 신설된 일러스트레이션 디자인학과와 패션 머천다이징 디자인학과를 비롯해 실내설계, 제품, 운송레저, 세라믹, 주얼리, 의상, 유리조형, 시각, 사진영상, 환경, 그린, 패션 모델리즘, 가구, 애니메이션, 전시 디자인 등 17개 전공 과목은 글로벌 리더로서의 전문성과 디자인 분야별로 심도 깊은 이해를 교육한다. 특히 최근 떠오르고 있는 친환경을 디자인에 접목한 그린 디자인학과는 국내 최초로 설립되어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둘째, 다양한 부설기관과의 긴밀한 연계 교육이다. 대학로에 위치한 제로원디자인센터와 UIT디자인센터, 교과부 선정 중점 연구소인 동양문화디자인연구소 등과의 다양한 연계 교육으로 시너지를 내고 있다. 이를 통해 학생들은 졸업 후에도 다양한 사회적 지식과 인맥을 구축하게 된다. 그 결과 국민대학교 디자인 대학원 출신 학생들이 최근 디자인계에서 두각을 드러내고있다. ‘2008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을 수상한 주얼리 디자인 전공의 박은선과 ‘제27회 대한민국 공익광고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한 그린 디자인전공의 이준서, 이명우 등을 비롯해 레드돗, iF, IDEA 등 세계 3대 디자인 어워드에서도 꾸준히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02-910-4413, designgds.kookmin.ac.kr 글:정은진 1.종이 한 장이 아닙니다. 디자인 : 이준서, 이명우(그린 디자인 전공) 제27회 대한민국 공익광고대상 대상 수상작. 종이 끝이 살짝 말린 깨끗한 한 장의 종이 위에 ‘종이 한 장이 아닙니다’라는 간결한 카피로 절제되면서도 깔끔하게 이면지 재활용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2. 제로원디자인센터 대학로에 위치한 디자인 전문 공간. 제로원디자인센터에서는 다양한 강좌와 세계적인 디자이너들의 전시를 비롯한 다양한 워크숍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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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2009-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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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2009-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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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디자인올림픽 2009] 세계로 나아갈 한국의 식문화 디자인 한식을 세계화하기 위해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기 위한 메뉴 개발이 한창이다. 과연 메뉴만 개발한다고 ‘세계화’의 목표를 이룰 수 있을까? 정성스러운 음식을 담을 그릇도 달라진다면 좀 더 빨리 목표에 도달할지 모른다. 조선 백자의 소박함, 형태의 아름다움을 보여준 조리대부터 갖가지 그릇, 부서지기 쉬운 두부를 먹기 편하게 디자인한 젓가락까지 한식의 세계화를 위해 든든한 지원군이 된 디자인을 전에서 만났다. 서울디자인올림픽 2009 (위) OD 칠기 쟁반과 접시 디자인: 최경란, 제작: 한국도자기 그릇에 담기는 내용에 따라 용도가 달라지는 다양한 크기의 칠기 쟁반과 접시로 이루어진 세트. 음식을 담으면 접시가 되고, 잔이나 컵을 얹으면 받침이 되는 다기능 그릇은 한식과 양식 모두에 잘 어울린다. (아래1) OD 조약돌 양념 용기 디자인: 최경란, 제작: 한국도자기 시냇가에서 볼 수 있는 동그란 모양의 조약돌은 모난 데가 없어 손으로 잡았을 때 느낌이 좋다. 그런 느낌을 그대로 옮겨 양념 용기를 만들었다. 