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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작성일2004-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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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2004-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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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Interview with Stefan Sagmeister [디자이너가 되는 법] Q. 언제 그리고 어떻게 디자인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나요? 어떤 점이 당신이 디자이너가 되도록 했나요? A. 내가 15살 때 밴드에서 활동했었는데, 그 때 좋은 앨범 디자인을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디자인 학교에 갔고, 내가30살 때 나의 첫 CD 커버를 디자인하게 되었을 때까지, 디자인에 대한 여러 방면에 관심을 갖게 되었었죠. Q. 당신이 일하던 중 가장 당황했었던 적은 언제 였으며, 그 상황에서 어떻게 벗어났고, 당신의 위품은 어떻게 지켰으며, 또 그 상황을 잊고 다시 시작 하게 됐나요? A. 미안하지만, 내가 가장 당황했던 경험은 진짜 너무 창피해서 같이 나눌수가 없군요. 두번째로 제일 당황했던 적은 뉴욕의 게이와 레즈비언 대책 본부 (the Gay and Lesbian Task Force) 회의의 자선바자회 초대장을 제작하는 동안 일어났는데, 그 당시 나는 엠 & 코 (M & Co.)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디자인은 하얀 상자를 사용하는 것이었는데, 그 상자에는 아름답게 장식된 카드옆에 자두 한 개와 바나나 한 개를 각각 넣는 것이었죠. 그들의 과일을 보고 그들을 알지어다. 5000장의 초대장이 인쇄되었고, 뉴욕의 7월 여름 무더위 속에 초대장들은 내보내졌습니다. 문제점에 부딪힐 것을 가만한 제작자는 모든 것을 즉석에서 조처했습니다. 모든 뉴욕 주소는 메센져 서비스를 통해 배달하게 했고, 나머지는 급사(courier)를 통해 보냈었죠. 5000개씩의 자두와 바나나를 상비 주문해놓았고, 모든 것이 안전하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프린트된 티슈종이로 과일들을 포장하고 상자에 카드와 같이 담기로 한 그날 5000개의 바나나는 준비가 되었는데 자두가 오질 안았어요. 우리에게 자두가 오후에 배달될 것이라고 말하더군요. 그래서 바나나를 포장해서 상자에 넣기 시작했는데, 그 날 오후에 자두는 오지 않았습니다. 다음날도 자두는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그 다음날 자두가 도착했을 때, 포장된 바나나는 변색이 되어있었고 물이 베어나기 시작했더군요. 그래서 바나나들을 내다버리고 자두 포장을 시작했고, 바나나가 도착했는데 이번엔 새로 도착한 5000개의 바나나를 포장할 프린트된 티슈 종이가 모자란 상황이 됐죠. 종이를 재인쇄 하는 데 이틀이 걸렸고, 이번엔 자두들이 다 썩어버렸습니다. 마지막에는 다 잘 해결이 되어 모든 패키지들이 다 잘 도착했고, 저녁만찬도 매우 성공적이었습니다. Q. 그래픽 디자인을 직업으로 가진 개개인들에게 한가지 충고를 한다면 어떤 것이 있습니까? A. 만일 자신의 스튜디오를 연다면, 소규모상태를 유지하라는 것입니다. Q. 당신이 일하는 동안 사람들에게 자주 주던 조언 중에 개인적으로 당신에게 가장 크게 영향을 미쳤던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이며 또 누가 당신에게 해준 충고 였나요? A. 같은 충고입니다: "디자인 스튜디오를 경영할 때 가장 어려운 일은 규모가 커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티보르 칼만 (Tibor Kalman)의 말이였죠. Q. 그래픽 디자이너로써 가장 불쾌한 점이 있다면? (불쾌한 작가들이 이러한 질문들을 당신에게 이메일로 보내는 것이 아니면 합니다만) A. 뭔가 될 것 같은 좋은 아이디어가 안 떠오르는데 마감일은 다가올 때 입니다. Q. 그래픽 디자인 필드에서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인용구는 무엇이며 또 누가 한 말입니까? A. 만일 당신의 이미지가 별로 좋지 않다면, 강아지를 한 마리 넣으십시오. 그래도 안된다면 강아지에게 밴드를 붙이십시오. 노만 록웰 (Norman Rockwell) Q. 세계적으로 디자인의 실제와 견해는 컨셉이 왕이고, 스타일과 미가 그 결과물이라는 서양의 영향을 많이 받는데, 홍콩과 아시아 지역에서 당신의 경험이 디자인이나 미에 대한 다른 견해나 실제를 느끼게 했습니까? A. 홍콩에서 미국 광고 에이전시의 부속인 디자인 그룹을 맡아 일했었기 때문에 우리의 디자인은 중국적인 요소를 가미했어도 외국적 이였습니다. 요즘 아시아 지역에서 나오는 디자인들을 보면 미국의 디자인들보다 더 재미있고, 실험적이며, 더개인적인 것이 많습니다. Q. Typoetheque에서 "80년대의 그래픽 디자인은 레이아웃에 대한 질문, 네빌 브로디 (Neville Brody)의 얼굴이 큰 이벤트인 것처럼 도배된 생활양식 잡지들에 의해 지배 당했었고, 데이비드 카슨(David Carson)이 지배적인 인물로 등장한 90년대에는 타이포그래피, 읽기 쉬움, 레이어링(Layering)에 관련된 질문들이 지배적이였다."고했다. 오늘날 디자인세계에서 영향력있는 인물들은 누구이며, 그들의 작업이 왜, 어떻게 디자인 발전에 도움을 주었는지요? A. 제 생각에 디자인세계가 좀 더 민주적으로 변한 것 같은데, 요즘은 한 사람 이상의 스타디자이너가 공생 할 수 있는 여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블루 솔스(Blue Source / UK), 마틴 우들리 (Martin Woodli / SUI), 로랑트 훼티스 (Laurent Fetis / FR), 앨리자베스 코프(Elisabeth Kopf / AUT), 지 리 (Jee Lee / US)를 좋아하는데, 그들은 내 가슴이 노래하도록 만듭니다. [디자인 학생으로써] Q. 디자인 공부를 하고있는 학생들에게 들려주는 일화중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 있다면 어떤 것입니까? A. 내가 좋아하는 일화는 한 이년전에 제가 마니토바 (Manitoba)주의 위니펙 (Winniepeg)에서 강연을 했을 때 들은 이야기 입니다. 강연을 마친 후, 그 지역의 디자인 그룹사람들과 저녁을 먹으러 나갔습니다. 자정이 지나자 그 회사의 보스는 먼저 일어섰고, 남은건 저와 그 회사 직원들이었는데, 그 직원들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 주면서 정말 실재로 있었던 이야기라고 맹세 하더군요. 매일 밤을 세며 정말 중요한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고 있던 중이었는데, 모두들 지쳐있었죠. 그 보스가 보드를 자르고 있었는데, 그 전날 확대하여 준비해놓은 오리지날 사진 위에 얹고 잘라 그 사진에 기다란 컷을 남기고 말았죠. 그 다음날이 프레젠테이션이었는데 어떻게 되돌릴 방법이 전혀 없었답니다. 보스는 굉장히 화가 많이 났고, 그는 엑스-액토 (x-acto)를 집어 들어 사무실을 가로질러 던졌는데, 이것이 스프레이 마운트 캔을 치게됐고, 예전에 물리 시간에 원동력에 대하여 배웠던 대로, 그 스프레이 캔은 강력한 소용돌이를 치며 되날라와 보스의 얼굴에 정통으로 스프레이를 뿌렸다는 것입니다. Q. 그래픽 디자인을 본업으로 할 생각을 하고 있거나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줄 수 있는 한가지 좋은 충고가 있다면 무엇입니까? A. 만일 진짜 그래픽 디자인을 사랑한다면 공부하십시오. 미술 작가가 되고 싶은데 (혹은 도예가..) 돈을 벌 수 있다는 확실치 않은 보증 때문에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해서는 안됩니다. 그렇게 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 일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항상 더 잘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돈도 벌게 될 것입니다. Q. 당신 생각에 그래픽 디자인 필드에서 석사 학위 등등의 교육을 받는 것이 아주 중요한 영향을 끼칩니까? A. 아니오,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많은 디자이너들은 굉장히 적은 디자인 교육을 받았는데, 티보 칼만(Tobor Kalmann), 제임스 빅터 (James Victore)등이 그런 디자이너 들입니다. 근데 저는 디자인 학교 생활을 아주 즐겼죠. Q. 풀-타임 직업을 찾는다거나 미래 클라이언트에게 연락을 하려고 할 때 어떤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고 제안 하시겠습니까? A. 정말로 일하고 싶은 몇몇의 스튜디오나 클라이언트에게 그들만을 위한 특별한 우편물을 만들어 발송하십시오. 당신이 사는 도시에서 가장 잘 알려지고 규모가 큰 3곳의 스튜디오나 클라이언트만을 찾지는 마십시오. 또 자신의 이력서를 첨부한 이메일을 500여 군데에 보내는 행동도 하지 마십시오. 좀더 많은 곳에서 연락이 올지는 모르나 정말 자신이 일하고 싶은 곳은 아닐테니까요. Q. 어렸을 때부터 원했던 일을 하고 있습니까? 아니라면 어떤 일을 하기를 원했었나요? A. 제가 일곱살 때 저는 성당의 복사 (altar boy)여서 신부가 되고 싶었습니다. 내가 열다섯살때는 서투른 밴드에서 활동했는데, 앨범 커버를 디자인하고 싶어했죠. 내가 진짜 디자인을 하게 됐을 때 저는 서른 살 이였는데, 앨범들의 사이즈는 줄어있었고 딱딱한 플라스틱 케이스안에 들어있더군요. 뭐 그래도 좋았죠. Q. 제 포트폴리오안에 들어있어야 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A. 좋은 작품이 있어야죠. 제 생각의 좋은 작품이란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아주 잘 나타나게 제작된 작품인 것 같습니다. Q. 당신의 회사에서 함께 일할 디자이너를 뽑을 때 보는 점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A. 좋은 포트폴리오를 가진 착한 사람입니다. 이 두가지는 동등하게 중요한 자질입니다. 저는 탤런트는 굉장하지만 성격이 나쁜 사람과는 일하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또, 저는 제작품을 복사하기 보다는 돋보이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을 찾습니다. Q. 몇점이나 있어야 할까요? A. 만일 작품이 훌륭하다면, 몇 점이 들어있는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잘 모르겠는 경우, 적은게 더 좋습니다. 10점의 좋은 작품이 10점의 좋은 작품과 7점의 그저그런 작품이 든 포트폴리오보다 훨씬 더 나은 포트폴리오를 만듭니다. Q. 포맷은 어떤게 좋을까요? A. 마찬가지로, 어떤 포맷을 사용하든 문제는 되지 않지만, 제가 권장하고 싶은 것은 17 x 22 보다 작은 사이즈를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자신이 그 자리에 없어도 잘 진행될 수 있어야 하는데, 대부분의 스튜디오는 포트폴리오를 전달만 하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Q. 스케치나 작품 과정을 보여주는 것은요? A. 훌륭하다면 좋겠죠. 보는 이로 하여금 너무 깊이있는 관여를 요구하는 작품은 많이 넣지 마십시오. 