불필요한 요소는 다 없애고 단순한 형태만 남겼다. (아래2) OD 쟁반 디자인: 동양문화디자인연구소, 제작: 벤텍 벤트우드 기법으로 제작해 모서리가 완만한 곡선을 이룬 쟁반. INTERVIEW | 최경란 동양문화디자인연구소 소장, 기획 “우리의 전통 문화를 재해석해 OD라는 브랜드로 개발했다” 이번 전시의 최종 목표는 한중일을 중심으로 동양 문화의 디자인 자산을 세계적인 브랜드로 만드는 것이었다. 거실, 침실, 부엌 같은 일상적인 공간에 각국의 대표적인 디자이너들이 재해석한 디자인 제품을 함께 선보여 관람객이 체험을 통해 동양 문화의 디자인 가치를 느낄 수 있도록 했다. 특히 한국의 디자인은 동양문화디자인연구소가 주방과 욕실 제품, 온돌 문화를 적용한 평상, 우리의 식문화에 알맞은 식기 등을 개발했으며, 자체 개발한 신소재를 적용해 OD(Oriental Design)라는 브랜드로 만들었다. OD 제품은 한국도자기, 벤텍, 장수돌침대, LG하우시스에서 양산할 예정이다. 전시를 통해 ‘전통의 현대화’라는 막연하고 어려운 과제를 어떻게 디자인으로 해결했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프로필 국민대학교 실내디자인학과 교수이자 동양문화디자인연구소(OCD: Oriental Culture & Design) 소장. 동양 문화와 디자인의 관계를 기반으로 한 연구를 하고 있으며 <한중일 생활 문화, 일상생활 에서의 休>전을 기획・진행했다. 기자/에디터 : 글: 전은경 기자, 김영우 인턴 기자 / 사진 : 이재희 [출처] 월간디자인 (2009년 11월호) (원문보기) http://www.design.co.kr/section/news_detail.html?info_id=49737&category=000000060003&pageno=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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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2009-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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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하는 디자이너, 김개천 세계 3대 디자인상 중에 하나인 ‘2009 레드돗 디자인 어워드’에서 국내 건축물 하나가 수상했다. 삼성이나 LG 같은 대기업이나 중소업체가 주로 받는 이 어워드에 단일 건축물이 선정된 건 세계 최초다. 그만큼 이 건물의 디자인적인 가치가 높았다는 뜻이다. 이 건물을 디자인한 사람은 국민대학교 김개천 교수다. 그는 고대 그리스부터 프랑스 현대까지 사상의 세계지도를 펼쳐놓고 떠도는 걸 즐긴다. 그리고 이 유목적인 사유가 그에게 아직도 망치를 들게 하는 힘이다. 그는 자신의 디자인 세계를 계속 깨부수고 새로운 걸 보여주는 걸 주저하지 않는다. profile 국민대학교 조형대학 실내디자인학과 부교수이자 현재 한국실내건축가협회(KOSID) 회장이다. 동국대 선학과에서 선의 조형사상을 전공했다. 젊은 시절에 중동, 알래스카, 샌프란시스코, LA 등지에서 실무를 익혔다. 동양적인 조형사상과 현대적인 디자인에 관한 연구를 바탕으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같은 저술 활동에도 열심이다. 대표작은 . 건축물로는 이례적으로 2009 레드돗 디자인 어워드에서 수상했다. 이름 이야기를 안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본명이신데요. 이름이 독특해서 득을 보신 적도 많으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릴 때 체격이 크다 보니 대놓고는 못 놀렸어요. 제가 있을 때는‘개천에서 용 났다’는 이야기를 더 들었고, 제가 없을 때는 ‘또랑’이라고 놀렸지요. 많이 배운 사람들은 보통 제 이름을 얘기하면 이름 좋다고 하고, 적게 배우신 분들은 웃기부터 하죠. 건축학과를 졸업하셨지만 대학원은 선학으로 철학박사를 수료 중이십니다. 디자이너가 아니라 스님이 되어야겠다는 생각까지 했을 정도로 고민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는데요. 어릴 때 꿈은 신부님이었고, 커서는 스님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했죠. 종교적으로 소양이 조금 있지 않았나 싶어요. 그래도 디자이너로서의 성향이 더 강했기에 결국 디자이너가 됐을 겁니다. 