저는 많은 이들이 한 일분여만에 포트폴리오를 검토하는 것을 봤기 때문에 장문의 캡션이나 작품 설명은 대부분 성공적이지 못한 결과를 초래합니다. Q.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또 가장 나쁜 일은 무엇일까요? A. 가장 좋은 일: 자신이 고용주의 마음 자세를 가져보는 것입니다. 당신은 그 회사가 필요한 어떤 점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런 것을 그들의 입장에서 보도록 노력해 보십시오 (이 조언은 제가 프랫 (Pratt)에 다닐 때 헤드 헌터 한분이 우리들에게 했던 말인데 저한테는 아주 훌륭한 충고였죠). 가장 나쁜 것: 받는 이의 정확한 성명없이 받으시는 분께라는 문구로 시작되는 이력서를 500여군데에 내보내는 것이죠. 그런 문구로 시작되는 이력서는 바로 휴지통으로 직행합니다. 만일 지원자가 내 이름을 알아보는 시간을 투자하지 않았다면, 난 그 지원자를 알기 위해 시간을 낭비할 필요는 없는거죠. Q. 당신이 비엔나에서 응용 미술대학을 다닐 때와 프랫에서 그래픽 디자이너가 되는 수업을 받을 때 알았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점이 있다면 어떤 것입니까? (혹은 그냥 일반적으로) A. 제게는 디자이너로써 미술사가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학교에 다닐 때, 그쪽에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나중에 혼자서 배워야 했죠. Q. 뉴욕의 스쿨 오브 비쥬얼 아트의 교수로 디자인 원칙, 직업 윤리, 혹은 영감에 대해 학생들에게 줄 수있는 최고의 조언은 무엇입니까? A. 너무 많지만 그 중에 하나를 들자면 자신이 잘 못하는 것을 해보라는 것입니다. 잘 할수 있는 것은 벌써 다 알고 있는 것이니까요. [영감에 대하여] Q. 창조적인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시간을 어떤 차원으로 보십니까? 물론 이 질문은 정확한 답이 없는 것이며 여러가지 요소에 좌우된다는 것을 이해합니다. 제가 특히 궁금한 것은 당신이 창조성을 촉진하기 위해 시간의 압박감을 어떻게 활용하는 가하는 점입니다. 당신은 마지막에 몰아서 일을 하시나요, 아니면 9-5동안 규칙적으로 나누어서 하나요, 아니면 한 3일간 쉬지 않고 작업하는 스타일인가요? A. 저는 규칙적으로 나눠서 일합니다. 마감기한이 되기 전까지 어떤 정한 시일내에 어디까지 마쳐야 하는 가를 제시하는 제 자신을 위한 계획을 세웁니다. 그 이유는 제가 그런 압박감을 아주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클라이언트가 없었던 시절에 저는 매주 목요일 아침마다 3시간안에 12페이지의 작은 책자를 동반한 CD 커버를 만드는 연습을 했는데, 이는 이러한 새로운 제한이 어떠한 결과를 초래하는지 실험해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과정이나 결과가 모두 만족스러웠으나, 결정은 다르게 됐고, 재료도 다른 것들이 사용되었으며 이미지도 틀리게 전개 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저는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클라이언트가 누군지 확실한 경우에는 처음부터 모든게 정해져서 시작이 되죠. 제한을 두고 작품을 제작하는 앨란 웩슬러 (Alan Wexler)라는 작가의 작품을 보라고 권장하고 싶습니다. [음악을 디자인할 때] Q. 당신이 티보 칼만과 함께 디자인한 YMO의 Technodon 커버에 대해서 좀 더 설명해 주세요. 공동 작업은 어떠했는지요? 경험이 어땠나요? A. 제가 M & Co.에서 일하는 동안 디자인한 커버였는데요. 리우치 사카모토 (Ryuchi Sakamoto)씨가 작가 제니 홀쳐(Jenny Holzer)에게 디자인을 부탁했지만 제니는 디자인 하기를 원치 않았고 그녀의 문구 10개를 M & Co.가 디자인 한다는 조건으로 리우치에게 팔기로 동의했죠. 저는 제니 홀쳐의 팬이었기 때문에 그 10개의 문구를 다 커버에 선보일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했었죠. 그래서 제작된 것이 코드로 된 글을 담은 10개의 다른 커버였는데, 플라스틱 커버 안에 넣었을 경우에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저희는 그 플라스틱 상자위에 직접 라인 패턴을 실크스크린했고, 그와 비슷한 라인 패턴을 책자 커버에 넣어 모아레 (Moire) 패턴을 이루며 읽을 수 있는 타이포그래피를 만들었습니다. 티보는 그리 깊이 관여하지 않았는데, 그 당시 그는 베네톤 잡지인 "컬러즈 / Colors"에 더 깊이 관여되어있었습니다. 그는 일주일에 한번씩 제 책상을 지나치며 안될 것이라고 말했었습니다. Q. 리우치 사카모토 (Ryuchi Sakamoto)는 이 디자인 과정에 얼마나 관여했나요? A. 굉장히 깊이 연관되었었죠. 우리는 여러 번의 미팅을 했었고 지금까지도 연락을 하고 지냅니다. Q. 당신은 리우치 사카모토 (Ryuchi Sakamoto), 데이비드 번 (David Byrne), 루 리드 (LouReed)등 음악세계의 전설적인 인물들과 작업을 한적이 많은데, 이런 경험이 어떤 생각을 하게 했나요? A. 그들도 저의 다른 클라이언트와 마찬가지로 각기 다 틀리다는 점인데요, 걱정많은 사람, 기쁜 사람, 유명세를 즐기는 사람과 아주 싫어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죠. Q. 당신이 제작한 음악 패키지는 대부분 촉각적인데 이런 점이 음악을 사는 경험을 아주 상호작용적으로 만드는 것 같습니다. 당신이 볼 때 이런 점이 음반을 사려는 구매자의 관심을 다른곳으로 흐르게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A. 아니요, 구매자의 결정권이 연관되어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시각적인 점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만이 상호적인 과정에 참여하겠죠. Q. 