어렸을 때 기억을 되돌려보면 세상에 대해 유난히 의심이 많아 답이 나올 때까지 되묻기도 했어요. 제게 철학이라는 것은 사유를 하기 위한 바탕으로, 기존의 진리가 언제나 진리가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적 상상력이 요구되고 이런 것들이 제 디자인의 원천으로 쓰이고 있죠. 특별히 불교에 심취하신 계기는 무엇입니까? 젊었을 때 해외의 이곳 저곳에서 일하면서 한국적인 것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어요. 고건축의 사상을 공부하고부터 한국의 철학을 이해하지 못하고는 한국의 건축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우리 철학을 크게 나누면 불교와 유교로 나눌 수 있습니다. 불교는 1000년을 이어 내려왔고, 이후 500년의 유교적 전통이 계승되었습니다. 저는 그 근본이 되는 불교를 우선 전공해서 알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불교 신자이기도 하십니까? 법명과 호도 가지고 계신 걸로 아는데요. 불교 신자이지요. 그러나 믿는 사람보다는 종교적인 사람이 되고자 합니다. 법명은 ‘석천(石千)’이라고 한 스님께서 천 개의 좋은 작품을 만들라고 지어주셨어요. 아직 호를 가질 만한 인물은 아니라고 생각해 호를 갖고 있지는 않습니다. 대신 별명으로 제가 ‘천삼(川三)’이라고 지은 게 있어요. ‘천삼’이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지요? 좋은 호는 잘 모르는 상태입니다. 뜻이 없어서 알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뜻은 있으나 그 뜻은 드러내지 않아야 합니다. 그 뜻을 알 수 없는 형태여야지요. 동양 철학을 공부한 것이 디자인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궁금합니다. 답하기 쉽지 않은 질문이네요. 동양 철학은 인간과 세계 그리고 우주가 완전히 조화를 이루는 것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거기에 어떤 형식이 있기보다는 계속 변하는 완전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유가가 인위적인 형식으로 완전한 세계를 만들려 했다면, 도가는 무위적인 방법으로 그런 것을 지향했습니다. 저는 제 삶과 작품을 총괄하면서 동시에 거대하고 미세한 영감을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장자의 첫 대목에 대붕(큰 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대붕은 바람이 불면 북해에서 날아올라 남해까지 날갯짓 한 번으로 9만 리 높이에 이르는 새를 말하는데, 그것이 가장 먼저 등장하는 이유는 장자가 대붕과 같은 대인이 되고 싶었던 생각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해와 달을 어깨에 나란히 하고 우주 만물을 겨드랑이에 껴서 그 모든 것들과 대응하고 수락하지 않는 것이 없다는 듯 무엇에도 의지하지 않는 삶의 자세를 추구하고자 하는 겁니다. 자유로운 삶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흔히 ‘동양의 도는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하는데, 어떤 철학이든 개념화할 수 없는 철학은 없습니다. 인간이 만든 것이기 때문이지요. 고객과도 이런 철학적인 대화를 나누시나요? 강하미술관을 의뢰하신 분은 제 가장 오래된 고객입니다. 그분은 저와 대화하는 걸 즐거워합니다. 저 역시 모든 걸 다 알고 있는 게 아니기에 대화를 많이 하려고 해요. 고객의 이야기를 듣고 최대한 고객이 원하는 걸 들어주고자 합니다. 또한 내 디자인을 설득시키려고 노력하죠. 서로 이해할 수 없었던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고객과 대화가 안 통한다고 하는 건 그를 설득시킬 능력이 없고 작품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이에요. 