당신은 패키징이 좋아서 음악을 구입하겠습니까? A. 네, 전 항상 그렇게 해왔습니다. 게다가, 처음에 놀랐던 것은, 좋은 음악을 항상 이런 방법으로 찾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좋지않은 디자인이 사용된 좋은 음악도 많이 있겠지만, 멋진 패키지로 된 음악 대부분이 좋다는 것을 발견했죠. 훌륭한 패키지를 찾기 위해 여러 어려움을 경험하는 많은 밴드들이 그렇게 하지않으면 어떤일이 생길지를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Q. 팝 음악의 세게가 디자인과 음악의 관계에서 많은 애매하고 흐릿한 부분을 초래했는데, "음악 브랜딩"과 "음악을 위한 디자인"의 관계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것은 실재로 같은 것입니까? A. 제 생각에도 이 두가지가 애매하다고 동의 하지만. "음악 브랜딩"은 기본적으로 음악의 판매와 관련된 것인 것 같고 "음악을 위한 디자인"은 마음에서 음악을 시각화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정해진 밴드 로고가 그리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하지 않는데, 이유는 이것이 정해진 브랜드의 법칙이 있는 듯하게 보이게 해서였는데, 이는 록큰롤의 정반대되는 생각이죠. 한 두어개의 밴드만이 성공적이었는데, 가장 성공적으로 사용한 밴드는 아마도 "시카고"일겁니다. Q. CD 커버 디자인을 통해서 보다 나은 세상이 될 것이란 생각은 물론 안 하시겠죠? A. 만일 음악이 좋고 우리의 커버가 맘에 들어 누군가가 집어 든다면, 이것은 좋은 앨범을 친구에게 권하는 것과 마찬가지 일겁니다. 그 친구는 이러한 팁에 기뻐할 수 있겠지만, 그의 인생의 전환점이 되지는 않겠죠. Q. 음악 패키징은 사라질까요? A. 확실히 이상한 경솔함을 느끼고 숨을 가쁘게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음악의 시각화가 말하자면 1940년대에서 2000년대까지 아주 제한된 역사적인 생존기간을 가졌다고 볼 수 있는 가능성이 많이 있습니다. 1940년대 전 음악은 어떤 시각적 효과 없이 아주 잘 생존했었는데, 지금도 어떤 디자이너의 관련 없이 잘 생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CD 패키징은 세분화된 마켓을 형성하며 계속 생존할 것입니다 - 12인치 비닐 커버처럼- 하지만, 효과있는 메인 스트림 미디움으로 디자인 스튜디오가 이 분야를 전문화하여 생활이 되는 돈을 버는 일은 없을 것이며, 2007년쯤에는 완전히 없어질 것입니다. 만일 내가 사람들의 하드 디스크를 보고 수 천개의 망가진 음악 파일이 엉망으로 쌓여 있는 것을 경험했을 때, 청년기 시절의 한 부분으로 레코드를 수집하는 생각도 함께 같이 무덤 속에 묻힐 것이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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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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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2004-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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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2004-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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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누군가를 감동시키는 방법 만일 내가 위의 목록을 따르고, 내 모든 디자인을 그 6가지 요점에 비교하여 맞춘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감동적인 작품이 나올까? 내 생각에 위의 목록도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하게 하는 방법" 류의 책들이 갖고 있는 문제와 같은 문제를 가진 것 같다. 만일 내가 하나의 디자인을 가지고 어떤 이를 감동시키고 싶다면, 그 디자인은 내 마음 속에서 우러나와야하고, 진실되고 과장이 없어야 한다. 그저 목록을 따른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만일 내가 정직하다면, 내 디자인을 보는 관객은 그것이 내 마음 속에서 우러나온 것인지 아닌지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내 친구들이 내가 진정한지 아닌지를 바로 알아내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내가 만일 진실되고, 용기가 있고, 열정을 보인다면, 내 메시지는 전달될 것이다. 내가 이토록 다른 사람의 마음에 감동을 주기를 원하는데, 꼭 그래픽 디자인을 통해야 하는 것일까 라는 생각을 했다. 내 말은, 캘커타에 병원을 세워 누군가를 감동시키는 것은 어떨까? 엄마에게 친절한 편지를 쓰는 것은? 그러나 "엄마에게 상냥한 편지 쓰는 방법"은 AIGA 회의의 주제로는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일하는 데 편한 매체로 누군가를 감동시키고 싶다. 이상하게도 한 십 년 후에는 이런 감동을 주는 디자인이 진정한 디자이너들만이 할 수 있는 단 한가지 디자인 종류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 모든 전문적이고, 멋지고, 잘 만들어진 예쁜 것들은 정교한 컴퓨터 프로그램이 만들어 줄 것이다. 당신이 고객의 이름을 입력하고, 포맷과 스타일을 고르면, 수많은 전형적인 디자인 종류의 목록을 가진 프로그램은 당신이 그 중에서 하나를 고를 수 있도록 보여주고, 한 가지가 정해지면 그 그림을 다운받아서 정리한 후 파일을 프린터로 보낸다. 게다가 난 도저히 캘커타에 병원을 세워 제대로 운영할 용기가 없다. 내가 홍콩의 리오 버네트(Leo Burnett)라는 광고 대행사에서 일했을 때 그 곳의 전무이사는 항상 경찰관 친구와 시간을 보내서 범죄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었다. 그 홍콩 경찰관은 마침내 홍콩판 코사 노스트라(Cosa Nostra)라 할 수 있는 3인조 갱단의 청년 두목을 잡았다. 그들은 그 두목을 주룽(Kowloon)에 있는 20층짜리 경찰본부 건물의 독방에 가두고, 어떤 정보도 얻어내지 못한 채 몇 일째 계속 심문을 하고 있었다. 아무런 성과 없는 심문에 완전히 화가 뻗친 경찰들은 그의 발을 잡고 18층 창 밖에 매달았다. 그래도 그는 말을 하지 않았고, 결국 그를 풀어주게 되었다. 그 3인조의 두목은 심문 때 고문을 당한 것을 이유로 경찰을 고소했다. 재판에서 그는 5명의 경찰관에 관해 증언했는데, 경찰들은 그의 증언이 거짓이라고 했다. 그러자 그 두목은 증거가 있다고 했다. 경찰들이 그를 창 밖에 매달았을 때 벽에 자신의 이름을 적은 것이었다. 재판관은 이를 확인하러 갔는데, 18층 외벽에 그의 이름이 거꾸로 적혀 있는 것이었다. 나도 이처럼 대단한 배짱/용기를 담은 활자나 어떤 시각적인 디자인을 창조할 수 있으면 한다. 지금까지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방법을 알아내지 못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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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작성일2004-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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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나를 감동시킨 예술가들 이제까지 설명한 프로젝트들이 모두 다 꽤 오래된 것들임을 알아챘을 것이다. 그 이유는 근래에 본 디자인 프로젝트 중에서 그 정도의 감동을 준 작품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 활동하고 있는 현대 미술가들 몇몇이 날 완전히 감동시켰다: 월터 드마리아(Walter DeMaria)는 앨버커키(Albuquerque)와 가까운 곳에 있는 뉴멕시코의 어느 곳에 이라는 작품을 설치했다. 그는 대단히 광을 낸 수백 개의 스테인레스 스틸 기둥을 세계에서 가장 번개가 많이 치기로 유명한 곳 중 하나에 설치했다. 방문객들은 근처의 언덕에 산장을 빌려서 번개가 기둥을 치기를 기다릴 수 있다. 뉴욕 작가인 재닌 앤토니(Janin Antoni)는 자신의 부모님에 관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 일 년 동안 할리우드의 유명한 분장사에게서 사사를 받았다. 이것은 그녀의 아버지가 어머니로 분장하고 그녀의 어머니가 그녀의 아버지로 분장한 모습이다. 그리고 난 후, 그녀는 아버지를 아버지의 모습 그대로 두고, 어머니를 아버지로 분장한 장면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어머니는 그 모습 그대로 두고, 아버지를 어머니로 분장한 모습을 보여준다. 카탈로그에는 이 작품을 만드는 과정을 찍은 사진도 실려 있는데, 그 중에는 그녀와 그녀의 어머니가 아버지를 분장시키는 장면을 담은 이런 멋진 제목을 가진 사진도 실렸다. 아돌프 월플리(Adolf Wolfli)는 20세기 전환기의 스위스 작가로 정신병원에서 이러한 열정이 담긴 수첩을 만들었다. 그저 높이 쌓여진 책들을 보는 것만으로 감동을 받게 된다. _예술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내가 이제까지 보여준 시각적으로 감동을 일으키는 예들은 순수미술가들의 작품이 대부분 인데, 알다시피 우리는 그래픽 디자이너이다. 그렇다면 미술이란 무엇이고, 그래픽 디자인은 무엇인가? 무엇이 다른 것일까? 내가 제일 좋아하는 미술에 대한 정의는 브라이언 이노(Brian Eno)가 내린 것으로 다음과 같다. 그는 예술품을 오브제(objects)로 생각하지 말고 경험을 유발시키는 어떤 것으로 생각하라고 말했다. 그리하면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사진이 예술 작품인지, 퍼포먼스가 예술인지, 안드레 세라노(Andre Seranno)의 소변이 예술인지, 혹은 그래픽 디자인이 예술인지에 대해 논쟁하지 않아도 된다. 이노는 예술은 무엇인가 발생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예술은 경험이지 질(quality)이 아니다. 물론 렘브란트의 작품 앞에서 당신이 얻는 예술적 경험은 나와는 다를 것이다. 그 작품이 당신에겐 예술일 수 있지만 나에게는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렘브란트건, 모차르트건, 혹은 네빌 브로디(Neville Brody)이건 간에 작품에 절대적인 미적 가치는 없다고 했다. 나는 조나단 반브룩(Jonathan Barnbrook)과 예술가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가 협력하여 제작한 이 책 자체도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이 데미안이 한 일 중 최고라고 말한 몇몇 작가들과 이야기한 적도 있다. 그들은 이 책이 데미안의 그림과 조각에 관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오브제로서 이 책이 데미안의 그림이나 조각보다 더 좋다고 했다. 