근본적인 책임은 디자이너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1, 2 강원도 인제군에 있는 만해마을은 만해 한용운의 삶과 사상을 체험할 수 있다. 만해 문학박물관, 만해촌, 만해학교, 심우장 건물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 마을이다. 사진은 만해사 내부와 외부 모습이다. 만해사의 콘셉트는 ‘허공에 그은 일획’. 이를 필로티 구조로 허공에 떠 있는 모습으로 표현했다. 법당 내부에는 공간을 나누는 물리적인 벽이 없다. 공간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장치인 기둥과 창문만 있다. 3, 4 이도건축 시절에 지은 담양 정토사 무량수전. 평범하고 단순한 형태로 비어 있다. 엄격하게 질서정연한 대칭 구조다. 평면으로 보면 점인 기둥만 남는다. 무한한 공간을 담아내고 싶었던 그는 인위적으로 규정된 조형을 만들지 않으려 했다. 이 공간의 키워드는 ‘비어 있음도 비움(空空)으로 일체와 함께 자유자재하다’. 고객이 원하는 것을 들어준다는 말이 조금 의외로 들립니다. 무조건 들어주기보다는 들어주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것을 원하는 데는 어떤 이유가 있기 때문이에요. 원하는 ‘이유’를 해결해주려고 합니다. 최근에 부산에 아파트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저의 설계도를 받아 보니 기존의 아파트와 너무 달라서 당황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내려가 “기존 아파트가 인간을 행복하게 했는지 의문이다. 호텔 같은 아파트를 지었으나 정작 살아보면 오히려 제한적이다. 기존의 아파트가 만들어진 집이라면 내가 하려는 것은 만들 수 있는 집이다. 이 집은 사람들에게 주어진 삶을 강요하기보다는 다른 것을 쳐다볼 수 있는 형식을 제공할 것이다”라고 말했어요. 벽이 없는 집이죠. 심지어 거실에서 안방이 들여다 보이기도 합니다. 저는 한정적인 것은 아름답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랑을 할 때도 누가 나에게 이만큼 해주니까 나는 너를 사랑한다고 말한다면 아름답지 못한 거지요. 무조건적인 사랑에 감동하듯이 좋은 디자인은 그렇게 모든 것에 헌신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제한적이라는 것은 이 범위 안에서만 아름답다는 것인데, 엄밀한 의미에서 범위를 가진다는 것은 아름답지 않습니다. 만들 수 있는 집이라는 건 사는 사람이 원하는 대로 계속 변형할 수 있는 형식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도건축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처음에 졸업하고 건설회사에 다녔어요. 중동, 알래스카, 샌프란시스코, LA 이런 곳에 있었죠. 지오 폰티, SOM, MK 이런 국제적인 회사의 파트너였던 미국 회사에도 있었습니다. 그들이 디자인한 걸 내가 도면으로 그리고 시공을 했죠. 해외에서 실무를 익혔습니다. 그리고 국내에 들어와 세 사람이 모여 3D라는 회사를 차렸어요. 1993년에 개인적으로 독립했는데, 그게 이도건축입니다. 이도건축이 잘나갔잖아요. 그때 하신 작업 중에 대표작은 무엇이 있나요? 잘 나갔던 적이 없어서…(웃음). 꾸준히 작업을 했고, 그런 것이 쌓여서 조금씩 알려지게 된 겁니다. 이도건축에서만 300개 정도의 작업을 한 것 같네요. 한 달에 1~2개씩, 10년이면 300개가 되잖아요. 제가 일을 시작한 지 20년인데, 학교에 들어오면서 작업을 많이 줄였어요. 특별히 대표작이라고 할 만한 것은 없고 총 400여 작품을 했는데 숫자만 많네요 그때 돈을 많이 버셨을 것 같은데요. 돈을 많이 벌었죠. 그러다 IMF 때 부도를 맞았어요. 뉴코아, 해태 그런 곳에서 돈을 못 받았습니다. 그때 제가 가진 걸 거의 다 팔아서 몇 십억이나 되는 걸 다 갚았죠. 그 시기를 전후해서 학교로 오게 되었습니다. 학자와 작가가 함께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학교 내에서 대학원 학생과 연구원들과 함께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게 교수님 잘못이 아니라 사회가 그렇게 만든 건데, 당시 심정이 어떠셨나요? 어떤 면에서는 행복하기도 했어요. 