나는 영국에서 느끼는 미술과 디자인의 내적인 차이가 미국에서보다 훨씬 적다고 생각한다. 영국에는 토마토(Tomato), 미 컴퍼니(Me Company), 피터 새빌(Peter Saville), 디자이너스 리퍼블릭(Designers Republic), 퓨얼(Fuel) 등 아방가르드 디자인 그룹들이 더 많다. 실험은 그들의 일상의 한 부분이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런 것들은 인쇄물에서도 엿볼 수 있다. 잡지와 지를 비교해보라. <D&AD>를 에 비교해 보라. 또 도서 출판에서도 차이를 볼 수 있다. 부스 클리본(Booth Clibborn)과 록포트(Rockport)를 비교해보라. 왜 그런가? 나는 마르첼로 미날리(Marcello Minale)가 영국 기업이미지 통합(corporate identity; CI) 전문 회사인 미날리 태터스필드(Minale Tattersfield)에서 출판한 책에 수록된 인용문을 발견했다. "내 경험으로 볼 때, 돈을 버는 것과 동시에 좋은 디자인을 만드는 것을 주 목적으로 사업을 시작하는 디자이너들 전부가 둘 모두에서 실패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디자인이란 진정한 애정을 갖고 해야 하는 일이라고 믿는다. 만일 당신이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좋은 디자인을 창조하는 것이라면 부수적으로 돈을 벌게 될 텐데, 그 이유는 좋은 디자인에는 사람들이 돈을 아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재정적인 보수는 보너스 혹은 선물인 것이다.” 이것은 주류 디자인 회사에서 나온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나를 감동시키는 작품들에 공통적인 특성은 무엇인가? 나를 감동시키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 목록을 만드는 일이 가능한 것인가? 어쨌든 해보았다. 1. 새로운 가능성 : 새로운 방식으로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뉴욕의 퀸스에 있는 PS1에 가면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이 만든 조각품이 제일 위층에 설치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작품은 매일 해가 질 무렵에 천정이 열리도록 되어있는 네모난 방에 있다. 그 공간은 완전히 개방되어 있으나 닫힌 느낌을 준다. 하늘이 프레임 안에 짜맞춰지고, 길다란 벤치에 앉아서 하늘의 색이 변하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내가 이 방에 들어갔을 때 내 목소리가 자동적으로 속삭임으로 변했는데, 그 정도로 그 안에는 신성한 성전의 느낌이 있다. 2. 기억을 되살리는 능력 : 아마도 내가 어렸을 때 겪은 내 경험을 되새기게 해야 할 것이다. 역시 PS 1에서의 경험이다. 앤 해밀턴(Anne Hamilton)의 조각이 전시되어있다고 전시장 지도에 표기되어 있어서 작품을 보러 갔는데 하얀 벽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안내 데스크로 가서 물어 보았더니 작품은 분명히 거기 전시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다시 그곳으로 되돌아 갔지만 여전히 그 하얀 벽 외에 보이는 것이 없었다. 다른 점이라면 그 벽이 젖어있다는 것이었다. 아주 자세히 그 벽을 들여다보니 굉장히 작은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작은 물방울이 천천히 새어 나오더니 이 물방울이 점점 커져 벽을 타고 흘러내릴 정도가 되었는데, 물방울들은 계속 나오면서 벽을 타고 흘러내리는 물줄기는 점점 더 아래로 내려갔다. 어떤 물방울은 중간에 멈추고 또 어떤 물방울은 속도가 빨라지기도 한다. 나는 나중에야 이 작품의 제목을 알게 됐다. 3. 열정과 용기 : 그들은열정과 책임감을 보여준다. 57번가의 한 갤러리에 그의 세대에서 아마도 가장 유명할 것이며 확실히 가장 값비싼 독일 작가인 안젤름 키퍼(Anslem Kiefer)의 전시를 보았다. 그의 작품 한 점은 백만 달러가 넘는다. 몇 년 전에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열린 그의 회고전을 보았는데, 그는 굉장한 대작의 캔버스 작품들을 전시했다. 사이즈가 60 x 15 피트(feet)까지 되는 것도 있었다. 뉴욕의 매리언 굿맨(Marian Goodman) 갤러리에서는 작가가 소장하고 있는 그 작품으로 전시를 열었다. 작가는 둘둘 말린 캔버스 작품과 틀에 넣은 작품들을 마구 섞어 20 피트나 되도록 쌓아 올렸는데, 모든 작품들은 그 무게에 의해 서로 파괴되고 있었다. 하얀 벽에 작가는 분필로 이렇게 적었다: 20년간의 고독. 4. 놀람 : 의외성의 요소가 있어야 한다. 내가 16살 때 콜(Kohl) 수상이 독일에서 당선되었고, 다른 보수파 정치인인 스트라우스(Strauss)가 바바리아 지방에서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었다. 그들은 "독일인을 위한 독일"이란 슬로건을 내걸고 이민자들이 몰려오는 것을 억제함은 물론이고 더 많은 자식을 낳도록 독일인들을 구슬렸는데, 이로써 독일인의 독일을 만드는 것을 보장하려는 것이었다. 동시에 몇몇의 독일 작가들이 새로운 잡지를 출판하고 "독일인을 멸종의 위기에서 구하자"라는 표제 하에 이 사진 기사를 실었다. 이 남자들의 사진은 논점을 확실히 하는데, 이는 포토샵이 생기기 전에 만들어진 것이다. 독일인을 구하자. 5. 탁월한 기량 : 탁월한기예 혹은 기술은 확실히 존재한다. 혹은 간단히 어떤 사람이 어떤 것에 그처럼 정통할 수 있다니 하고 놀랄 수 있다. 2주 전 스위스에서 스위스 화폐를 디자인한 디자이너를 만났다. 여기서 엿보이는 탁월한 기량은 디자인이 아니라(물론 디자인도 좋았지만), 그 인쇄술에 있었다. 