어머님은 걱정을 많이 하셨지만. 40~50억 부도를 맞았으니까요. 솔직히 말하면 편안하기도 했어요. 부도로 가진 즐거움, 가지지 못한 즐거움을 다 누려보았으니까요. ‘만해마을’ ‘담양 정토사’ ‘강하미술관’ 등의 예전 작품을 보면 종교적인 색채가 강하게 느껴집니다. 일각에서는 교수님을 ‘선의 공간’을 만드는 디자이너라 평하기도 했는데요. 한때 ‘선의 공간’에 심취했던 게 사실이에요. ‘선의 공간’이라는 건 규정지을 수 없는 거예요. 최근의 제 작품에선 선보다는 욕망이나 상업적인 것에 관심이 더 많습니다. 인간의 의지나 욕망이 드러나는 것으로부터 떨어져 있으려 했는데, 요즘은 그런 욕망도 포용하려 합니다. 상업적인 욕망까지 모든 것을 다 담고 싶어요. 다 담으면서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는 모습, 그런 삶과 디자인을 원합니다. 그게 또 선이라고 할 수도 있죠. 지금은 굳이 선이라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선에 대한 관심이 없어서 안 쓰는 게 아니라 선에 대한 해석이 달라졌다고나 할까요? ‘선의 공간’의 특징은 어떤 것이 있나요? ‘선(禪)’이라는 단어를 그대로 설명하면, 볼 ‘시(示)’에 단순한 ‘단(單)’자를 써요. 단순하게 보는 거죠. 이건 절제보다는 모든 것이면서도 아무것도 없는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가 선이죠. 무리를 지어 어디를 가면 ‘난 싫어’라고 말하는 사람이 꼭 있는 반면 자신의 의견이 없는 사람도 있죠. 묵묵하지만 억지로 따라가는 게 아니라 즐겁게 동참하는 사람이죠. TV를 보면 지적인 사람들은 자기 의지가 강하고 의견을 분명히 개진합니다. 그러나 동양에서 지적인 사람이라는 건 오히려 자기의 세계를 가지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자기 세계를 갖고 있지 않아서 모든 걸 포용할 수 있는 사람을 지적이라고 생각했어요. 최근 작품을 보면 예전과 다른 변화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화려해졌죠. 예전에는 말없는 형식에 관심이 많았다면, 지금은 화려한 형식에 관심이 많습니다. 눈으로 보는 화려함이 아니라 체감되는 화려함이요. 강물에 햇빛이 비치면 반짝이는 표면이 굉장히 화려하지 않나요? 막상 물은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지만 자기도 모르는 새 그 화려함을 온몸으로 스며들게 합니다. 동양인은 자연을 ‘화’라고 생각했어요. 화려할 ‘화(華)’자요. 중화민국에 쓰이는 중화는 ‘화려함의 한가운데 있다’는 뜻이에요. 그 화는 자연이 이룩한 경지입니다. 자연을 보면 꽃이 피고, 열매를 맺고 얼마나 화려한지 몰라요. 그런 것에 관심이 더 생긴 것 같아요. 나는 ‘천화(天華)’라는 말로 설명해요. 하늘이 이룩한 경지의 화. 하늘이 이룩한 건 스스로 있는 화예요. 비어는 있지만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화. 가지는 화려함이 아니라 아무것도 없는 듯한 화려함입니다. 최근에 국민대학교 학술회의장을 설계했습니다. 바닥, 벽, 천장밖에 없지요. 특별한 형식은 없습니다. 그저 강의를 위해 인위적으로 점등할 때마다 빛이 들어오면서 공간에 그림자가 생겨요. 빛이 된 그림자가 있고, 그림자가 된 빛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공간은 빛으로 사라지죠. 1 국민대 학술회의장. 바닥, 벽, 천장밖에 없는데 상당히 화려하다. 천장에서 떨어지는 빛과 그림자는 끊임없이 변한다. 2, 3 국민대학교 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 강의실 ‘담담원(淡談園)’. 맑은 이야기를 나누는 정원이라는 뜻이다. 국내 대학 최초의 온돌 좌식 강의실이다. 반투명 플라스틱 문은 때에 따라 공간을 구획하는 칸막이가 된다. 또한 빛을 은은하게 퍼지게 해 맑은 분위기를 만들기도 한다. 수업시간에 학생들이 방석을 하나씩 꺼내 앉는 정겨운 풍경이 벌어진다. 일반 사람이 생각하는 장식이 덕지덕지 붙은 화가 아니네요. 눈으로 보는 화가 아니에요. 사라지지만 체감되는 화를 원해요. 예전 작품을 보면 모든 게 직선인 공간인데, 이런 변화가 생긴 계기가 있을 거 같습니다. 사실은 아직도 다 직선입니다. 저는 곡선은 형태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형태가 되려는 것처럼 보입니다. 직선은 기하학에 불과하기에 의지가 개입된 형식은 아닙니다. 경주 안압지나 부여 정남지는 모두 동글동글해요. 신라시대에는 자연처럼 생긴 동그란 연못만 만들었어요. 그러나 조선시대에는 대부분의 연못이 사각형이 됩니다. 형태를 지향하지 않는 시대였죠. 저는 지금도 곡선으로 작업을 하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습니다. 곡선을 넘어서는 곡선이라면 몰라도…. 어떻게 보면 직선이 곡선보다 더 형태적이지 않습니까? 원, 사각형, 삼각형 이런 것이 어우러진 기하학을 서양에서도 즐겨 사용했습니다. 그리스 신전은 모두가 똑같이 생겼어요. 삼각형 아래 열주가 있는 형식입니다. 내 의지가 개입되었다면 각 신전의 모양은 달라졌겠죠. 절대적인 정신을 추구하다 보니 기하학이 아닌 형식은 아름답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자연을 모방하는 의미에서 예술은 추하다고 플라톤은 말하지 않았습니까? 동양만 없는 것의 아름다움에 눈뜬 게 아닙니다. BC 5세기 경 노자도 그런 이야기를 했는데, 비슷한 시기에 아리스토텔레스나 플라톤도 같은 말을 합니다. 서양에서 가장 완벽한 존재인 신은 없는 모습으로 존재합니다. 피라미드는 엄밀한 의미에서 무덤이 아니라 신전입니다. 유럽에 가면 모든 교회의 지하에는 무덤이 있잖아요. 피라미드는 신의 아들인 파라오가 잠들어 있는데, 교회 형식과 너무 흡사합니다. 근데 왜 피라미드가 삼각형 모양일까요? 그건 신이 살 만한 형식으로는 그 어떤 의지조차 없는 기하학적 형식이 신전에 적합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원래 피라미드의 표면에는 물갈기를 한 돌을 사용했습니다.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고 최초의 건축가로 불리는 임호텝(Imhotep)이 시도한 뒤로 계속 그렇게 했어요. 물갈기를 하면 돌이 반짝반짝거립니다. 아무것도 없는 사막에 이 거대한 삼각면이 빛을 받아서 내뿜는다고 생각해 보세요. 사방이 다 거대한 빛의 덩어리가 되어 천상으로 빛을 뿜는 빛이었죠. 지금은 세월이 지나서 이런 장면을 느끼기 힘들겠지만요. 최근에 동부 센트레빌 주택전시관은 레드돗 어워드상까지 받았습니다. 산업제품이 아니라 건축물이 수상한 일은 이례적인 일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소감이 궁금합니다. 받고 나서야 연락이 와서 알았습니다. 내가 낸 게 아니라 동부건설에서 낸 거예요. 서울의 간선도로에 놓인 작업이라 개인적으로 애착이 갔어요. 5년을 주기로 작품 세계가 변했다고 생각하는데, 가장 최근 변하면서 나온 첫 작품이었습니다. 상까지 탈 줄은 몰랐습니다. 건축으로 레드돗 어워드는 국내에서 처음이라는데 저보다는 작품이 기특하게 느껴지네요. 교수님은 평소 ‘무한한 공간’을 말씀하셨습니다. 다소 추상적인 말이라 이에 대한 이야기가 듣고 싶습니다. 공간의 형식이 무한하게 느껴지기보다는 그 안에 사는 사람에게 삶을 잊게 해주는 역할을 하는 집이 좋은 집이라고 생각합니다. 집에 있는데 그 집이 나를 자유롭게 해주고, 이야기도 들려주고, 아무 생각도 안 하게도 해주고, 편안하게도 해주고…. 느낄 만큼 느끼게 해주는 집 말입니다. 한국의 건축을 자연과 조화롭다고 하면 그건 건물이 자연을 모방한 게 되는 겁니다. 자연과 비슷한 건물이라면 자연보다 못한 게 되는 거예요. 건축이 자연과 조화롭기보다는 건축 속에 사는 사람을 자연 속에 녹아 들어가게 하는 건물이죠. 저는 이것을 건축을 통한 사람과 자연의 무한한 융화라고 생각합니다. 흔히 한국 초가집을 뒷산을 닮아서 자연스러운 건축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이 초가집이나 기와집을 그렇게 말하죠. 대중문화적 수준에서 그렇다면 이해합니다. 인류사를 돌아보면 모든 대중이 누린 문화의 수준이 그렇습니다. 소박하고, 천연덕스럽고, 거칠지만 정감이 가고. 아메리칸 인디언이 쓰던 물건도 그렇게 생겼고, 아프리카나 유럽인들이 살던 집도 그렇습니다. 한 나라의 문화를 논할 때 대중문화로 정의 내리는 건 우를 범하는 겁니다. 그 나라가 이룩한 최고 수준의 예술 형식이나 글을 통해서 그 나라의 문화를 말해야 합니다. 