그들은 그들만의 인쇄 도트를 디자인했는데, 도트 하나는 각각 레지스터로 인쇄되는 여러 개의 팬톤(Pantone) 컬러로 구성된다. 그들은 1/25000 인치까지 일치해야 하는데, 모든 화폐는 8개의 보안 특징(feature)이 있고, 거기에다 은행만 알고 있는 4개의 보안 특징과 정부만 알고 있는 또 다른 4개의 보안 특징을 더해야 한다. 물론 이런 안보 정책은 쓸모 없는 짓이란 걸 알지만, 이 극도의 강박관념은 정말이지 재미 있다. 6. 아름다움/미 : 그리고아름다움 혹은 내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이 있다. 이 경우, 사이토 마코토(Makoto Saito)가 절을 위해 만든 훌륭한 포스터가 그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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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2004-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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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달 새로운 친환경 공연, 전시와 함께 3,4월 결식학생돕기 등 격월 테마를 가지고 전개되는 나눔장터에 행사의 일환으로 우리학교 윤호섭 교수님과 디자인대학원 시각디자인 전공 대학원생들의 환경 관련 디자인 작품, 현수막을 이용한 장바구니, 제주 하도리 철새보호 어린이 작품전과 함께 천연염료 티셔츠 그림 그려주기, 어린이 마스크 그림그려주기 퍼포먼스를 함께 한다. 이 작품들은 제주도에서 29~31일까지 개최되는 환경국제회의행사기간 중 전시되며 포스터,카다록,엽서,뱃지등 다양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나눔장터 날짜: 2004. 3.27, 12:00-4:00 ((매달 셋째 토요일,하절기 2:00-7:00) 장소: 뚝섬 유원지역 앞 청담 다리밑 (7호선) http://www.beautifulstore.org/ 8Th Special session of the Governing Council/ Global Ministerial Environmental Forum of UNEP 2004 29-31, March, 2004 International Convention Center Jeju, Republic of Korea http://cheju.kfe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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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2004-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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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대학교 신임 총장님 취임식!! ‘제8대 총장 김문환 박사 취임식’이 3월24일 (수요일) 성북구 정릉동에 있는 국민대학교 국제교육관 콘서트홀에서 열렸다. 각계인사와 교수, 교직원, 학생 등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된 이번 취임식은 개식사를 시작으로 국민의례, 김문환 박사의 약력 소개, 교기이양, 신임 총장의 취임사, 그리고 서정돈 성균관대학교 총장, 손지열 대법관, 유기정 총동문회 고문의 내빈축사, 이사장 인사, 교직원·학생 대표의 꽃다발 증정, 축가등의 순서로 마무리 되었다.. 김문환 신임총장은 ‘변화하는 대학의 현실’과 지금까지의 ‘양적성장’에서 ‘질적인 발전’에 대한 관심을 강조하며, 대학본부가 변화를 주도하는 체제에서 대학의 구성원 전체가 분업과 협업에 참여하는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그리고 이를 위해 비전과 목표로 교육과 연구의 차별화, 국제화, 특성화 그리고 인간교육을 설정함을 밝혔다. 주요약력 1965.3~1969.2 서울대학교 법학대학 법학과 졸업(법학사) 1970.3~1973.2 서울대학교 대학원 법학과 졸업(법학석사) 1981. ~1982. 미국 뉴욕대학교 법과대학(M.C.J) 1989.8 서울대학교 대학원 법학과 졸업(법학박사) 현재 한국 신용카드학회 회장 한국 인터넷법학회 회장 채무자 회생 법제도 연구회 회장 프로그램 심의 조정 위원회 위원 소비자 교육지원센터 공동대표 한국법학교수 위원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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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작성일2004-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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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작성일2004-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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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디자인으로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 주중 관람객이 평균 200명을 넘고, 주말 평균 600여명에 이를 정도로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전시회에서 23일 제로원을 찾은 50명의 관람객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스테판 사그마이스터전을 본 사람들의 추천에 의해 왔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그에 대해 어느정도 알고 있나? 