왜냐면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대중문화는 고급문화를 따라가려 하기 때문입니다. 문학으로 이야기한다면, 영국은 셰익스피어를, 아일랜드는 제임스 조이스를 이야기해야 합니다. 뒷산의 선이 그렇게 생겨서 우리의 집이 그렇게 생겼다고 하면 자연을 모방하는 것이 될 뿐입니다. 우리 선조들의 수준이 의심스러워지게 되죠. 동양에서 자연은 스스로 있는 자율적 자연입니다. 인문세계로 자연을 풍부하게 하는 것이 군자의 도리로 자연에 의지한다면 그건 군자가 아닙니다. 한옥의 평면도를 보면, 모든 게 ‘칸’에 의해 엄격한 형식과 체계 안에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선비들이 ‘헤~’ 하고 천연덕스러웠을 것 같나요? 아닙니다. 바른 자세이지만 모든 것에 열린 마음을 가지려 했었습니다. 자신에게 정밀하고 엄격한 동시에 너그러운 사람이 선비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지극한 수준을 이룩하려고, 즉 성인이 되려고 한 사람이 선비입니다. 그런 사람의 집 역시 그랬을 겁니다. 동화홀딩스의 자회사인 대성목재 인천 공장의 직원 휴게실 ‘나무공간’. 30평이 채 안 되는 네모난 작은 공간은 모두 이곳에서 생산되는 마루바닥재로 마감했다. 직원들에게 자신이 만드는 생산품이 얼마나 훌륭하게 변하는지 보여주려 했다고. 기존 휴게실에는 창문이 없어서 직원들은 바다가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었는지도 몰랐다고 한다. 얼마 전에 한국디자인문화재단에서 이태리 타올, 철가방 이런 걸 모아서 같은 걸 만들었습니다. 이런 건 어떻게 보시나요? 그건 대중들이 만든 문화입니다. 제가 대중문화를 폄하하는 건 아닙니다. 고급문화와 대중문화가 함께 있어야 해요. 그럴 때 비로소 선순환 구조를 이룰 수 있습니다. 비빔밥과 떡볶이도 원래는 궁중 음식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맛있는 거에요. 그냥 대중이 만든 게 아닙니다. 반대로 대중음식이 궁중 음식에 영향을 주기도 했고요. 우리 시대의 여러 문제 중 하나가 고급스러움에 대해 모른다는 겁니다. 지적이면서 예술적이었던 고급문화가 사라지고 없습니다. 제가 쓴 이라는 책에는 최고의 한국 건축만 다뤘습니다. 최고의 건축이 이룩한 세계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랬습니다. 지금은 를 쓰고 있는데, 제가 나름대로 선정한 세계 최고의 건축물 20선입니다. 우리 것만 최고라고 하는데, 그건 아니에요. 서양은 서양대로 높은 수준의 문화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동양에 대해서도 알아야 하듯 서양이 이룩한 것도 알아야 합니다. 요즘 사람들이 명품을 좋아하는데, 그건 어떻게 보시나요? 사람은 누구나 다 고급스러운 걸 좋아합니다. 저 역시 명품 좋아합니다. ‘명’자가 이름 ‘명(名)’자잖아요. 제가 생각하는 명품은 스스로 이름을 가질 수 있는 겁니다. 사람은 끊임없이 고급스러운 걸 찾아요. 생명도 그래요. 그건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꽃도 고급스러운 자기의 형식을 가지고 있는 겁니다. 자신을 고급스럽게 만들어서 벌과 나비를 유혹하는 거죠. 동양인은 ‘미는 인간의 본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미적인 형식을 만들려고 한 겁니다. 미와 기능은 별개가 아니라 미가 곧 기능입니다. 아름다움은 생존에 유리한 형식이죠. 아름다운 사람은 누구나 다 좋아하잖아요? 아름다운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건 사람에 대해 잘 모르는 겁니다. 어떤 걸 아름답게 보느냐는 물론 다른 문제이지요. 이런 추상적인 이야기가 구체화되는 과정이 궁금합니다. 디자이너가 꼭 철학자일 필요는 없습니다. 철학이 전문이 아닌데 전문가보다 뛰어날 수는 없는 거죠. 저 역시 철학자가 되고 싶은 건 아닙니다. 철학을 알고 싶은 겁니다. 제가 결국 디자이너인 건 철학을 통해서 다른 형식의 디자인을 드러내는 것에 관심이 많다는 겁니다. 표현하는 능력은 학교에서 배웁니다. 그러나 표현을 잘 하려면 의문을 가지는 게 중요합니다. 창의의 원천은 의문이에요. 질문하는 능력이 있는 사람만이 의문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좋은 질문을 할 수 없어요. ‘이게 뭐냐’고만 묻죠. 질문을 한다는 건 알아야 가능합니다. 질문의 시작은 ‘기존의 진리가 진리이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디자이너와 철학자는 모든 것에 대한 회의에서 시작합니다. 종교는 모든 것을 믿는 데서 시작하죠. 내가 신을 믿지 않으면 종교에서는 죄악이 됩니다. 믿고 실천하는 것에 종교는 의미를 둡니다. 요즘 한국에서 외국의 유명 건축가에게 프로젝트를 맡기는 일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외국도 알아야 합니다. 같이 경쟁도 할 수 있어야 하고요. 경쟁이 안 되면 외국을 적극 받아들여 선진화해야 합니다. 그러나 제가 동양에 관심이 많은 이유는 우리 것을 토대로 선진화하는 데 도움을 삼고 싶은 겁니다. 단지 우리의 옛날 것을 알기 위한 것은 제 관심이 아닙니다. 지금의 서양과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그 다른 것이 보편성을 가지고 있으면서 서양인의 관점에서 매혹적인 걸 만들고 싶습니다. 따라하고 싶은 것 말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냥 혼자 한 거죠. 그건 선진이 아니에요. 미스 반 데어 로에(Mies van der Rohe)가 ‘적은 게 많은 것(Less is more)’이라고 근대를 말했고, 렘 쿨하스(Rem Koolhaas)는 ‘많은 게 많은 것(More is more)’이라고 현대를 이야기 했다면, 저는 동양적 현대를 ‘적음 그러나 많음(Less but more)’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자기 혼자만 이룩한 생각은 짧아요. 인류가 만든 동서양의 고전에 대한 역사적 성찰이 없다면 새로운 시대를 선도할 수 있는 힘이 미약한 것입니다. (왼쪽) 동화홀딩스 디자인센터 ‘슬라이딩 페이퍼(Sliding Paper)’다. 디자인 사무실, 샘플 전시장, 소비자 상담실을 특별한 영역 구분 없이 설계했다. 공간을 정해진 영역에만 머물게 하는 게 아니라 필요할 때마다 공간의 역할을 바뀌게 했다. 현재 국민대학교 교수로 계십니다. 지도자로서 미래에는 디자이너에게 어떤 자질이 요구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새로운 사고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요구됩니다. 역사적인 통찰이 있으면 미래를 내다보는 힘이 생기죠. 인문학적이면서, 예술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또한 새로운 기술에도 열려 있는 친근하면서도 전인적인 인물이 필요합니다. 올해 한국실내건축가협회(KOSID) 회장이 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각오가 듣고 싶습니다. 학생, 고객, 대중, 실내 디자이너, 다른 영역의 디자이너 등을 모두 아우르는 영역에서 더 원활한 소통을 이끌어내는 코시드가 되기를 바랍니다. 최근에 코시드 30주년 기념행사로 열린 ‘누구나 디자인 파티’ 같은 것도 그런 의미죠. 다양한 분야에서 약 1000명 정도의 사람이 참가했고, 누구에게나 열려 있었습니다. 친근한 소통을 북돋는 동시에 매력적인 디자인 활동을 하는 단체이고 싶습니다.  레드돗 디자인 어워드를 수상한 건축물 ‘동부 센트레빌 주택전시관’. 하얀 재질의 표면이 인상적이다. 동양적인 선의 아름다움을 현대적으로 보여준다. 너무 단순해서 심심하지 않고, 지나치게 많아 혼란스럽지도 않다. ‘적음 그러나 많음’을 추구하는 그의 사상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인터뷰: 김신 편집장, 정리: 임나리 기자 / 사진 : 박기숙(둘 스튜디오) [출처] 월간디자인 (2009년 9월호) (원문보기) http://www.design.co.kr/section/news_detail.html?info_id=49098&category=000000060002&pageno=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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