라는 질문에는 ‘모른다’가 80% ‘어느정도 안다’는 14%, ‘잘 안다’가 6% 정도로 나타났다. 본원에서는 그에 대한 언급이 좀더 필요하다는 판단아래 본 홈페이지를 통해 그의 작품이외의 것을 궁금해 하는 사람들을 위한 으로 그의 디자인 마인드와 실제 그와의 인터뷰를 앞으로 몇 차례에 걸처서 올릴 예정이다. 스테판 사그마이스터는 현재 뉴욕에서 가장 진보적인 디자이너로 평가 받고 있는 작가적 성향의 디자이너이다. 그는 국제적인 그래픽 회사와 광고 에이전시에서크리에이티브 실무와 사업 경영을 두루 경험한 후 독자적인 스튜디오를 설립해 활동하면서 이제는 세계적인 스타 디자이너로서 성장해 있다. 그의 화려한 경력과 천재적 작품성향은 현대의 디자이너들이 꿈꾸는 성공한 디자이너의 모델이 되고 있다. 2000년대 이후 이제는 세계적인 중견 디자이너로서 자리매김한 그는 기발하고 전위적인 디자인에만 몰두했던 과거와는 달리 인류의 따뜻한 온기를 담아내는 디자인, 즉 '휴머니즘'을 표방하고 나섰다. 한국에서는 최초로 갖는 이번 전시에서 그는 최근 관심인 '휴머니즘' 주제의 근작들을 가지고 방한했다. 그동안 책이나 인터넷으로만 엿볼 수 있었던 스테판 사그마이스터(Stefan Sagmeister)의 실제 작품들과 그 작업 과정들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한국 디자인 교육의 실험적 현장이 되는 것은 물론 그의 최근작 발표의 성격을 띰으로써 그의 최근 작품 성향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1. 디자인으로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 내가 처음으로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1997년 뉴올리언스에서 열린 AIGA 국제 회의에서였다. 참석자 전원은 유명 디자이너들이 이 중요한 회의를 위해 디자인한 회의 일정표, 파티 초대장, 종이 샘플 책 등이 가득 담긴 커다란 검정 캔버스 가방을 받았다. 그런데 이것들은 모두 시시했다. 아주 잘 만들어지고 예쁘긴 했지만 시시했다. 감동을 주거나 생각하게 하는 점이 전혀 없었다. 정보를 제공하긴 했지만, 여전히 뭔가 허전했다. 게다가 그 안에는 재즈, 스트립 댄서, 부두교, 왕새우, 미시시피 증기선 등 뉴올리언스와 관련된 판에 박힌 내용들만 잔뜩 들어 있었다. 혹은 재즈 스트리퍼가 증기선을 타고 미시시피 강을 내려가면서 왕새우로 부두교 의식을 치르고 있다는 식으로 온간 것들이 합쳐진 상투적인 내용이었다. 시시함(fluff)의 한 가지 이유는 우리 디자이너들이 믿는 무엇인가가 부족하다는 데 있는 것 같다. 우리는 정치나 종교에 그리 큰 관심을 두지 않고, 어떤 중요한 문제점들에 대한 의식도 별로 없다. 우리의 의식이 그다지도 우유부단하다면 우리의 디자인도 그럴 것이다. 그 회의에서 카일 쿠퍼(Kyle Cooper)가 디자인?영화 의 타이틀에 대한 이야기와 그가 개과천선한 기독교인이라는 듣고 굉장히 신선하다고 느꼈다. 악에 대한 그의 견해가 아주 강하리라고 생각했는데, 그 덕분에 잘 만들어졌지만 범용할 뿐인 디자인이 판을 치는 이 시점에서 디자인 연작이 두각을 나타냈는지도 모른다. 나는 내게 감동을 준 영화를 본 적이 있고, 인생의 미래에 대한 내 생각을 뒤바꾼 책도 읽은 바 있으며, 내 기분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종류의 음악을 들어본 적도 있다. 그러나 그래픽 디자인이 그러한 영향을 미친 적은 없는 것 같다. 물론 이러한 비교가 공평하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다. 영화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90분이란 시간 여유가 있고, 책은 여러 날이 있지만 그래픽 디자인은 몇 초안에 우리의 마음에 와 닿아야 한다. 하지만 내가 6살 때 감동을 받은 그래픽 디자인이 있다. 그것은 콘래드 (Konrad)라는 엄지 손가락을 빠는 버릇이 있는 작은 소년에 관한 내용이었다. 엄마는 자신이 외출한 동안 콘래드에게 손가락을 빨지 말라고 당부하면서 만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커다란 가위를 든 재단사가 와서 손가락을 자를 것이라고 한다. 콘래드는 엄마의 말을 듣지 않고 손가락을 계속 입에 집어 넣는데, 아니나 다를까, 아이의 엄지 손가락들이 잘려나가 버린다. 불쌍한 콘래드는 엄지 손가락들이 없어져서 굉장히 슬퍼한다. 나는 이 그래픽에 굉장히 감명받고 감동했다. 작년에 우리가 제작한 AIGA 포스터를 한번 보자. 콘래드의 영향을 확실히 알아챌 수 있을것이다. 이 포스터가 뉴올리언스에 사람을 불러모으는 데 한 몫을 했다. 당시에 기록을 세울 정도였다. 나는 여전이 이 포스터의 디테일이 마음에 든다. 하지만 사람들을 감동시켰을까?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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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2004-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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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2004-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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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작성일2004-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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